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평생 '벙어리 영어' 탈출법 비밀은 '소리'에 있다"

공유
0

"평생 '벙어리 영어' 탈출법 비밀은 '소리'에 있다"

[스페셜] 차석호 차석호언어연구소 소장

일본식 영문법‧무분별한 E.S.L.학습법이 영어교육을 망쳐


말은 갓난아이도 몇 년이면 익힐 수 있는 것처럼 쉬운데…


영어가 세계어 시대…'로마자 표기'서 '영문표기'로 바꿔야


김포 'Gimpo' 쓰면 모두 '짐포'로 읽어 'Guimpo'로 써야

글로벌이코노믹 연재 통해 귀‧말문 틔이는 비법 전수 기대해보시라


▲사법연수원에서영어를강의하고있는차석호차석호언어연구소소장은일본식영문법이나무분별한제2외국어로서의E.S.L.학습법이한국영어를망친주범이라며세종대왕이백성들에게바른소리를가르쳤듯이'소리영어'를공부해야한다고주장한다.
▲사법연수원에서영어를강의하고있는차석호차석호언어연구소소장은일본식영문법이나무분별한제2외국어로서의E.S.L.학습법이한국영어를망친주범이라며세종대왕이백성들에게바른소리를가르쳤듯이'소리영어'를공부해야한다고주장한다.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토익 900점의 한국 영어가 ‘벙어리 영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성적에 관계없이 소통적인 영어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결과적으로 ‘왜 그럴까’라는 의문의 답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영문법, 영단어, 영독해 등 영어에 대한 각종 지식은 누구에게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중무장한(?) 한국인들이 ‘말(소통)’ 앞에서는 그저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뿐만이 아니다. 영어공부 방법도 세계 각국의 거의 모든 교수법이 국내에 유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대형서점의 영어학습 코너를 장식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영어의 바다에 빠뜨려라’ ‘영어공부 절대 하지마라’ ‘리양의 미친영어’ 등 수많은 학습서가 태풍처럼 몰려왔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육당국에서는 문법보다 회화가 중요하다며 원어민 교사를 동원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러나 정부의 야심찬 계획도 보편적 영어능력 향상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답답한 현실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면서 백성들에게 ‘바른 소리’를 가르친다(訓民正音‧백성들에게 바른 소리를 가르친다)고 했듯이 ‘소리’에 주목해 영어학습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 있어 주목된다. 바로 사법연수원에서 ‘살아 있는 영어’를 강의하며 차석호 언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차석호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 주>

-한국만큼 영어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도 드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실력이 제자리걸음인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실질적인 성과보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개발된 각종 영어학습법에 오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습자들은 이 방법으로도, 저 방법으로도 안 되다 보니까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지만, 실제로는 영어의 본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교수법에 문제가 있어요. 일본인에 의해 정리된 절름발이 문법에다가 라틴어 계통의 학습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영어학습법’에 의존한 것이 이런 불행을 초래했지요. 모든 학습이 다 그렇듯이 언어도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채 규칙과 단어만 암기해서는 그 불편이 해소되지 않아요. 듣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겠어요? 먼저 영어를 제대로 들으려면 지금껏 금과옥조로 여겨온 일본식 영문법이나 ‘E.S.L. 방식’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차석호 소장은 21년의 캐나다 생활 대부분을 영어를 강의하며 보냈다. 특히 토론토에 차석호 언어연구소(Cha Lab)를 설립해 영문 표기의 기본규칙을 찾아왔으며, 이를 통해 영문은 한글보다 훨씬 쉽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지난 1996년부터 2년간 국립 경찰대학에서 영어강의를 했던 그는 2010년에 영구 귀국해 2011년부터 사법연수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본인이 어학에 소질이 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의 제 모습은 그런 오해도 받을 소지가 많습니다만, 저 역시도 영어에 대해 큰 아픔이 있었어요. 대학 때,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 유학길에 올랐는데, 영국의 어느 항구에서 그 자신감은 눈물로 변했지요. 단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그 자괴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세관에서 묻는 말이야 뻔한 이야기들인데, 제가 하는 말도 그들의 말도 ‘말’이 아니라 이상한 ‘소리’일 뿐이었어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밤새 눈물을 흘리다가 제게 영어를 가르친 모든 분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 부끄러움에서 홧김에 언어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아이가 모국어를 익히는 방식으로 영어를 접하는 ‘소리 학습법’을 만들어 거의 20년간 주로 캐나다에서 강의해 왔습니다.”

