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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염색 오묘한 色으로 세계를 물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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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염색 오묘한 色으로 세계를 물들이겠다"

[스페셜]전통염색과 사랑에 빠진 김정화 染匠(염장)

40년 넘게 전국을 누비며 '촌로 染匠' 이야기 채록하며 염색기법 습득


20년만에 '本色' 오롯이 재현…내가 원하던 색을 모두 만들 수 있었다


사용 편리하고 때깔 좋다고 쓰는 합성인디고는 천연염료라 할 수 없어


세계적 미시사 권위자 긴즈부르그 방문 "당신의 집이 박물관이다" 격찬

남색 염색물 '잉물'의 염재 '청두' 1960년 이후 멸종 안타까워


▲전통염색의매력에빠져40년동안한국전통의색을재현해낸김정화염장.전통염색을하며세상에버릴것은하나도없다는소중한사실을깨달았다고한다.
▲전통염색의매력에빠져40년동안한국전통의색을재현해낸김정화염장.전통염색을하며세상에버릴것은하나도없다는소중한사실을깨달았다고한다.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최근 들어 식물에서 추출한 색으로 염색하는 천연염색이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천연염색이 가진 색의 아름다움보다는 아토피 등 피부염에 좋다는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 그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뮌헨, 비엔나,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옛 도시들을 가보면 건물외관이나 거리의 패션이 저채도와 저명도의 색으로 뒤덮여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거리와 지붕은 순도가 높은 화학합성 색으로 밝고 화려해 일순 멋져 보인다. 서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사계절 내내 자연이 빚은 가장 아름다운 색을 가진 한국인이 어째서 차분한 느낌의 자연의 색을 버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화 염장(染匠)은 서구에서는 염료의 화학합성법을 발견한 지 150여 년이나 지났기에 그 한계를 충분히 느껴 자연의 색으로 돌아가고 있음에 반해, 한국인은 화학합성염료를 대중이 흔하게 사용한 것이 한국 전쟁 이후로 50여 년 밖에 되지 않아 우리 모두가 지금 밝고 화려한 화학의 색과 열애 중이라고 설명한다.

어쨌든 1976년부터 촌로들로부터 전통염색에 관한 이야기를 채록하고 재현하며 오롯이 전통염색의 세계에서 빠져있는 김정화 염장.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색을 찾아 전통염색을 해온 그는 세계를 염색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염색은 어려운(difficult) 게 아니라 고된 노동이 수반되기에 힘들(hard) 뿐이라는 김정화 염장을 만나 염색의 세계를 탐험한다. <편집자 주>

-천연염색과 전통염색은 어떻게 다릅니까?

“먼저 천연염색이란 용어 즉 개념정의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천연염색으로 불리는 염재들은 두서너 가지만 제외하고는 모두 식물에서 추출한 색료를 쓰기 때문에 천연 또는 자연이란 용어를 써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독일이나 일본에서 식물색소성분만을 추출한 가루염료로 염색한 것과 구분짓기 위해 제가 하는 염색법은 전통염색이라 하는 게 맞습니다. 가루 염료로 염색한 직물들은 전통법으로 염색한 색감, 견뢰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인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는데 얼마 전 짚풀생활사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난 2010년 말쯤 인병선 짚풀생활사 박물관장이 제게 전화를 하셨어요. ‘모 박물관에서 한국과 일본의 청‧홍색 비교 전시가 있어서 가 봤더니 내가 본적이 없는 빨강과 파랑이 나왔어! 왜그래?’라고 물으시길래 ‘아, 그 빨강은 코치닐에서 나온 색이고, 그 청색은 수입 청대가루로 해서 그렇구요’라고 설명을 드리자 당장 끄집어내라고 했어요. 진정 우리색이 무언지 내보이지도 않는다면 염색하는 사람이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하시며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왕의 색-대홍전」을 하게 되었고, 이어서「백성의 색- 쪽」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언제부터 천연염색에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전통염색에 대한 이야기를 채록한 것은 1976년 무렵부터였어요. 농촌지도소에서 생활지도사로 농업인들의 의식주에 관한 일을 하다 보니 제가 관심이 있던 염색에 관한 이야기들을 쉽게 들을 수 있었어요. 2008년까지 과거에 직접 손으로 천연염색을 해본 경험이 있는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그분들의 구술을 채록했어요. 전통염색법은 「규합총서(閨閤叢書)」「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상방정례(尙方定例)」「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 전해지고 있지만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빠지거나 글쓴이와 염장의 신분이 달라 잘못 기록된 부분이 있다는 판단에서이지요. 실제로 색을 내는 원료로 쓰이는 식물 하나만 해도 토양과 그 해의 일기에 따라 차이가 나는가 하면, 섬유와 염료를 이어주는 매염제의 종류와 방법에 따라 염색결과가 달라요. 그래서 염장의 말을 듣고 염색을 해보다가 잘 안되는 게 있으면 몇 번을 되찾아가 묻고 또 물었지요.”

