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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속 푸아그라…창조적 트위스트 요리'로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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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속 푸아그라…창조적 트위스트 요리'로 대박

[한국의 맛] 이종훈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총주방장

요리의 참맛 유지하면서 살짝 비튼 음식으로 감동 줘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무엇이든, 예스' 패스어라운드


영문학을 할 것인가, 요리를 할 것인가 햄릿적 고민 끝


英사보이호텔에서 2년간 근무하며 요리의 참맛 알아

▲이종훈쉐라톤서울디큐브시티호텔총주방장
▲이종훈쉐라톤서울디큐브시티호텔총주방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의 이종훈 총주방장은 특이한 경력을 가진 조리사다. 부산 동아대 영문학과를 다닌 독특한 학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정 형편상 학업과 알바를 병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식당 일이 적성인지, 전공인 영문학이 적성인지 알 수 없어 고민에 빠졌다.

두 가지의 선택을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자 여자 친구가 그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들려주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으로 건너가 요리를 하며 어느 일이 적성에 맞는지를 천천히 알아보라는 조언이었다.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아니라 ‘영문학을 선택할 것이냐, 요리를 선택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명사들이 많이 찾는 런던의 유서 깊은 사보이호텔에서 2년간 근무하며 결국 그는 영문학을 버리고 요리를 택했다. 그후 이종훈 총주방장은 다른 조리사와는 달리 요리에 창의성을 부여해 독특한 요리를 창조해나갔다. 그가 만든 창조요리의 이름은 요리의 본질인 맛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살짝 비튼다는 의미의 ‘트위스트’다. 그가 내놓는 트위스트에 손님들은 호기심과 놀라움을 표시한다. <편집자 주>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분이 어떻게 조리사가 되셨는지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산 동아대 영문학과에 합격하자마자 학교 주변에서 알바를 하며 학비도 벌고 용돈도 벌어야 했어요. 끼니 세끼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밥집에서 일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낮에는 영문학 수업을 듣고, 밤에는 새벽까지 일을 했어요. 그런데 군 제대 후 간 도서관에서 전부 똑같은 토플 책을 펼쳐놓고 공부하는 걸 보면서 이건 제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일을 할 때 제 자신이 기분이 좋았던가를 떠올리며 1996년에 요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0대 후반에 요리에 관심을 가진 그는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위해 조리자격증을 따야 했다. 공교롭게도 조리사 시험이 기말고사 시험과 겹쳐 영문과의 필수인 5000단어 외우기는 지하철에서 끝냈다.
“부모님께서 법대, 의대, 영문과를 좋아하셨고, 저도 영문학이 좋은 학과라는 생각에서 진학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문학적 감수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이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 요리 책을 펴놓고 있으니까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2학년 때부터 요리를 했지만, 막상 레스토랑을 그만둘 때에는 영문학과 요리 가운데 어느 것이 적성인지를 몰라서 잠시 방황했습니다.”

-어떻게 방황을 끝냈습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잖아요. 요리를 선택하자니 젊은 청춘을 다바친 영문학이 아깝고 영문학을 선택하자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문학적 감수성이 모자라는 것 같고…. 그래서 여자 친구의 권유로 영어권인 영국으로 건너가 도전을 시작했어요. 유학이나 취업으로 간 게 아니라 편도 비행기 티켓을 끊어 제 인생의 적성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지요.”

-영국은 조리사에게는 무덤이잖아요. 프랑스나 이태리에 비해 음식 수준이 엄청 떨어지는데….

