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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 출토 세고리자루큰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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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 출토 세고리자루큰칼

[큐레이터 추천유물 3]

[글로벌이코노믹=윤지영 기자] 손잡이의 끝에 둥근고리를 만들어 붙인 고리자루큰칼은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무기이며, 여기에 칼을 지닌 사람의 권위와 군사지휘권을 드러내 주도록 금이나 금동, 은 등의 귀금속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만든 것을 장식대도라고도 합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주인공이 차고 있던 세고리자루큰칼은 신라 고리자루큰칼의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시내에는 당시 지배층이 묻혀 있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라는 신라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만든 거대한 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대릉원을 중심으로 시내에 남아 있는 돌무지덧널무덤은 대체로 신라 마립간시기(356~514)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고, 해방 이후 경주를 관광지로 정비하고 무덤의 구조와 특징을 밝히기 위해 중형급과 대형 무덤을 선정하여 조사하였는데 바로 천마총과 황남대총입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쌍무덤[雙墳]이 많은데 황남대총은 쌍무덤 중 가장 규모가 큽니다. 남쪽 무덤[南墳]은 남자, 북쪽 무덤[北墳]은 여자가 묻힌 것으로 밝혀졌으며, 무덤의 규모와 출토된 껴묻거리[副葬品]의 질과 양으로 보아 신라의 임금과 왕비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느 임금이 묻힌 것인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달라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왕릉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임금은 금동관을 비롯한 금, 은, 금동 등의 화려한 귀금속을 이용하여 만든 장신구를 착용한 채 묻혔는데, 남성의 전유물로 추정되는 칼을 허리에 차고 있었습니다.

칼은 원래 대상물을 자르거나 다듬기 위한 성격에서 만들어졌으나, 집단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많아지면서 적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로 이용되었고 형태나 크기 또한 그에 맞게 변화되었습니다. 마립간시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칼은 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가 붙어 있는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칼은 실전에 사용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지휘자나 지배계층은 여기에 금, 은 등의 귀금속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여 차별성을 두었습니다. 이렇게 귀금속으로 장식한 칼을 장식대도(裝飾大刀)라고도 하는데, 소유자의 지위와 권위, 군사지휘권 등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당시 신라에서 사용된 큰칼의 종류로는 민고리자루큰칼[素環頭大刀], 세잎고리자루큰칼[三葉環頭大刀], 세고리자루큰칼[三累環頭大刀]이 있는데, 신분에 따라 소유할 수 있는 종류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세고리자루큰칼-세잎고리자루큰칼-민고리자루큰칼의 순으로 위계화 되어 있었고, 세고리자루큰칼은 최상위 계층이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장식한 임금의 칼

▲ 모자대도(母子大刀), 경주 황남대총 남분, 삼국시대, 길이 77.4cm 황남대총 남분에서 왕이 허리에 차고 있었던 고리자루큰칼은 손잡이 끝부분에 ‘C’자 모양의 작은 고리 세 개를 삼각형 모양으로 붙여 만든 세고리자루큰칼입니다. 임금의 칼로서 손상이 없도록 손잡이와 칼집 등 외관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모두 금, 금동으로 장식하여 화려하게 만들었는데, 신라 고리자루큰칼의 절정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칼은 전체길이 77.4cm이며 칼집 양 측면에 새끼칼[子刀]을 3개씩 붙여 놓았는데, 고리자루큰칼의 칼집에 새끼칼을 붙이는 것은 당시 신라에서만 확인되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큰칼과 같은 모양으로 만든 새끼칼은 1개만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6개를 한꺼번에 붙여 놓은 것은 황남대총 남분 임금의 칼이 유일합니다. 칼손잡이에는 칼코가 없어 손잡이의 일부가 칼집 안으로 들어가는 형식[呑口式]입니다. 칼집은 나무로 만든 후 겉을 금동판으로 감싸 마무리 하였으며, 양 측면에 새끼칼을 3개씩 붙여 놓았습니다. 길이 20~25cm 정도의 새끼칼 역시 큰칼과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칼집에 고정시켜 뽑아 쓸 수 없도록 만들어 장식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맨 아래쪽 새끼칼의 양쪽에는 잠형금구(簪形金具)라고 하는 비녀처럼 생긴 금구가 붙어 있고, 새끼칼 위쪽으로 바늘처럼 생긴 금구[針形金具]가 붙어 있는데 아직까지 이들의 정확한 용도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장도(粧刀)에 은으로 만든 비슷한 것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젓가락 혹은 독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칼은 전체가 화려한 귀금속으로 장식되어 있고 새끼칼이 양쪽으로 붙은 점, 또한 칼날의 길이가 36c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실전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소유자의 지위와 권위를 드러내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는 임금이 차고 있던 칼 외에 부장칸 등에서 다른 세고리자루큰칼, 세잎고리자루큰칼도 확인되었는데, 차고 있던 칼과는 달리 손잡이 끝의 고리 부분을 쇠로 만든 후 금판이나 은판으로 감싸 만들어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도(刀)와 검(劍)의 차이와 변화

