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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우리 농산물로 만든 한끼 식사가 보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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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우리 농산물로 만든 한끼 식사가 보약이죠"

[한국의 맛]약선요리 정영숙 정림 대표 겸 (사)한식협회 공동회장

"먹거리로 사람살리는 일해보라" 부친 권유로 식당 시작


'부산 대장금' 소문 덕분에 일본관광객 필수코스로 인기


10월10일 '한식의 날' 행사…7000인분 비빔밥 퍼포먼스


'한 가정 한 장독 갖기 운동' 펼쳐 국민건강지킴이 役도

▲정영숙정림대표
▲정영숙정림대표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약선요리 연구가 정영숙(57) 정림 대표는 부산을 터전으로 하면서도 전국구로 통한다. (사)대한민국한식협회 공동회장으로 선임된 그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제1회 한식의 날(10월10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우리의 산과 들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가지고 소박한 밥상을 차리면 그게 보약이고, 이를 우리 스스로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정 대표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주부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 열을 올린다. 주부만이 우리 식탁을 바꿀 수 있기에 한 달에 서너번은 꼭 시간을 내어 주부를 만난다고 한다. 강의주제는 ‘약이 되는 밥상이야기’다.

과수원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산야초에 관심이 많았다는 정영숙 대표. 다양한 산야초로 효소를 담그고 장아찌를 만들어 손님의 밥상에 올려놓는 그는 사람 몸에 가장 좋은 한식 한 차림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키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안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에 앞서 한국인의 한식 사랑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정영숙 대표를 만났다. <편집자 주>

-한정식 정림은 단골 위주로 꾸려가다가 이제는 일본까지 알려졌는데….

“부모님께서 먹거리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보라고 하여 23년 전 소박하게 식당을 차렸어요. 몇몇 단골손님 위주로 운영하다가 2003년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 덕분에 갑자기 유명해졌지요. 제가 늘 하던 얘기가 주인공 이영애 씨의 입을 통해 나오자 ‘장금이’란 별명과 함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일본 관광객이 부산에 오면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되었어요.”

정 대표의 부모님은 경남 양산 원동에서 과수원을 경영했다. 부친은 포도 수박 참외 복숭아 자두 사과 등 열대과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과일을 재배했다. 특히 과수원 전체를 무공해의 청정지역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과수원에서 나는 과일은 다른 과수원의 과일에 비해 당도가 높았다. 뿐만 아니라 포도밭 밑에는 독을 묻어 과일식초를 담그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은 발효를 시켜 효소를 만들었다.
“부친께서는 어느날 저에게 토끼가 어떤 풀을 좋아하는지 관찰하라고 해요. 마을 고샅 담벼락과 공터에서 여러 가지 풀을 뽑아 토끼에게 먹였더니 토끼가 쓴맛 나는 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우리 들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토끼가 좋아한 풀은 간에 좋은 약초였어요.”

-한식당을 열기 전 철저하게 준비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설프게 준비해 잠깐 하다가 허덕이느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식의 밑바탕이 되는 간장, 된장, 장아찌, 효소 등을 담가놓고 시작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5년간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게 준비해놓은 다음에 조금씩 묵혀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게 제 장사의 밑천이 되었어요.”

-최근 (사)대한민국한식협회의 공동회장으로 선임되셨는데, 어떤 일을 하실 겁니까?

“유럽이나 미국에서 한국의 된장이 암 진행을 억제한다는 발표를 들을 때마다 누군가는 ‘우리 맛을 지키고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한식을 세계화 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한식이 소중하고 대단하다는 걸 알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국민이 외면하는 한식을 외국인에게 사랑해달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사)대한민국한식협회는 10월10일을 ‘한식의 날’로 제정하여 한식의 소중함을 한번 쯤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정 대표는 한 제과업체가 11월11일을 ‘빼빼로데이’로 정하자 온 나라가 이날 빼빼로를 만들거나 사서 연인에게 선물하는 세태를 지적하면서 한식도 10월10일 ‘한식의 날’을 계기로 한식의 가치를 되새겨보자고 열변을 토했다. 국회에서도 한식의 날 제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기념일 지정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를 계획하고 있습니까?

“한식의 날을 10월10일로 정한 건 조리사가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열 손가락을 다 써야 한다는 상징에서 출발했어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동포와 상공인이 참여한다면 자연스럽게 한식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이날 한복을 입고 한식당에 오면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협회 차원에서 오는 10월 23,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한식의 날 기념행사에서 남북한 인구수 7000만을 상징하는 7000인 분의 비빔밥 퍼포먼스로 남북통일 기원과 함께 한식의 우수성을 알릴 계획입니다. 팔도의 식자재와 특산물을 비빔밥의 재료로 등장시키고 10대부터 80대까지의 조리사가 화합의 비빔밥을 만든다면 굉장한 볼거리로 국민적인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정 대표는 한류 속에서 한식을 끌어내고 싶어 한다. 한복, 한지, 한국춤, 한국소리가 한식과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한(韓)문화’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MB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며 한식재단을 만들고 떡볶이를 세계화 한다고 요란을 떨었어요. 그런데 정작 조리명장에는 일식, 중식, 양식은 있어도 한식은 없어요. 진짜 한식 세계화를 원한다면 이런 잘못된 풍토를 바꾸어야 되지 않을까요. 한국인과 한국정부가 한식을 푸대접하는 한 한식의 세계화는 너무나 먼 나라 얘기입니다. 젊은 조리사가 양식이나 일식이 아닌 한식을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해요. 요즘 조리사는 좋은 대우를 받는 양식을 선호하고 한식은 외면하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데, 굳이 한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남북한 이산가족이 평생을 만나길 소원해도 쉽지 않듯이 음식도 그 맛을 잃어버리면 되찾기가 너무나 힘들어요. 어쩌면 평생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는 게 맛입니다. 요즘 젊은이 세대는 장맛을 몰라요. 지금은 부모 세대가 장맛을 알고 향수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지켜지고 있는 것이지요. 대표적 한식인 장과 김치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리기 전에 지키고 보존하자고 외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만일 한식이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최고의 약밥상이라는 사실을 안 다면 명품으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절박합니까?