“그런 측면도 있지만 영국에는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의 주변국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어요. 영국은 요리로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1999년 말에 영국으로 가서 2002년에 돌아올 때까지 페어몬트그룹이 운영하는 사보이호텔에서 약 2년간 조리사로 근무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 조리사가 사보이호텔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신기하고 반갑다고 했어요. 그곳에서 호텔조리의 시스템에 대해 배웠지요.”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사자인 이종훈 총주방장에게 위기도 있었다. 사보이 호텔에서 한 달 쯤 일했을 때 호텔 감사가 직원을 더 채용할 여력이 없으니 그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돈보다는 경력을 쌓기 위해 일하고 있었는데, 회사 측에서 월급을 주지 않은 채 일을 시킬 수도 없고 월급을 주면서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그에게 그만둘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사실 눈앞이 캄캄했어요. 호텔에서 일한 지 한 달만에 그만두라고 하니 안 된다고 영어로 설득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무조건 부총주방장에게 가 매달렸어요. 그는 런던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돌체스터 호텔을 추천해주며 휴가 간 총주방장이 돌아오면 부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보름만에 다시 찾아갔더니 제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해 노심초사 기다렸어요. 어렵사리 월급을 받는 사보이호텔의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어 2002년 여름까지 근무했어요.”

-귀국한 후 어떤 행보를 걸으셨는지요?

“2002년 11월에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 입사해 2005년 3월까지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근무했어요. 영국에 머물면서 이태리와 프랑스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을 살렸지요. 그후 파크 하얏트(2005년 3월~2006년 9월)를 거쳐 W 서울 워커힐 호텔(2006년9월~2011년 2월)로 옮겼습니다. 스타우드 호텔&리조트의 W 서울 워커힐 호텔의 레스토랑 키친에서 조리장으로 일하면서 르 로얄 메르디앙 상해, 중국을 비롯해 국내외의 다양한 크로스 프로모션에 참여했지요.”

-W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선데이 브런치’로 중흥을 이끌었다고 들었습니다.

“W 서울 워커힐 호텔은 전망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점을 살리지 못해 ‘선데이 브런치’에 고작 20~30명이 예약하는 수준이었어요. 좋은 전망에 걸맞은 콘셉트를 부여해 붐을 일으켜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준비한 것이 ‘패스어라운드’입니다. 패스어라운드는 손님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셰프가 직접 서빙해주는 방식인데, 조리사의 요리기술과 창조적인 감각을 넣은 창조요리 트위스트를 선보이지요. 예를 들어 감귤을 자르면 그 안에 치즈가 들어 있다든지, 미니 화분에 꽂힌 식용 꽃을 먹고나서 푸아그라를 먹게 한다든지 해서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한때 유행한 분자요리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분자요리가 화학약품을 사용해 요리의 맛을 바꾸는데 반해 패스어라운드의 트위스트는 요리의 본질인 맛을 고스란히 지키면서도 살짝 비트는 요리라고 할 수 있어요. ‘요리는 왜 이래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후 요리를 재구성 하거나 다른 스타일로 비트는 것이지요. 그래서 트위스트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분자요리는 유럽에서는 크게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에서는 반짝 관심을 보이다 사라진 상태다. 화학약품으로 맛을 바꾼 게 발효와 숙성문화가 발달한 한국인의 입맛과 맞지 않은 탓이다. 특히 한식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건강음식이기 때문에 분자구조를 바꾸고 액체를 고체와 기체로 만드는 등 형태를 바꾸어도 자연 발효에 의한 맛을 결코 따를 수 없다고 이종훈 총주방장은 말한다.

-트위스트에 대한 반응이 궁금합니다.

“커피브레이크나 각테일 파티에서 다른 호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요리라며 신기하다는 반응입니다. 한식과도 접목을 많이 하고, 요리를 담는 접시도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 호텔에서 직접 디자인을 해 주문생산을 합니다. 41층에 위치한 피스트의 선데이 브런치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음식이 색깔별로 다양하게 차려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음식은 색깔에 따라 사실 영양과 효과가 다릅니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 음식을 통해 균형잡힌 식단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피스트 디너 또는 브런치 뷔페에서 6월에는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함유된 빨강, 7월에는 뇌기능 활성화 효과가 있는 노랑, 8월에는 근육과 뼈를 회복시키는 효과가 탁월한 초록색 테마의 음식을 준비했었죠. 뿐만 아니라 피스트와 로비 라운지 바에서는 여름 시즌 동안 5가지 컬러 콘셉트의 칵테일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하얀색 등 5가지 컬러의 다양한 과일과 채소로 색다른 개성의 칵테일을 내놓았어요.”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는 GPS 손님 이력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VIP고객이 오면 그 사람의 특성을 파악해 음식에서부터 잠자리까지 서비스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중국 LG법인에서 온 손님에게는 야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지구본 위에 야구방망이를 올려놓고 그 위에 LG로고를 새긴 초콜릿을 접대하는 식이다.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 누가 감동을 받지 않겠는가.