우리가 고대 전사들의 전투를 상상할 때 등장하는 무기들 중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이 칼과 창, 활, 방패, 갑옷과 투구일 것입니다. 특히 칼은 개개인이 소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무기이자 대표적인 무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총과 대포, 미사일 등 위력적인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인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가장 기본적인 무기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어 무기로서 칼이 차지하는 대표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칼은 외날인지 양날인지에 따라 도(刀)와 검(劍)으로 구분됩니다. 좁고 얇은 칼몸의 한쪽에만 날을 가진 칼을 도(刀), 양쪽에 날을 가진 칼을 검(劍)이라고 부르는데, 검은 찌르는 기능이 강조된 형태이고, 도는 베는 기능이 더 강조된 것입니다. 간돌칼이나 청동칼, 청동칼에서 재질만 바뀐 초기의 쇠로 만든 칼은 모두 양날을 가진 검(劍)이며, 이후 중국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 검과는 다른 외날을 가진 도(刀)가 만들어집니다.

도는 처음에는 문방구용의 삭도(削刀)와 같이 작은 칼로 시작하여 점차 크기가 커져 큰칼[大刀]이 등장합니다. 처음 나타나는 도는 손잡이 끝부분에 둥근고리가 있는 고리자루칼[環頭大刀]인데, 원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중요한 전쟁무기로 자리 잡게 되고 신분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외날을 가진 도는 검에 비해 더 튼튼하며 만드는데 들어가는 노력이 적다는 장점과 전투에서의 효용성 때문에 등장 이후 빠르게 검을 대체하여 주력 무기로 자리 잡게 됩니다.

▲ [삭도. 출토지 불명, 낙랑, 길이 29cm], [고리자루칼. 경산 임당 A-Ⅱ-4호/A-Ⅰ-122호, 원삼국시대, 길이 20cm/32.7cm], [고리자루큰칼. 포항 옥성리 34호, 원삼국시대, 길이 77.6cm], [고리자루큰칼. 부산 복천동 22호, 삼국시대, 길이 90.5cm]

원삼국시대에 큰칼[大刀]이 나타나게 된 것은 철이라는 금속이 이전의 청동의 한계를 극복하여 더 큰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였고, 또한 크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칼의 대형화는 전투에서 타격력의 향상과 공격범위의 확대라는 요구에 부응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

손잡이 끝에 둥근고리가 만들어져 있어 이름 붙여진 고리자루큰칼은 중국 한나라에서 사용되던 것이 서기 전후 한반도에 전해진 이후 원삼국시대부터 널리 퍼져 무기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리자루큰칼의 종류는 고리 안쪽의 장식에 따라 아무런 장식이 없는 민고리자루칼[素環頭大刀], 세갈래의 잎을 표현한 세잎고리자루칼[三葉紋環頭大刀], ‘C’자 모양의 고리 세 개를 삼각형으로 쌓아 놓은 세고리자루칼[三累環頭大刀], 용과 봉황으로 장식한 용봉무늬장식자루칼[龍鳳紋環頭大刀]이 있으며,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고리를 금이나 금동으로 도금하거나 얇은 은판을 덧씌워 장식하고, 때로는 금, 은, 구리를 이용하여 상감기법으로 용, 귀갑, 꽃, 물결, 직선, 점 등의 무늬를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은 장식대도(裝飾大刀)라고 부르기도 하며, 실제 무기로 썼다기 보다는 칼을 지닌 사람의 정치적인 지위나 신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통솔하였던 군사지휘권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리자루큰칼은 장식의 화려함과 함께 묻힌 부장품의 양과 질, 무덤의 규모 등으로 보아 용봉무늬자루칼-세고리자루칼-세잎고리자루칼-민고리자루칼 순으로 위계가 나타납니다.

민고리자루칼[素環頭大刀]

민고리자루칼은 도(刀)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최초 단계부터 나타나며 고리자루큰칼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식의 칼이다. 삼국 모두에서 나타나며 원형, 타원형, 상원하방형의 고리모양이 있습니다.

▲ 민고리자루큰칼. 경주 월성로 가-13호, 삼국시대, 길이 86.3cm / 세잎고리자루큰칼. 경주 황남대총 북분, 삼국시대, 길이 81.2cm

세잎고리자루칼[三葉紋環頭大刀]

고리 안쪽에 세 갈래의 잎 모양을 인동당초, 연꽃봉우리, 새가 날아가는 형상 등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민고리자루큰칼과 마찬가지로 삼국과 가야 모두에서 나타나는 형식의 칼이지만 고리와 고리 안에 만들어 넣은 잎의 모양에 조금씩 차이가 엿보입니다.

세고리자루칼[三環頭大刀]

세고리자루큰칼은 경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과 대구, 경산, 의성, 성주, 창녕, 양산, 부산 등 신라 지방의 큰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전형적인 신라의 칼입니다.

