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한 두 젊은이들! 그냥 앉아서 나의 질문에 대답해주게......... 만약 말일세. 모든 인간이 마치 복제해놓은 것처럼 같은 체격과 같은 두뇌와 품성, 그리고 같은 지혜를 지니고 같은 얼굴을 하고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 질문한 젊은이가 부끄러워하던 때와는 달리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 어투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장난기가 묻어있어서 모두들 한 목소리로 폭소를 자아냈다.
“재미가 없을 것 같다........그도 그렇겠군! 아무튼 사람은 애시당초에 차별되게 태어나게 되어있었지. 그렇기 때문에 수십 억 인간이 다 제 각각이 아닌가. 심지어는 쌍둥이까지도 똑 같지가 않다네. 그러므로 평등할 수가 없어서 부자와 가난, 귀와 천,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 등등으로 차별되겠지. 그러면 왜 인간은 이처럼 평등자하지 못하게 태어나야 하는가? 이것이 운명을 가름하는 중요한 원인이거니와 그런 원인을 제공하는 자는 다름 아닌 무위한 하늘일세.”
“잠깐만요 선생님! 운명을 가름하는 어떤 초월적인 힘이 무위한 하늘이라 하신 말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까? 하늘은 말이 없잖아요?”
이번에는 제일 앞에 앉아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한 아가씨가 일어나 씩씩하게 말했다. 여자로서 알맞은 키와 체격에 피부가 좀 가무잡잡한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었다. 생김새가 야무진데다가 표정이 사뭇 꿋꿋해서 여성치고는 당돌해보였다.
“아가씨 이름을 물어 봐도 되겠는가?”
“진경숙이라........그럼 진경숙이란 이름을 가질 수 있도록 태어나게 한 분은 누구인가?”
“.........? 저의 부모님이십니다만........?”
진경숙이 당연한 것을 묻는 말이 이상해 얼른 대답을 못하다가 의아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지! 부모님이시지........부모님은 육신을 주셨지. 그런데 그대의 영혼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부모님 두 분의 영혼이 그대 육신 속에 들었다면 그대 영혼은 하나가 아니라 남녀 둘이어서 한 육신 속에 함께 존재할 테니 그럴 수는 없을 테고”
“그..........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경숙이 당당하던 아까와는 달리 우물쭈물하다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성민은 간단히 대답해주어도 될 것을 너무 깊이 있는 말을 했다 싶었다. 그러나 기왕 한 말이니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고 이야기도 길어질 것 같아서 탁자 옆 의자에 앉았다.
“그대의 영혼은 천상천하에 독존하는 유일한 존재이지. 왜 독존이라 하는가? 인간의 영혼은 그 자체가 유일자(唯一者)의 분화 물로서 유일자와 본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에서 업을 지어 그 기운이 참 나인 독존의 영혼을 휘감아 나 아닌 나를 행세하게 된 것이다. 업을 비유하자면 보석이 참 나이고, 그 보석의 빛을 가린 오염된 진흙과 같은 중생심(衆生心)이 바로 업인 것이다.
“업이라면 전생에 지었던 원인을 말씀하세요?”
진경숙이 앉은 채 진지하게 반문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중생심이며 지금 그대의 마음인 것이다.”
“그럼 업의 앙금이 현세에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군요?”
진경숙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