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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옻칠예술의 만남, 작가로서 황홀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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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옻칠예술의 만남, 작가로서 황홀하고 행복했다"

[스페셜]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 주관 '2013레지던스' 참여작가 인터뷰



옻칠의 광채, 나전의 영롱한 빛, 색 융합된 옻칠회화는 아시아 미술의 미래


中 멩홍 리교수 "회화와 공예성 아우른 융합시대의 새예술 탄생"

용강 우작가 "최고의 프로그램…캔버스가 필요없는 독창적 예술"


김한내 작가 "변화무쌓한 물성…오묘한 감성 자극할 작품 만들 것"


▲통영옻칠미술관2013레지던스교육프로그램에참가한멩홍리(왼쪽두번째부터),용강우,권순섭,김한내작가가김성수관장(왼쪽첫번재)으로부터실기수업을듣고있다.
▲통영옻칠미술관2013레지던스교육프로그램에참가한멩홍리(왼쪽두번째부터),용강우,권순섭,김한내작가가김성수관장(왼쪽첫번재)으로부터실기수업을듣고있다.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경남 통영시 용남면 화삼리 미늘고개의 언덕에는 푸른 남해바다를 날름 삼키며 서 있는 통영옻칠미술관이 있다. 천 년의 전통을 이어온 나전칠기와 채화칠기를 바탕으로 최근 ‘한국옻칠회화(Korean Ottchil Painting)’라는 새로운 미술 장르를 탄생시킨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한 이후 12공방을 설치하고 12공방 중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한 덕분에 통영은 400년 동안 칠예(漆藝)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값비싼 옻칠 대신에 캐슈를 칠해 퍼트리는 바람에 칠예의 문은 굳게 닫혔다. 70여 평생을 옻칠과 함께 한 ‘옻칠명장’ 김성수 옻칠미술관 관장에 의해 그 칠예의 문이 다시 활짝 열렸다.

그는 칠예의 문을 연 것에 그치지 않고 최근 옻칠예술을 ‘경남도 브랜드’를 넘어 아시아의 문화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실험을 강행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옻칠미술관 옆에 사비로 교육관을 지어 중국 광서대 멩홍 리 교수, 중국 칭화대 용강 우 대학원생, 뉴질랜드 김한내 작가 등 세 명의 외국작가와 함께 동방대학원대학교 권순섭 교수, 최은란, 하정선 작가 등 세 명의 한국작가를 초청, 2013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4개월간의 작업 결과물을 특별 전시한 것이다.

중국 칭화대 미술학원에서 칠예를 전공하고 현재 광서대 미술학원 부교수로 있는 멩홍 리는 “중국의 칠예와 한국의 나전칠기의 만남은 작가로서 황홀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고 말했다.

또 칭화대 미술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용강 우는 “4개월간의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은 잘 짜여진 박사과정 수업 그 이상이었습니다”며 칭찬했고, 중학교 2학년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한내 씨는 “옻칠의 고유한 성질과 옻칠만이 가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반했습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편집자 주>
▲통영옻칠미술관2013레지던스에참가한6명의작가들과김성수관장(왼쪽에서세번째)이교육이끝난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
▲통영옻칠미술관2013레지던스에참가한6명의작가들과김성수관장(왼쪽에서세번째)이교육이끝난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
옻칠은 한중일의 공통문화다. 한국에 나전칠기가 있다면, 중국에는 조칠(彫漆), 일본에는 마키에(蒔絵)가 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전통적으로 사용해 오던 옻칠 대신 합성칠로 많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2010년 현재 옻칠을 대칠(大漆)로 명명하여 옻칠을 사용하는 작가가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은 통일신라시대 이전의 채화칠기와 고려시대의 나전칠기에 기반을 둔 ‘한국옻칠회화’를 탄생시켰다. 특히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새로운 영역의 한국옻칠회화 창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2013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을 개최해 주목을 끌었다.