“음식은 사람의 운명과 인성을 좌우해요. 그런데 요즘은 부모가 아이에게 ‘너 오늘 뭐 먹을래?’ 하고 패스트푸드 중심으로 먹여요. 옛날에는 엄마가 자녀를 위해 정성껏 장을 담그고 그 장으로 요리를 해 먹였는데, 세대가 바뀌면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어요. 물론 자연과 단절된 아파트에서 생활하다보니 장을 담가 놓고도 유지할 수 없는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요. 그래서 군유지(郡有地)나 시유지(市有地)에 각 가정이 먹을 수 있는 장을 담그자는 ‘한 가정 한 장독 갖기 운동’을 펼칠 생각입니다. 먼저 경북 경주에서 시작해 점차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와서 함께 장을 담그고, 그 후 장이 익어가는 과정을 보기 위해 내려오면 음식축제를 열 계획이다. 우선 경주에 1만 개의 장독항아리를 준비 중에 있으며 내년에는 ‘한 가정 한 장독 갖기 운동’을 실천으로 옮기겠다고 덧붙인다.

-한식 가운데서도 약선요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계시는데….

“제 스스로 약선연구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한국 전통음식은 모두 몸에 좋은 약선음식이니까요. 단지 사람들이 오곡밥을 비롯해 비빔밥이나 잡채가 가지는 문화적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제가 먼저 연구하여 알려주자는 생각에서 약선요리를 연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식에는 과학과 철학이 담겨 있다면서요?

“대보름에 먹는 오곡밥을 보면 한식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철학적인지를 알 수 있어요. 곡식은 저마다 맛과 색깔과 형태가 다르고 종족 보존을 위해 미량의 독성을 가지고 있어요. 조상들이 대보름날에 색깔과 성질이 다른 오곡밥을 먹었던 이유는 우리 몸에 남아 있는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어요. 다섯 가지 색깔과 다섯 가지 맛의 오곡밥과 다섯 가지의 나물을 먹음으로써 몸의 독성을 제거했으니 조상들의 기발한 지혜, 아닌가요? 도라지나 고사리 등을 조사하면 약간의 독성이 검출 되지만 뿌리채소와 야채를 넣어 다함께 비비면 독성이 사라지고 중화되는 걸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식은 메뉴구성이 너무 단조롭다는 평입니다.

“한식 세계화를 먼저 들고나온 분들이 궁중요리 몇 가지(구절판, 신선로)를 한식의 대표 메뉴로 선정해 외국에 알리는 바람에 메뉴구성이 단조롭다는 지적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한식의 근본을 잃지 않으면서도 외국인이 선호하는 입맛에 맞게끔 메뉴를 다양화 하면 됩니다. 틀에 박힌 상식을 깨고 된장, 간장, 고추장을 이용한 다양한 소스 개발이 필요하고, 이를 활용해 샐러드에서부터 고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든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리가 가능합니다.”

-정림을 찾는 외국인들의 한식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외국인 가운데 일본인과 중국인이 많이 찾아오고 있어요. 일본 방송에서 약이 되는 밥상으로 소개되는가 하면, 한국의 오래된 장맛을 보려면 이곳으로 가라는 방송 코멘트 덕분에 일본인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거의 매일 두 서너 팀이 오고 있는데, 과일로 식초를 담고 산야초로 효소를 담았다는 스토리텔링을 들려주면 엄청 좋아합니다. 한식에 대해 이해하고 감동을 받는 모습이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번은 일본의 암환자가 한국에 가 오래된 된장을 구해 음식의 간을 맞추어 보라는 말을 듣고 저희 집에 왔어요. 쥐눈이콩으로 담근 20여 년 된 장을 드렸더니 효과를 보아 병원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다들 놀랐어요. 장수마을 오키나와섬에서도 이 같은 소식을 듣고 한국의 된장을 가지고 가 보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최근 부산 동명대에서 정 대표께 발효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이 한식의 발효과학에 대해 눈을 뜨게 되어 정말 반가웠어요. 대학에서 항아리를 사서 조리학과와 젊은 동아리를 중심으로 장 담그는 걸 시도하기로 했어요. 된장 간장 고추장 효소 식초 담그는 것은 물론 약초부터 우리 들판의 채소에 이르기까지 함께 공부할 생각입니다. 동명대가 산 아래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요.”

정 대표는 신세계 센텀시티와 마린시티 등에 약선요리와 한식 전문음식점을 출점시킨데 이어 최근에는 김해시가 수로왕릉 옆에 마련한 한옥체험관에도 분점을 냈다. 한식과 약선요리의 대중화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정영숙 대표는 “우리 식단을 빨리 옛날의 그것으로 되돌려야 하겠습니다. 정성이 듬뿍 담긴 어머니의 밥상으로 되돌린다면 그게 바로 약밥상 아니겠습니까”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