-그래도 영어에 대한 많은 지식이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영어능력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한다면, 지금껏 우리는 자동차 정비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운전을 배운다고 착각해왔어요.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학문적으로만 영어를 접해 온 사람은 소통적인 영어를 가르칠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로 익힌 다양한 영어 지식이 오히려 영어 공부에 방해가 됩니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영어를 잘한다’는 농담이 있듯이 언어는 지식이나 재력, 능력에 좌우되는 게 아니니까요.”

차 소장은 모든 언어는 쉬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언어 학습의 대상은 성인이나 외국인이 아니라 아이들로서, 갓난아기도 몇 년이면 말을 충분히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대상으로 인식하는 영어도 실제로는 체계가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에 통역사 양성기관인 사역원이 있었어요. 과거에 급제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한문을 읽을 줄 아는 선비들이 말이 도통 안 되었어요. 문자 우선 학습의 폐해가 나타난 것이지요. 나중에 사역원은 서자(庶子)의 등용문이 될 정도로 비인기 부서가 되고 말았지요. 진주만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어요. 전쟁으로 인해 포로 신문을 해야 하는데, 외교문서를 번역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언어 훈련을 시켰는데 결국 통역의 역할을 맡길 수 없었어요. 그만큼 문자에 대한 교육이 우선되면 말을 배우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특별 군사훈련 프로그램(Army Special Training Program)을 만들어 일반인을 교육시켜 통역관으로 양성했어요.”

-문자 우선 학습의 폐해가 그렇게 큽니까?

“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노래를 잘하고, 남의 일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특성이 있어요. 말을 배운 사람은 쉽게 글을 배우는데 반해 글을 익힌 사람은 말을 익히기를 너무 힘들어 해요. 저는 이 같은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구소련과 미국의 특별 군사훈련 프로그램의 장점을 조합해서 동양인을 위한 전혀 새로운 교수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차석호 소장은 언어는 소리의 훈련이라고 말한다. 머릿속에 먼저 소리를 구성해야만 들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말에 의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영어와 한국어는 말의 순서가 달라서 익히기 어렵다고 하는데….

“어순에 대한 편견도 영어를 배우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어요. 세상의 어떤 언어도 확실하게 정해진 순서가 있지는 않아요. 다만 말이란 표현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그 순서가 결정될 뿐이지요. 특히 한국어와 영어는 말을 구성하는 요소들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대비로 그 순서의 차이를 비교할 수는 없어요. 게다가 우리말에는 토씨(조사)가 있지만 영어에는 토씨가 없기 때문에 주어와 목적어의 순서가 유지되어야 하는 평면적인 구조의 한계가 있어요. 이 차이가 영어와 한국어를 구별짓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영문과 한글은 둘 다 표음문자입니다. 그런데 한글은 철자를 외우지 않고 소리가 나는 대로 표기하면 되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영국이나 미국의 사전을 보면 발음표기가 없어요. 그 말은 한글과 마찬가지로 표음문자로 발음의 규칙이 있다는 말이지요. 표음문자는 말 그대로 소리 자체를 글로 표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논리대로 영어도 외우지 않고 읽고 써야 하지요. 그런데 아주 간단하고 쉬운 영어 철자 규칙을 모르고 있으니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어단어의 시각적 모습(문자)을 손과 입을 사용해 암기하는 수고를 해오고 있지요. 영어의 표기가 한글처럼 규칙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영어의 과학적인 규칙을 몰라서 일일이 암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 소장에 따르면 영어는 한글과 다른 네 가지 큰 규칙이 있다고 한다. 한글은 ‘눈을 들어 내리는 눈을 보라’처럼 뜻이 달라도 소리가 같으면 같이 쓰는 ‘동음이의어’의 표기를 준수하는데 반해 영어는 같은 소리의 어휘도 뜻이 다르면 달리 표기해야 한다. 예컨대 by-bye-buy, rite-write-right-wright가 그런 경우다.

이와 함께 영어는 소리의 길고 짧음까지를 정확하게 구분한다. 한글은 먹는 배와 타는 배 혹은 아픈 배의 장단음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표기하지만 영어는 red-read(read의 과거형), led(lead의 과거형)-lead(납)에서 보듯이 같은 소리임에도 그 모음 길이의 길고 짧음까지 표현하자고 약속을 해놓았다.

