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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진짜 왕…고객이 원하면 무엇이든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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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진짜 왕…고객이 원하면 무엇이든 해줍니다"

[한국의 맛-호텔 리츠칼튼 서울 라채일 총주방장]

결혼식 등 연회서도 즉석요리 서비스로 만족도 높여


지배인 요구 때는 무조건 OK…동반자로서 수익 올려


늦깎이로 출발…4남매가 조리업 종사하는 '요리가문'


새로운 것 추구 고유의 맛 잃어 "기본으로 돌아가자"

▲호텔리츠칼튼서울라채일총주방장
▲호텔리츠칼튼서울라채일총주방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호텔 리츠칼튼 서울 라채일 총주방장은 청주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가 낙방했다. 그는 30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했지만 인문계 출신이라 변변한 기술도 없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이때 6남매 중 3남매가 조리업계에 종사하고 있던 덕분에 부산의 큰 누나가 그를 부산의 코모도호텔에 소개시켜주었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조리사로 출발했기 때문인지 조리용어 등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필요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경주호텔학교를 거쳐 본격적인 조리사로 나선 라 총주방장은 늘 뒤늦게 출발했다는 생각에서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

특히 라채일 총주방장은 수하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영업을 뛰는 지배인과도 찰떡궁합을 과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서번트리더십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에서 관계마케팅을 전공한 덕분이다. 손님이 지배인을 통해 요구하는 내용은 무엇이든 ‘O.K.’사인을 내고 구매부서와 조리부를 일사분란하게 지휘해 응대하는 모습은 군부대의 훌륭한 지휘관을 닮았다. ‘고객의 편안함과 고객에 대한 정성 어린 배려를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는’ 리츠칼튼의 신조를 직접 칠천하고 있는 라채일 총주방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언제 조리에 입문하셨는지요?

“1989년 1월 군에서 제대한 후 빈둥빈둥 놀고 있으니까 큰 누나가 ‘너, 할 일 있니? 특별히 생각하는 게 없으면 부산으로 내려와 조리사로 일해’라고 하시는 거예요. 부산의 코모도호텔에서 처음 요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부산은 사투리가 심하고 말도 빨라서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알아듣기가 힘들었어요. 부산어 학원을 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1990년 1월까지 일하다가 제대로 된 조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조리용어는 물론, 레시피를 만드는 방법 등을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1990년 3월 경주호텔학교에 입학해 이론적인 공부를 했습니다.”

-6남매 중 4남매가 조리사이니 조리사 가족인 셈입니다.
“제가 조리사로 입문하기 전 누나 둘과 형이 부산의 호텔에서 조리사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일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큰 누나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고, 제 아들도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있어요. 특별한 기술이 없어 어중간하게 사느니 조리기술을 익혀 전문인으로서 살아가라고 조언했지요. 조리사 가족이 이제 한 명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조리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조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부족해 윗사람이 심부름을 시키면 알아듣기가 힘들었어요. 게다가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꼭 심부름을 시킨다든지 해서 배우고 싶은 과정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경주호텔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다른 학생에 비해 현장에서 1년 간 일한 게 도움이 되어 실기에서는 앞섰고, 사전을 찾아가며 원서 3권을 독파하고 나니 기본적인 조리원리를 깨우칠 수가 있었어요. 요리가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는지, 어떤 색깔을 내야 하는지, 그리고 드레싱은 몇 대 몇의 비율로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교수님과 토론하면서 부쩍 성장했어요.”

-학교를 졸업한 후 선택한 진로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1990년 11월에 인터콘티넨탈호텔에 입사했어요. 지금은 대학에 재직중인 정수식 동원대 교수와 정수근 신흥대 교수로부터 인간관계와 조리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프렌치 레스토랑을 비롯해 스토어관리, 음식배달 등 여러 부서를 돌며 6년간 일했지요. 특히 스토어에 근무하면서 영어로 된 용어를 다 이해하고 쓸 줄 알아야 원활하게 배분할 수 있기 때문에 집에 가서는 10번씩 영어로 써보기도 했어요. 단위까지 일일이 익혀둔 게 지금에 와서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콘티넨탈호텔은 라 총주방장이 성장하기에는 벽이 너무 높았다. 선배들이 뛰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었다. 그를 아끼던 선배가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호텔로 옮길 것을 권했다. 그래서 1995년 2월에 호텔 리츠칼튼 서울이 오픈할 때 자리를 옮겼다.

“인터콘티넨탈호텔은 제 조리인생에서 사관학교나 다름 없었어요. 프렌치요리부터 룸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훈련을 쌓았기 때문에 어떠한 메뉴든지 다 짤 수 있게 되었어요. 만일 양식만 하고 한식이나 일식이나 중식을 전혀 접해보지 않았더라면 메뉴를 구성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조리사는 한 가지 전문성을 갖는 일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를 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한 분야가 아닌 전 분야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 이 같은 라 총주방장의 경험은 후배들을 위해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1년에 한 번씩 부서를 돌아가며 일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조리사마다 요리의 색깔이 있는데….

“조리사라면 누구나 하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제 요리의 색깔은 재료의 원 맛을 살리는 데 있어요. 재료의 맛을 살리는 걸 기본으로 하고 그 다음에 숙성의 과정을 중요시 여깁니다. 육류나 해산물의 경우 최소한 하루 전날에 소금으로 기본 간을 해서 맛이 배어들게 하지요. 생선은 기본 간이 되어 있어야 맛이 있지, 그 자리에서 간을 하게 되면 겉은 짜고 안은 싱거워요. 양갈비의 경우에도 올리브오일과 페퍼콘으로 기본 양념을 한 다음 24시간 동안 저온 숙성시켜 비린내와 잡냄새를 없애줍니다.”

