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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218)]제12장, 개벽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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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218)]제12장, 개벽의 징조

최서영은 마루에 서서 마른 옷과 수건을 들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남편이 일을 마치고 섬돌 위에 올라서기 바쁘게 수건부터 내밀었다. 뇌성번개가 내리치고 거센 폭풍에 폭우까지 쏟아지는데도 할 일을 다 하는 남편이 걱정스러웠으나 워낙 태연해서 심장을 조이게 하던 뇌성번개가 이제는 무섭지가 않았다.

“당신, 천둥소리를 그리도 무서워하더니!?”
“이젠 안 무서워요! 죄 지은 게 있어야 무섭죠?”

“하긴! 마음이 무서워서 무섭지 천둥 벼락이 무서운 게 아니니 당신도 이제야 그걸 깨달은 모양이오?”

“그럼요! 당신을 보니까 무서울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어서 방에 들어가세요. 감기 드실라!”

“곧 날이 밝을 텐데 그때 비바람이 좀 그치면 논에 가서 물고도 터주고 쓰러진 나락도 묶어서 세워야겠소. 당신은 좀 더 자도록 해요.”

“아니에요. 잠도 다 깼고 있다가 당신과 같이 나갈래요. 근데 폭우가 그칠 것 같지 않아요. 계속 내리면 어쩌죠?”

“하늘이 머금었던 것이라 사나운 폭풍도 한계가 있소. 비바람이란 본래 그치기 전에 더 퍼붓고 발악을 하기 마련이니 해뜨기 전에 멈추겠지요. 걱정하지 말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날이 개이면 일어납시다.”
한성민은 예사롭게 말하고는 두 손을 깍지 끼어 뒷머리에 베개 삼아 편안히 누웠다. 그녀는 남편 곁에 가만히 드러누우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쏟아지고 몰아치는 비바람의 기세로 보아서는 떠오르는 해마저 집어삼킬 것 같은데, 아침에 해가 뜰 것이라는 예측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기라도 하면 애써 지은 농사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으련만 아침에도 폭우가 그치지 않으면 논이고 뭐고 다 망가뜨릴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런데 남편은 눈을 감아 깜박 잠이 든 것 같은데 잠꼬대 같은 뜻밖의 소리를 가만히 입술을 움직여 내고 있어서 귀를 기울였다.

“어둠 속의 거친 비바람은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폭풍같이 쏟아내는 말은 고요함 앞에서 그친다.

천지가 빛 앞에 오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아, 도의 고요함이여!”

하고 말한 그는 피곤했던지 이내 코를 곯았다.

깬 정신으로 한 말일까?

잠꼬대로 한 말일까?

천지가 뒤집어질 듯 폭우와 폭풍이 아수라장을 만드는 이 판국에 근심걱정 하나 없이 도를 말하는 그가 기이하기만 했다.

그러나 아침 해는 떴다.

남편이 말한 대로 해 뜰 시간에 어둠이 걷히더니 그리도 난폭하던 폭풍이 잦아들고 폭우도 뚝 그쳤다. 잠깐 사이 깊이 잠이 들었던 그는 꿈속에서 날이 밝은 줄을 알았던지 정확히 때맞추어 눈을 떴다.

그리고 주섬주섬 비옷을 걸치고 나서기에 그녀도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수건을 목에 걸치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이때 선희도 깨어 있다가 함께 갈 옷차림으로 방문을 열었으나 그가 아침식사나 준비해놓으라 이르고는 바삐 삽을 찾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