-특별한 동기가 있었는지요?

“처음부터 전통염색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자료수집이 늘어감에 따라 그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무엇보다 어린 시절 자연을 관찰하며 ‘본 색’과 ‘그리는 색’이 다르다는 걸 알고 갈등을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까지 경기(驚氣)를 자주 해 의식이 돌아오면 엄마 등에 업힌 채로 노란 은행잎, 파란 하늘, 붉은 해 등을 유심히 바라봤어요. 당시의 크레용이나 지금의 아크릴 물감에서는 제가 어릴 때 관찰했던 색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은행잎 하나만 하더라도 색깔이 짙푸르다, 샛노랗다고 하는데 그 안에는 푸르면서도 누른 색이 들어가 있어요. 물감을 섞고 덧칠을 해도 제가 본 은은한 색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에게 물어 풀에서 색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고, 꽃이나 잎을 따서 천에 물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김정화 염장은 결혼과 함께 다니던 농업기술센터를 그만두고 집안일을 하다 이혼을 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중 어릴 때부터 항시 꿈꾸었던 화가가 되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1990년에 생활지도사 시험을 다시 보았어요. 공무원을 하면 경제적으로 괜찮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까요. 1990년 7월부터 봉급의 20%를 염색하는 일에 사용하다가 점차 비중을 늘려 2008년 퇴직할 무렵에는 급여의 90%를 염색에 투자했어요. 1993년 경주시에 근무하며 제가 배운 염색에 관한 지식을 나누다가 1999년에 농촌진흥청에서 ‘천연염료염색연구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전국에 확대 보급하기 시작했어요. 2001년부터는 일반 업무 대신에 전통 염색을 가르치는 일만 했고, 그 덕분에 2002년에 ‘신지식인 공무원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얼마 만에 자연에 가까운 원하는 색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염색을 시작한 지 20년이 다된 2006년도에 제가 원하던 색들을 모두 만들 수 있었어요. 같은 녹색을 얻더라도 여름과 겨울에 사용하는 염료가 달라요. 예컨대 봄에는 아주 여린 풀잎(5월), 여름에는 ‘니람(泥藍‧ 조개로 만든 횟가루를 넣고 만든 진흙 상태로 농축시킨 쪽 염료)’을 발효한 염액에 청색 염을 한 다음 황색염으로로 덧염색을 해야 하고, 겨울에는 저장한 녹엽을 사용해야 제대로 된 색을 낼 수 있었어요.”

-원하는 색을 얻은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자 했습니까?

“재료가 준비되었으니 집을 지어야지요. 제게 있어 집은 우리가 보았던 느낌의 색으로 그림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염색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색료가 완전하게 준비되자 부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캔버스로 종이를 쓰지 않고 천을 사용하면 더 오래가므로, 염색을 한 천은 훌륭한 캔버스이지요.”

-힘들게 얻은 자연의 색은 모두 몇 가지입니까?

“20여 년 동안 실물자료로 남은 것이 1000여 가지로 물들여진 천을 가지게 되었어요. 붉은색 계열 179롤, 청색 계열 200롤 등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요. 홍화로 만든 대홍색이 언론에 보도된 후 귀부인 한 분이 찾아와서 사고 싶다고 해요. 그래서 이건 너무 비싸서 팔 수 없다며 거절했어요. 사실은 대홍색이 너무 아까워 팔고 싶지 않아 비싸다고 둘러댄 것이지요. 어렵고 힘들게 만든 전통염색직물들은 옷감으로 팔기보다는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게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팔지 않아 늘 가난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어서 더 이상 바랄게 없이 행복해요.”

김정화 염장은 대홍색은 1500만 원을 들여도 만들기 힘들다고 말했다. 만개한 홍화 꽃잎을 따서 홍떡을 만들고, 황즙을 빼고, 60번씩 개오기를 하는 모든 공정이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홍화로 염색한 대홍색은 자료로서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했다.

“흔히 천연염색을 하는 분들은 쪽 염색이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어렵지 않은 게 염색 공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따라하면 되고, 날씨도 기후온난화로 인해 쪽 염색을 하기에 딱 좋아요. 과거에는 삼복더위라도 열대야가 짧았지만 요즘은 여름 내내 열대야로 쪽 발효가 오래 지속 될 수 있으니까요.”

-염색을 편하게 하기 위해 합성 인디고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합성 인디고는 천연염색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손쉽게 염색을 하기 위해 하이드로 설파이드라는 환원제를 쓰기 때문에 실제로 천에 염색을 하면 탈‧변색이 심해 보존성이 떨어집니다. 미역국을 끓일 때 소금을 넣었을 때와 국간장을 넣었을 때 각각의 맛이 다르듯이 염색도 마찬가지이지요. 순도 높은 합성 인디고는 명도가 높은데 반해 깊고 은은한 전통 쪽염으로 한 남색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요. 사용하기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화학합성 염색과 다른 색감을 얻고자 한다면 전통 그대로 염색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염색으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았는데, 어떤 기법으로 하신 겁니까?