참여한 작가는 일본을 제외한 중국과 한국작가 총 6명이다. 중국에서는 칭화대 미술학원을 졸업한 멩홍 리 광서대 교수와 용강 우 칭화대 미술학원 대학원생이 참여했고, 뉴질랜드에서는 김한내 작가가 참여했다. 여기에 동방대학원대학교 권순섭 교수, 통영의 지역작가 최은란과 하정선이 가세했다.

이번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을 주관한 김성수 관장은 “옻칠재료의 물리적 특성인 방수(防水), 방부(防腐), 방충(防蟲) 작용과 옻칠의 미학적 특성인 광채, 장식성, 조각미를 살린 한국옻칠회화를 회화와 조각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내놓았어요.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 모두 한국옻칠회화의 우수성에 감탄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이 될 수 있겠다는 찬사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고 말했다.

멩홍 리 교수는 지난 2000년 칭화대 미술학원 3학년 때 김성수 관장으로부터 2개월에 걸쳐 칠예기법을 배운 적이 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통영옻칠미술관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해 다시 나전기법을 체계적으로 학습해 좋았다고 말했다.

“김성수 관장은 그때 배울 때나 지금이나 가르치는 방법이 똑같아요. 교수법이 진화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작가로서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과 치밀함이 그대로였어요. 대학생 시절에는 실습재료가 부족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완벽한 작업환경에서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는 등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리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나전기법을 발전시킨 한국과는 달리 계란껍질(卵殼)이나 귀중석(貴重石)을 주로 작품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회화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면, 한국은 나전을 강조해 ‘공예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성수 관장은 회화성과 공예성을 아우른 ‘한국옻칠회화’를 창안함으로써 융합과 창조의 시대에 걸맞은 예술을 탄생시킨 것에 리 교수는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관장
▲김성수통영옻칠미술관관장
지난 4개월간의 교육프로그램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는 그는 “옻칠회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나전의 두께와 크기, 온도에 따라 아교를 다르게 처리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론을 듣고 실습을 하는 동안 나전의 기초부터 마지막 완성까지 한 과정, 한 과정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배운 덕분에 이전에는 왜 그렇게 작업하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전체를 이해하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고 덧붙였다.

칭화대 미술학원 추천으로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에 합류한 용강 우는 칠예를 전공하고 있는 수재(秀才)다. 석사과정 3학기를 끝낸 그는 “중국에서는 옻칠에 나전을 간단히 붙였는데, 한국에서는 아교를 사용해 나전을 완성했어요. 과정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전체 내용을 숙지하니 굉장히 과학적인 기법이란 걸 알았습니다”고 평가했다.

옻나무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에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우루시올 성분의 참옻나무는 극동아시아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만 자란다. 옻칠 예술이 동양의 예술로 알려져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옻칠 예술의 정수(精髓)라 할만한 채화칠기와 나전칠기를 바탕으로 한 한국옻칠회화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용강 우는 “한국옻칠회화는 한중일 옻칠예술을 아우른다는 측면에서 환영할만하지요. 특히 캔버스가 필요 없고 공예와 회화가 결합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며 공예와 회화의 수준이 뒷받침되기만 한다면 세계인을 사로잡을 것으로 봅니다”고 예견했다.