-요리가 적성이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런던, 뉴욕, 이스탄불, 바하마 등 세계 여러 나라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일한 아이랜드 출신의 키아란 히키 총괄 디렉터가 지난 2006년 W 서울 워커힐호텔에 왔을 때입니다. 키아란 총괄 디렉터와 일하면서 요리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 자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일했어요. 당시 호텔 분위기가 좋은 데다가 트렌드가 자주 바뀐 덕분에 다양한 요리 실습을 할 수 있었어요. 중간 간부의 위치에 있어 제 이름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키아란 총괄 디렉터를 도우며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어요. 고객이 원하면 언제, 무엇이든, 한다(Whatever, Whenever, Yes)는 마인드도 당시 가지게 되었고, 창조적인 요리를 생각하며 신나게 달려왔어요.”

-요리 철학이 있다면….

“요리세계는 낙하산도 없고 짧은 시간에 다른 사람을 초월할 수도 없어요. 요리는 고급기술을 가진 장인의 일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거짓 없이 정직하게 요리하는 걸 생명처럼 여기고 있어요. 예전에는 선배가 본인은 못하면서도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 잘못된 관습도 고쳐야 해요. 예컨대 파스타를 만들 때 말로는 짜지 않고 싱겁게 맛나게 만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선배는 시범을 보여주는 대신에 속된 말로 ‘아가리 쿠킹’을 합니다. 아랫사람이 잘 못하면 손을 잡고 보여주어야 해요. 조리사의 세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직장이든 선배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떳떳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조리사보다 잘하는 요리를 소개해주시죠?

“조리사마다 특장점이 있기 때문에 특정 요리를 잘한다고 얘기하기보다는 손님의 특성에 따라 맞춤 요리를 하는 게 제 특기라고 할 수 있어요. 호텔의 비즈니스 전략이기도 하고, 메뉴에는 존재하지 않는 조리사의 기교와 콘셉트가 살아 있는 패스어라운드 운영이 남다른 점이지요. 고객은 일반적으로 메뉴에 소개된 음식 이외에는 먹을 수가 없지만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호텔에서는 얼마든지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할 수 있고, 저를 비롯한 조리사들은 언제든지 패스어라운드를 통해 서비스를 해줍니다.”

이종훈 총주방장의 고객 맞춤 응대는 호텔이 위치한 신도림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꽃을 피웠다는 평가다. 커피 브레이크에 10개도 팔기 힘든 티셋을 하루에 100여 개 이상 팔고 있으니 그의 고객 맞춤 응대가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종훈 총주방장에게 요리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요리는 헌신이자 희생에서 탄생하는 예술입니다.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 하지만. 제가 요리를 하는 이유는 손님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조리사로서의 꿈이 있다면….

“한국인 조리사로서 한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전공이 양식이지만 한식을 모체로 한 트위스트로 외국인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요. 일반 갈비집이나 한정식 집이 아닌, 전통 한식 레스토랑을 열어 한국의 맛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요즘 양식과 한식을 결합한 퓨전 요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가끔은 외국인이 이 음식을 먹고 한국의 맛을 알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식재료를 꼬아놓았다고 해서 외국인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한국 전통의 맛을 추구하면서 외국인이 좋아하는 문화를 담아야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지요. 예컨대 일본 간장 ‘기꼬망’이 성공한 과정을 보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농구경기대회를 후원하며 브랜드를 알리는 동시에 슈퍼마켓에서 팔았어요. 그로 인해 미국인들은 스시를 꼭 기꼬망 간장에 찍어 먹어야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