“쪽 염색을 할 때 잘 발효된 쪽 항아리의 수면 윗부분에 붉은 빛을 띤 검푸른 염료막이 얇게 생깁니다. 침염을 할 때 이 독특한 물 경계색은 검푸른 남빛과 흰색을 나타내 작업자가 원하는 대로 회화적인 선을 만들 수 있게 하지요. 저렇게 자연스럽고 예리한 선은 전통 발효법으로만 가능하고 한번 선이 만들어지면 빠지지 않아요.”

-염색에서 쪽이 왜 중요한가요?

“다양한 색을 만드는 기본 색료인 오방정색이기 때문이지요. 흰색, 검정색, 빨강, 노랑, 파랑이 오방색인데 파랑을 만들 수 있는 색료가 쪽이기 때문입니다. 쪽은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가질 수 있었던 색이어서 조상들이 즐겨 사용했습니다.

삼원색은 그림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반찬을 바꿀 수는 있지만 밥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청색은 쪽으로만 가능하고 색이 잘 빠지지 않아요. 쪽은 제철에 생잎으로 한 생쪽 염, 쪽풀을 우려낸 염료에 잿물만 넣고 발효한 영남식 쪽염, 니람을 만들어 하는 농축 발효염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6‧25전쟁 전만 해도 어지간한 살림집에서는 쪽물 치마와 쪽 이불을 사용했어요. 말하자면 쪽 염색은 전통염색을 하는 사람들의 기본 식량인 셈이지요.”

-호남지방과 영남지방의 염색이 어떻게 달랐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2종의 인디고 식물을 사용해왔는데, 호남지방에서는 여뀌과의 쪽을 사용했고, 영남지방은 청두를 사용했어요. 호남지방에서는 지금까지 쪽의 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영남지방에서는 1960년 이후 청두가 멸종되었어요. 특히 경주지역에서 재배되던 청두는 주름 없는 상추, 천방배춧잎을 닮은 한해살이 작물로 밭고랑 사이나 목화밭에 간작(間作)한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청두는 햇볕을 많이 받으면 그 잎이 두터워지며 가지 빛을 띠고 뿌리 위쪽부터 몇 잎 씩 따 여러 차례 수확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이 청두를 염재로 사용한 염색물은 ‘잉물’로서 가지 빛을 띤 짙은 남색입니다. 안타깝게도 잉물의 염재인 청두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멸종되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다행이 연(緣)이 닿아 잉물 들인 치마 두 점은 제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기준에 색을 맞추다 보니까 우리의 색을 잃어버린 건 아닌가요?

“우리말은 색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엄청 발달해 있어요. 그런데 서양식 교육을 받으며 색을 표현하는 기준조차 서양언어에 맞추어져 있으니 우리 고유의 색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크레용이나 물감의 경우 화학적인 합성색이므로 우리가 자연을 보면서 느낀 색감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요. 한 여름의 나뭇잎은 깊고 푸른 녹색인데 교실 현장에서는 형광 빛이 나는 초록색으로 칠하고 있어요. 이러다 보니 우리가 눈으로 보며 인지한 색과 표현하는 색이 다르게 된 것이지요.”

-쪽 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쪽 염은 잿물과 온도가 가장 중요해요. 쪽 대나 콩대, 명아주 대, 다북쑥 등을 태워서 그 재를 뜨거운 물로 내린 pH14인 강알칼리의 잿물만 사용하면 색이 잘 일어요. 잘 발효된 쪽물에 침염중인 베는 노랑색이지만 꺼내서 공기와 접하면 청색으로 곱게 발색됩니다. 제대로 발효된 쪽으로 물을 들이면 천이 모두 헤질 때까지 색이 빠지지 않아요. 이처럼 쪽에서 나온 청색은 비록 채도가 떨어지지만 자연의 색이고 우리 전통 색이라고 할 수 있어요.”

-쪽 염색 과정을 소개해주시죠.

“주둥이 넓은 항아리나 500~600L 들이 큰 고무통에 쪽잎을 넣고 물을 부어 돌을 올려놓고 3~4일 정도 삭히면 자연스럽게 파란 색소가 우려져 나와요. 누렇게 변한 쪽잎을 건져내고 조개껍질을 태운 재를 넣고 당그레로 저어 색을 가라앉힙니다. 가라앉힌 농축염료를 니람(泥藍)이라고 하는데, 진한 잿물에 니람을 풀어 열대야가 지속되는 삼복에 한 달 정도 발효를 시킵니다. 처음에는 수면 전체가 파란색이었다가 하루 몇 차례 저어주면 어느 날 물빛이 노랗게 바뀌면서 파란색 물발이 올챙이처럼 서요. 그 때 물을 들이는 겁니다.”