용봉무늬고리자루칼[龍鳳紋環頭大刀]

고리 안쪽에 용이나 봉황 또는 용과 봉황을 함께 장식하였고, 고리 바깥쪽에 문양이 없거나 가운데 쪽으로 향하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봉황만 장식된 예가 많으며, 드물게 고리 안쪽에 용이나 봉황 장식을 하지 않고 고리 바깥쪽에만 용문양을 장식한 경우도 있습니다. 용봉문환두대도는 삼국시대 각 나라의 여러 가지 장식대도 가운데 가장 높은 위계를 차지하는 형식의 칼로 당시 각종 금속공예기술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 세고리자루큰칼. 경주 천마총, 삼국시대, 길이 85cm / 용봉무늬자루큰칼. 공주 무령왕릉, 삼국시대, 길이 82cm

고리자루큰칼의 나라별 특징

고리자루큰칼은 삼국시대에 만들어 쓴 것이나 각 나라에 따라 유행하는 종류의 칼과 또 같은 종류라 하더라도 만들어지는 칼의 모양에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고구려는 세잎고리자루칼과 민고리자루칼만 확인되었으며, 손잡이 등에 장식을 한 사례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백제는 수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용봉무늬큰칼, 세잎고리자루큰칼, 민고리자루큰칼 등이 확인되며 이외에도 장식대도로서 원두대도, 규두대도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신라는 민고리자루큰칼, 세잎고리자루큰칼, 세고리자루큰칼, 용봉무늬자루큰칼이 모두 확인되며 수량도 가장 많고 위계화도 가장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용봉무늬자루큰칼은 처음에는 없었으나 5세기 후반에 백제∙가야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야는 용봉무늬자루큰칼이 가장 많이 확인되며, 민고리자루큰칼, 세잎고리자루큰칼도 확인됩니다.

백제∙가야는 형태와 종류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고 신라에 비해 세잎고리자루큰칼이 많이 확인되지 않으며, 신라에서는 고리의 위가 둥글고 아래가 각진 모양의 정형화된 세잎고리자루칼이 사용되고 확인된 수량 또한 가장 많습니다. 또 ‘C’자 모양의 고리 세 개를 쌓아 만든 세고리자루큰칼은 신라에서만 만들어 사용한 것이며, 큰칼의 칼집에 작은 새끼칼[子刀]을 붙인 모자대도(母子大刀) 역시 신라지역에서만 확인되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고리자루큰칼의 손잡이장식[柄板金具]

칼 손잡이[把部]는 나무자루를 끼워 만드는데 나무자루 위를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감거나 가죽이나 비단 등의 직물로 감싸 마무리하기도 하고, 문양이 새겨진 금은판으로 감싸거나 새김눈(刻目)을 넣은 금은실로 감아 마무리 하였습니다.

백제∙가야와 신라는 손잡이를 감싼 금은판에 새겨진 문양과 이 문양판의 접합부위를 고정하는 방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금은판에 새겨진 문양은 물고기 비늘모양무늬[鱗狀紋]이 새겨진 것과 ‘C’자 모양의 무늬를 연속해서 새겨놓은 것이 있고, 접합부위를 고정하는데는 둥근머리못[圓頭釘]을 박아 고정한 것과 ‘ㄷ’자 모양의 못을 박아 고정한 것이 있습니다. 물고기 비늘모양 무늬와 둥근머리못, ‘C’자 모양의 연속무늬와 ‘ㄷ’자 모양의 못이 서로 결합되어 나타납니다.

둥근머리못을 이용하여 접합부위를 연결한 경우 칼을 들었을 때 안쪽, 즉 보이지 않는 면의 가운데에서 무늬를 새긴 판을 접합하고 둥근머리못으로 고정하였습니다. 반면 ‘ㄷ’자 모양의 못을 이용하여 접합부위를 고정하는 경우는 주로 칼날이 있는 부분 즉 칼의 아래쪽에서 접합부위를 결합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고기 비늘모양 무늬와 둥근머리못은 백제 ㆍ 가야지역에서, ‘C’자 모양의 문양과 ‘ㄷ'자 모양의 못은 신라지역에서 발견되는 장식대도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용봉무늬큰칼의 손잡이를 새김눈을 넣은 금 ㆍ 은실로 감싼 경우가 확인되는데, 주로 백제∙가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 물고기 비늘모양 무늬 장식+둥근머리못, ‘C’자 모양 연속무늬 +‘ㄷ’자 모양 못, 새김눈장식 금 ㆍ 은실
고리자루큰칼은 삼국시대 각 나라에서 모두 확인되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이며, 특히 귀금속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고리자루큰칼은 다른 장신구와 함께 당시의 통치체제나 신분체제 나라간 교류뿐만 아니라 제작과 관련된 제철∙단야기술과 금공기술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