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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왕의 공덕 기리고 국가 번영 기원한 에밀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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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왕의 공덕 기리고 국가 번영 기원한 에밀레종

[금석문 톺아보기 15] 성덕대왕신종

[글로벌이코노믹= 정석현 기자] 일명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는데, 성덕왕(聖德王)의 공덕을 기리고 중대왕실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려는 목적에서 경덕왕(景德王) 때 계획되었다가, 혜공왕(惠恭王) 7년(771)에 완성되었다.

원래는 경주 봉덕사(奉德寺)에 있었는데, 봉덕사가 수몰된 뒤 세조 6년(1460) 영묘사(靈廟寺)로 옮겼으며,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다가, 1915년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다. 그 뒤 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찬자(撰者)는 조산대부(朝散大夫) 겸(兼) 태자조의랑(太子朝議郞) 한림랑(翰林郞) 김필오(金弼奧)이며, 서(序)는 한림대서생(翰林臺書生) 대나마(大奈麻) 김부환(金符皖)이, 그리고 명(銘)은 대조(待詔) 대나마(大奈麻) 요단(姚湍)이 썼다. 새긴 사람은 미상이다.

▲ 성덕대왕신종 명문 부분

현존 최대의 동종으로 제작연대, 각부양식, 음질 등 모든 면에서 신라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국보 제29호이며, 높이는 333cm, 구경(口徑)은 227cm이다. 630자로 된 서문과 200자의 명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문(序文)은 해서체, 명문(銘文)은 행서체이다.

이 명문은 종명(鍾銘)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문장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여기에는 주종(鑄鍾)사업에 참가한 사람들의 관직을 통하여 당시 성전사원(成典寺院)의 실제 운영을 파악할 수가 있는데, 그들 가운데 김양상(金良相)은 혜공왕(惠恭王)을 이어 왕위에 올라 선덕왕(宣德王)이 되었다. 따라서 이 명문은 당시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장구조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제액(題額), 찬자(撰者)
서(序) : 夫至道~銘記于鍾也
서문(序文) 서자(書者)
명(銘) : 其詞曰~恒恒轉重
찬자(撰者)와 명문서자(銘文書者)
주종(鑄鍾) 사업에 참여한 속관(俗官)
건립날짜
주종(鑄鍾) 기술자

연대 : 통일신라 혜공왕, 771년(혜공왕7년, 당(唐) 대종(代宗) 대력(大曆)6년)
국보:국보 - 29호
크기: 높이 333cm, 구경(口徑) 227cm
출토지: 경상북도 경주시 봉덕사
소재지: 국립경주박물관(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서체: 서문(序文)-해서, 명문(銘文)-행서

<출처: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