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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지교와 계명구도 - 재미있는 ≪사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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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지교와 계명구도 - 재미있는 ≪사기열전≫

[독자 얼레빗 121]

[글로벌이코노믹=양훈 기자] 한 사람의 운동선수나 연예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가 천문학적 규모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흡한 학력과 배경, 열악한 환경에도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도달한 입지전적 인물도 있다. 한 사람의 인재가 조직을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여러 곳에서 듣기도 한다.

인물을 판별하는 것은 어렵다. 인재를 가리는 방법으로 ≪여씨춘추≫는 이른바 ‘팔관육험법(八觀六驗法)’을 제시한다. 2,000여 년 전의 인물감별법이지만 오늘날에도 참고할 게 많다.
여덟 가지 살필 점은 다음과 같다.

1, 잘나갈 때 어떤 사람을 존중하는가.
2,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쓰는가.
3, 부유할 때 어떤 사람을 돌보는가.
4, 남의 말을 들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5, 한가할 때 무엇을 즐기는가.
6, 친해진 뒤 무슨 말을 털어놓는가.
7, 좌절했을 때 지조가 꺾이는가.
8, 가난할 때 무엇을 하지 않는가.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여씨춘추≫는 그밖에도 여섯 가지를 시험해보라고 권한다. 기쁘게, 슬프게, 성나게, 즐겁게, 두렵게, 힘들게 만들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숨은 성격은 없는지 등을 살피라는 것이다.

한비자 같은 이는 한 술 더 떠 황당한 말을 하거나, 반대쪽 주장을 펴 상대를 떠보라고까지 주문한다. 위선과 위악이라는 겹겹의 가면을 쓴 인간들 사이에서 인재를 판별하기란 이처럼 어렵다.

≪사기열전≫에도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수많은 인재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 김원중 번역본과 여러가지 ≪사기열전≫

변소에서 오줌을 받아먹는 굴욕을 당했지만 진나라의 재상이 된 범저,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불리지만 진시황에 대한 유세(遊說)에 실패해 독배를 들어야 했던 한비,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동원해 변법을 완성하지만 정작 그 법을 철저히 지킨 여관 주인의 신고로 죽게 된 상앙, 초나라 제후에게 도둑으로 몰려서 죽도록 얻어맞고도 ‘내 혀만 붙어 있으면 된다.’고 말했던 장의 등이 바로 그들이다.”

온갖 굴욕을 견뎌내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지만 정작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해 몰락한 한명의 비극적 인물이 있다. 소하, 장량과 더불어 한 고조 유방의 3인방 측근으로 불렸던 한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동네 한량의 가랑이 밑에서도 천하를 보았던 한신은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다 소하의 추천을 받아 대장군의 자리에 오른다. ‘폐하가 한중의 임금으로 만족할 생각이라면 한신이 없어도 되겠지만 천하를 도모할 생각이라면 반드시 한신이 있어야 한다.’고 소하가 간했을 정도로 한신은 영웅이었다.

실제로 한신은 유방이 ‘그대는 군사를 얼마나 많이 이끌 수 있겠느냐’고 묻자 ‘저는 많을수록 좋습니다(多多益善)’라고 답했을 만큼 포부와 야심이 큰 사람이었다. 유방의 “그리 뛰어난 사람이 왜 내 밑에 신하로 있느냐?”는 물음에 ‘고조께서는 많은 군사를 다루는데 능하지 못하지만 장수 한사람을 다루는데 능하기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고 대답한 그였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주인의 자리를 넘보다가 패망을 자초했다.

소하와 장량은 그것을 알았고, 한신과 이사는 그것을 몰랐다. ‘달도 차면 기울기 마련이고, 정상에 도달하면 내리막길이 기다린다.’고 말했던 범저도 물러날 때를 알았던 사람이다.

‘멈춤의 지혜’와 더불어 요구되는 것이 ‘협력의 지혜’인데, 조나라의 염파와 인상여가 이것을 실천한 대표적 인물이다.

강대국 진나라가 약소국 조나라가 가지고 있던 보물인 ‘화씨의 벽’을 반강제로 빼앗으려 했다. 급히 발탁된 인상여가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해 보물을 지켜내고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대장군 염파가 ‘세 치 혀만 놀리고 출세했다’면서 인상여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모욕을 주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인상여가 염파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였다. 주변에서 ‘상관인 당신이 왜 피하느냐’고 묻자 인상여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가 가시나무 회초리 한 묶음을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잘못을 빌었다. 두 사람은 목이 잘려도 변치 않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

전국시대의 제후와 귀족들은 널리 인재를 구하는데 힘썼다. 그 중에서도 제나라의 실력자 맹상군이 인재 발굴에 가장 열성적이었다. 그의 문하에는 식객이 많았는데, 심지어 개처럼 도둑질을 잘 하는 자와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도 있었다. 맹상군이 이 두 사람을 빈객으로 대우하자 다른 사람들은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그런데 맹상군이 강대국인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정작 그를 살려낸 것은 학문이 뛰어난 식객들이 아니라 바로 그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진나라 궁중의 보물 창고에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왔고, 또 한 사람은 닭 울음소리로 철통같은 함곡관 성문을 열었다. 이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는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다는 교훈을 전해 준다.

반면에 연나라 태자 단은 ‘낭만적 자객’ 형가를 시켜 무모하게 진시황 암살을 시도하다 망국을 재촉하고 말았다. 인재는 소유하는 자의 몫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인재가 활동할 토양과 공간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인재를 방치하지 말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부르는 포용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말복과 칠석이 지나 가을이 성큼 다가온다는 처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은 선선한 기운 보다 무더위가 기승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더위를 잠시 잊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 사마천 ≪사기열전≫ : 김원중 번역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