-전통 쪽 염색과 녹색 염색으로 만든 다양한 회화작품은 어떻게 완성되나요?

“천을 묶어 물들이는 홀치기 기법이나 천을 쪽 항아리에 담궈 진한 남색과 하얀색의 물 경계색으로 선과 면을 표현합니다. 녹색은 그 위에 대황으로 덧염색을 해서 만들어요. 전통발효공정으로 만든 쪽물은 탈‧변색이 되지 않아 보존성이 아주 좋습니다. 요즘은 바탕에 쪽염을 한 직물에 일반 염료를 쓰지 않고 감즙으로 덧염색 하는 작업을 많이 합니다. 작품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3년에서 5년까지 계속 빛과 물을 주어 발색을 시키면서 덧작업을 하여 원근과 명암을 표현하지요. 사람의 노동력과 함께 길고 긴 날의 이슬과 달빛이 함께 해온 작업이기에 은은한 자연의 색에 가깝다고 자부합니다.”

-조선시대는 색이 신분을 상징했습니다. 왕과 백성의 색이 어떻게 달랐는지요?

“홍화로 만든 대홍색이나 수입 염재에서 얻은 적색이 왕이나 고급관리의 색이라면, 청색이나 녹색은 서민들이 사용하던 백성의 색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백성들은 구하기 쉬운 쪽으로 염색을 하여 거무스럼한 회색과 짙은 남색, 녹색, 옥색 서너 가지 색만 사용했던 것이지요. 일본을 왕래한 통신사(通信使)의 일기(日記)를 모아 편집한 「해행총재(海行摠載)」를 보면 예물을 교환할 때 우리나라는 일본 관리에게 표피와 인삼을 주었고, 일본은 우리 통신사에게 적색을 내는 염료식물인 소방목을 주었다고 나와 있어요. 표범의 가죽인 표피와 소방목을 맞바꾸었으니 적색 염료가 얼마나 귀했던지를 알 수 있지요. 소방목은 요즘 시세로는 2500원 밖에 안 하는 값싼 염료이지만 당시에는 아열대지방에서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 귀했어요. 따라서 적색은 신분이 높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접근할 수 없는 색이었고, 남색은 서민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색이었어요.”

-전통염색의 특징을 꼽는다면….

“식물을 염재로 하는 전통염색은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첫 번째는 화학염색과 다른 자연스런 색감을 지니고 두 번째는 작업자와 상황에 따라 저마다의 독특한 색상을 띠며, 세 번째는 환경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화학합성염료는 색소의 순도가 높아 명도와 채도가 높은데 반해 전통염색은 염료식물의 나무껍질, 꽃, 잎 등을 끓이거나 발효시켜 색을 만들다보니 순도가 떨어지는 대신 색감은 자연물과 더 가깝지요. 자연색감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을 꼽자면 반복적인 염색공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 산타클라라대학교 드세세이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하고 세계적인 미시사 권위자인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방문을 받기도 했는데, 그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우리는 전통염색법으로 제대로 염색한 직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연하고 잘 빠지는 천연염색에 식상해서인지 이렇게 전통염색전을 해도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서양인들이 전통염색을 대하는 자세나 반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요. 「치즈와 구더기」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미시사 권위자인 카를로 긴즈부르그와 이탈리아 페라라 국립박물관장인 루이자 부부가 지난 8월 3박4일의 일정으로 제 작업실을 찾아왔어요. 그런데 전통염색이 지닌 깊은 색에 매료된 나머지 집 밖으로 외출도 하지 않은 채 3일 꼬박 작품만 살펴보던 게 기억이 나요. 마지막 날 집을 떠나면서 ‘당신 집이 박물관이다. 당신의 색은 1700년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색이다’고 말했어요. 서양인들은 화학합성으로 만들어진 색과 자연물로 만들어낸 색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더라구요. 미국 드세세이미술관에서의 반응도 마찬가지고요. 인공의 색이 따라올 수 없는 전통염색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전통염색을 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

“국내에 있는 식물 208종을 실험 했습니다. 그중 잡초로 불리지만 질이 좋은 염재로 쓸 수 있는 식물을 20여 종 찾았어요. 세상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미처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해 ‘못 쓸것’들이라고 말할 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치가 있고 다 소중한 것입니다.

또 하나 마음이 행동이고 행동이 실체라는 것입니다. 마음먹고 20년을 행동하니 제가 원하던 색을 식물에서 모두 얻은 점입니다. 이젠 모든 색을 쓸 수 있어서 자유롭습니다. 색이 곧 제 기쁨이고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