▲김한내뉴질랜드작가
▲김한내뉴질랜드작가
▲멩홍리교수
▲멩홍리교수
▲용강우작가
▲용강우작가
그러나 한국옻칠회화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그는 분석했다. 공예에 뛰어난 작가라 하더라도 회화적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제대로 된 옻칠회화를 완성할 수 있고, 반대로 회화에 뛰어난 작가라 하더라도 공예적 감각이 미비하다면 옻칠회화가 가진 예술성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김성수 관장은 공예, 회화, 조각 등 미술의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발휘하며 옻칠회화로 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용강 우는 이번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을 위해 칭화대 대학원생 지원자 5명 중에 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감각적인 작업으로 유명하며 작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중국에서는 유명 작가다. 가로 30㎝, 세로 30㎝ 크기의 작품 한 점 가격은 8000위안(한화 120만원)에 팔린다.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칠예의 특성을 살린 전통기법에 충실하기 때문에 일반 유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평입니다. 물감이 갖지 못한 시각적 효과로 전시장에 놔두면 금방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에서 인기를 누리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배운 나전기법을 활용한다면 컬렉터들의 주목을 더욱 받지 않을까요”라며 자랑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뉴질랜드와 호주를 오가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한내 작가는 우연히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김 작가는 옻칠의 고유한 성질과 옻칠만이 가지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 씨는 옻칠회화를 배우는 도중 몸에 옻이 올라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별탈없이 지냈는데, 작업에 열중하느라 몸상태가 나빠지자 옻이 올랐어요. 옻은 일반 화학약품과는 달리 살아있는 유기체라 가만히 두어도 자연치료가 되지만 더 많은 작업을 하기 위해 병원신세를 졌어요. 작가와 작품이 함께 호흡하고 공을 들이는 정도에 따라 광채를 달리하는 작품은 옻칠회화 밖에 없어요. 제가 한국에 오기 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매력이 있었어요.”

특히 김한내 작가는 옻칠과는 다르지만 이와 흡사한 바니쉬의 원료인 셸락으로 작품을 해왔다. 아주 우연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었고,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기존의 작업 방식에 ‘새로운’ 혹은 ‘전통의’ 옻칠기법을 접목하겠다고 앞으로의 구상을 밝혔다.

김한내 작가의 작품의 경향이나 주제는 작업의 과정으로부터 드러나는 ‘사이’라는 개념의 공간을 만남, 충돌, 통과 내지는 투과하는 장으로서 표현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간극을 오가는 데에 공포심과 그것의 힘이 작용하는 바를 초자연적 현상을 인지함에 있어서 공포가 행사하는 영향을 통해 살펴보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막연한 호기심에 접근한 옻칠의 매력은 말로 충분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해요. 세밀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은 어찌보면 옻칠을 통해 스스로를 연마하는 갈고 닦는 과정 속에 혼연일체의 경험을 맛보는 참으로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동양의 미를 오롯이 갖추었으나 형태, 질감 등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것을 옻칠회화의 매력으로 꼽는 김한내 작가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옻칠 특유의 물성을 살려내어 고유하나 색다른, 알 듯 모를 듯 오묘한 감성에의 자극을 유도할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하고자 합니다. 이전에 주로 사용한 재료(목탄, 셸락)와 함께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그러나 조화로운 작업을 시도하려합니다”고 앞으로의 작업구상을 밝혔다.

대학원에서 이론을 가르치는 권순섭 교수는 “과정 하나하나가 신병이 훈련을 받듯 혹독했어요. 그럼에도 선 하나까지 다시 배워 제가 가진 나쁜 습관도 고치게 되었고, 나전에 대한 재료만 설명하다가 실제 작업을 해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습니다”고 말했다.

통영옻칠미술관이 주관한 2013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은 일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별화 되었다는 평가다. 우선 일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가가 상주하며 그 지역의 배경을 중심으로 작품을 해나가는데 반해 이번 교육프로그램은 철저하게 교육과 실습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참여 작가들은 옻나무 밭을 답사해 직접 옻칠 채취를 체험했는가 하면, 워크숍, 포럼, 세미나 등을 통해 한중일 옻칠예술의 특장점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성수 관장은 “이번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작가와 한국 작가가 서로 공생하면서 창의력을 발휘한 게 엄청난 수확입니다. 특히 중국의 두 작가는 작품의 방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국옻칠회화를 서슴지 않고 받아들여 자기 방식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것을 볼 때 놀라웠습니다”고 총평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장기적인 사업으로 연결되어 세계의 작가들과 한국의 작가들이 계속해서 만나는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하는데, 예산 부족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앞으로 1년에 두 번씩 레지던스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면 한국옻칠회화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을 일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지속적인 후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