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19)]제12장, 개벽의 징조

공유
0

[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19)]제12장, 개벽의 징조

마을 밖은 온통 물바다였다.

마을을 초생들 모양으로 빙 둘러 흐르던 개울은 온 데 간 데가 없고 큰 강 하나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에는 여기가 길이요 하고 안간 힘을 다해 버티어 선 수양버들 끝가지가 성난 물결 위에서 금방 잠길 듯 위태위태했다.
그러나 다행히 좀 높은 지대에 있는 그의 논은 대부분 물에 잠기지 않았다.

뛸 듯이 기뻐한 그녀는 얼른 논에 들어가서 쓰러진 벼를 묶어세우고, 그는 급히 물꼬를 터주어 넘치는 논물을 강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무너진 논두렁이며 언덕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일을 다 하려니 집에 가서 아침식사도 할 겨를이 없어 선희가 바구니에 간단히 차려온 도시락 같은 음식으로 대충 허기를 채우자마자 곧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논일을 다한 뒤에는 다시 밭으로 가서 넘어진 깨대와 고춧대를 바로 세우고 나서야 내내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펴서 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집으로 막 돌아와서 손발을 씻으려는데 바로 이웃집 아낙네가 사색이 돼 허둥지둥 마당으로 들어서며 기절할 듯 소리를 내질렀다. 남편이 무너진 흙 담장에 묻혔다는 것이다. 그는 손을 씻다 말고 아내더라 얼른 침통을 가지고 따라오라 이르고 삽을 들고 뛰쳐나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사람이 흙 속에 묻힌 것이 아니라 무너진 담장의 돌이 한쪽 다리를 골절시켜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흙은 엉덩이와 허리에 좀 덮고 있을 뿐인데 아낙이 지레 겁부터 먹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흙을 걷어낼 것도 없이 그대로 사람을 방으로 엎고 들어가서 뉜 뒤에 골절부위에 침을 놓아주고는 마침 선희가 들고 온 비상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놓았다.
그런데, 신이 진노했는가?

원혼들의 한풀이 한마당인가?

무슨 놈의 하늘이 또 물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낮에 쨍쨍 햇빛이 쏟아져서 이만쯤에 멈춘 줄 알았는데 밤이 되기 무섭게 먹구름이 별을 가리더니 날카로운 빛살이 어둠을 가르고 우레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굵은 빗줄기가 후득후득 몇 방울 떨어지다가 이내 퍼붓기 시작했다. 그나마 잠시 그쳤다 말았으면 좋으련만 밑 빠진 독에 물 새듯 밤새껏 쏟아냈다가 그쳤다가 또 쏟아내기를 반복해서 천지를 개벽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새벽에 뚝 그쳐서 아침에는 얄밉도록 찬란한 해가 떠올랐다. 그러나 줄어들었던 강물은 더 불어나 아예 수양버들 끝가지마저 집어삼켰다.

좀 더 지나서는 어제까지 멀쩡하던 그의 논도 잠겼다. 그런데 그만하면 다행이겠으나 점점 높아지던 수위에 들판을 보호해주던 큰 강의 둑이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그러니 샛강은 노도와 같은 물살로 닥치는 대로 뒤덮어 온갖 몸체를 둥둥 띄워 흘려보내고 있었다.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둥치 큰 나무와 누군가의 집 지붕, 그리고 거센 물살에 허우적이지도 못하는 소와 돼지........!

최서영은 남편과 마을 앞 나지막한 민둥산에 오르자마자 거의 반이나 잠긴 들판을 바라보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물 위의 참상도 참상이지만 여름 내내 가뭄에 물 대느라 그 고생을 했는데, 그리고 어제는 끊어질 듯 아픈 허리를 참고 참으면서 묶어세운 벼가 잎사귀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누런 흙탕물만 넘실대 억장이 무너져 할 말을 잃고는 눈물만 펑펑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