-리츠칼튼은 결혼식이나 연회에서 즉석요리를 제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요리를 미리 만들어 핫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소스를 뿌려 나가게 되면 맛이 떨어집니다. 조리사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지만 손님의 입장에서는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는 셈이지요.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최고의 호텔에서 하는 연회인데, 음식이 맛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발상의 전환을 해보았어요. 연회팀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즉석요리를 할 수도 없고, 손님에게 내갈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한식, 중식, 일식, 가든 등에서 인원을 지원받아 손님에게 제공하기 전에 즉석에서 구워 나갑니다. 기본적인 준비는 연회팀이 하지만 나머지는 다른 팀이 도와주는 ‘래터럴 서비스’를 하게 되었지요. 그랬더니 손님은 손님대로 만족하고, 호텔 직원은 팀워크와 래터럴 서비스로 ‘우리는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 총주방장으로 승진한 후 국내 대기업으로 출장연회를 갔다왔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국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법인장 회의가 지난 6월 수원에서 있었어요. 호텔에서 하는 것처럼 출장을 가서도 즉석요리를 선보였는데, 모두 만족해 했어요. 3일 동안 하루에 잠도 2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일했지만 차별화된 서비스와 맛에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책임자의 한 사람으로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떤 차별화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습니까?

“손님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해준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어요. 요즘은 연회장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도 가끔 채식주의자를 만나게 됩니다. 사실 갑자기 채식위주의 식단을 요구하면 당황스럽지만, 일단 손님에게는 무조건 ‘O.K.’ 사인을 내놓고 그 다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해줍니다. 중동 국가에서 에너지 행사를 하면서 아랍음식을 요구하는데, 리츠칼튼은 그들의 요구에 의해 차별화된 메뉴구성을 선보였어요. 이처럼 다른 호텔은 못해도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리더십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조직 운영에서 리더십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이지 않고 수평적으로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옛날에는 주방장이 하라고 하면 하는 게 기본 규칙이었지만 이젠 시대가 바뀌었어요. 그러니 리더십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지요. 소통하지 않고 일방통행식 리더십이 작동하면 한 사람의 생각에 의해 호텔 전체의 음식이 똑같아져요. 뷔페나 레스토랑은 특성이 다른 데에도 모두 똑같아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요. 그래서 저는 소통하면서 각 섹션마다 조리사들의 색깔을 중요시하며 제 색깔은 살짝 넣는 정도입니다. 직원과 중간 리더가 참여하는 쪽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세일즈 지배인과는 어떻게 관계를 개선하셨는지요?

“세일즈 지배인은 영업 최전선에서 뛰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그들은 손님이 요구하는 대로 메뉴를 구성해주기를 바라지만 그동안 주방에서는 시간이 없다, 사람이 없다,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다 등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절하기가 일쑤였어요. 반대로 저는 지배인들에게 어떠한 요구를 하든지 주방이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진짜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제외하곤 어떤 일이든지 다 들어준다고 했더니 지배인들과 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몇 백명이 모이는 연회는 최소 1주일 전에 주문을 해야 정상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데, 가끔 하루 전에 부탁이 와도 어떻게든 맞추어줍니다.”

라채일 총주방장은 연회 행사, 프로모션, 홍보와 관련된 모든 일은 본인을 통하도록 하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채널을 일원화함으로써 업무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특히 여러 사람을 경유하게 되면 업무가 지체되거나 중간에 끊기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모든 일이 그를 통하게 되면서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조리사로서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까?

“큰 누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큰 누나는 제가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욕심이 정말 대단했어요. 그러면서 자기보다 더 나은 조리사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날까지 저를 이끌어주었어요. 둘째 누나와 형이 생계형 조리사였다면, 큰 누나는 프로 조리사로서 자부심도 대단했어요. 지금도 큰 누나를 멘토로 의지하며 어려운 일이 닥치면 상의를 합니다.”

-조리사로서 늦게 시작해 빠르게 성장했는데 비결이 있습니까?

“인터콘티넨탈에 6년간 근무하며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선배들이 얘기한 건 수첩에 빼곡히 기록했어요. 눈썰미가 좋은 편이라 레시피를 알게 되면 냉장고에 붙여놓고 다 외웠어요. 제가 발전하려면 선배의 일을 빼앗아 오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선배가 필요한 일을 미리 알아서 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선배가 머쉬룸 소스를 끓여야 될 것 같다고 하면 제가 미리 준비를 해두고 선배가 마무리하는 과정을 유심히 봅니다. 그런 식으로 선배의 일을 도와주며 제 것으로 만들다보니 빠르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지도 않고, 후배도 선배에게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생계형 직장으로만 치닫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면….

“새로운 것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는 건 좋은데 음식의 고유한 맛을 다 잃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지난 3월부터 기본 맛을 되찾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특히 한식을 하는 후배들에게 기본 맛을 강조하고 있어요. 김치찌개나 떡국을 변형하면서 전통 맛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기본 맛에 충실하자고 하는 것이지요. 퓨전 요리를 선호하는 뷔페 쪽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관은 무엇입니까?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버립니다. 그리고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한다면 베풀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남에게 주는 만큼 제게 돌아와요.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높은 사람이 을의 위치에 있는 낮은 사람을 조금만 배려하고 관심 가져주면 그는 더 충성을 하게 됩니다. 원하지 않아도 배로 돌려주어요. 사적인 얘기지만 이건 전략이기도 해요. 상대를 부정하고 싸우면 업무 협조를 안 하게 되므로 모든 관계의 벽을 허물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