“우리는 우수한 한글 덕분에 너무도 간편하게 소리를 문자화합니다. 그러니 영어의 표기 방식이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그 약속의 기본을 알고 나면, 굳이 표기를 외우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어요. 이것이 ‘소리 영어학습법’의 첫걸음입니다. 조만간에 <글로벌이코노믹>의 연재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가 경쟁력입니다. 학교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교육부는 최근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어요. 국어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이 토익보다 훨씬 정교하고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가야 할 목표인데, 몇몇 사람이 반대한다고 이를 폐기처분했어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학교 교육은 우선 어휘에서 스펠링 외우는 걸 배제하고, 말의 뜻을 구분해주는 소리의 가장 기본단위인 음운(音韻)에 대해 가르쳐야 해요. 쉽게 말하면 악센트나 인토네이션에 대한 감각인데, 원어민 강사라도 전문가가 아니면 별 의미가 없어요. 지금까지 원어민 강사들에게 엄청난 외화를 지불하면서 유아들에게만 약간의 성과가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말로 소통되는 언어는 기본음에 대한 학습이 우선되어야 설사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모르는 어휘가 나와도 유추하며 대화를 할 수 있어요.”

-한글과 영어가 같은 표음문자이니 영어의 표기규칙을 잘 활용하면 국내 안내 간판도 일관성 있게 표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었어요. 그런데 도로 표지판이나 고궁의 안내간판은 아직도 영어표기가 아닌 로마자표기를 하고 있어요. 로마자표기가 한때 유용했을 순 있어도 지금은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는데 로마자표기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로마자표기법 규칙은 외국인들이 우리말에 가까운 발음을 구현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되었지만, 한글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요즘에는 이를 역행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어문정책을 바꾸어 소리와 표기가 다른 단어들을 하나의 표기로 통일시켜야 해요. 말하자면 로마자 표기법이 아닌 한글의 영어표기법이 절실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Gimpo(김포)’라고 표기해놓았지만 외국인은 ‘짐포’라고 읽어요. ‘김씨’들이 ‘Gim(짐)’이 아닌 ‘Kim(킴)’으로 성을 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는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의 발음규칙을 알고 영어표기법을 따라야 함에도 로마자표기법을 따르는 잘못된 어문정책 탓입니다. 영어의 발음규칙을 보면 ‘G’는 ‘ㄱ’과 ‘ㅈ’ 두 개의 발음이 납니다. 그런데 ‘G’가 ‘E’ 혹은 ‘I’와 연계될 때 반드시 ‘ㄱ’ 발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는 모음 ‘U’를 넣어주면 됩니다. 다시 말해 ‘Guimpo’로 표기하면 외국인은 모두 ‘김포’로 읽게 되지요. ‘Guest’나 ‘Guilty’ 등이 그런 이유로 ‘U’를 삽입했으니까요.”

-소리와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곳은 지하철역 이름이 특히 심한 것 같습니다.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데는 순수한 ‘표음법’ 즉, 우리말 발음 표기방식을 사용하므로, ‘설릉’이라고 발음되는 ‘선릉’을 ‘Seolleung’으로 표기하거나 ‘청구’를 ‘Chunggu’로 표기하고 있어요. 이를 국어의 영문표기는 문자의 호환성을 우선으로 하며, 영어 원어민이 읽을 때 우리말 소리에 최대한 가깝도록 표기한다, 한자어로 표기 가능한 문자는 음절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는다 등의 원칙만 적용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요. ‘청구’를 ‘ChungGu’로 표기하면 ‘천꾸’로 발음되는 오류에서 완벽하게 자유롭게 됩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지명을 모두 영어의 대문자로 표기하는데, 한자어로 표기 가능한 문자는 음절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는다는 규칙을 적용하여 ‘가와사키’는 ‘KaWaSaKi’로 표기하면 간단히 해결되지요.”

이날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 2개월 간 차석호언어연구소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를 공부한 이현주씨는 “그동안 아무리 학원을 찾아다녀도 뉴스를 들려주기만 할뿐 듣는 방법(소리)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소리가 안 들리니 자막을 보고, 또 그걸 번역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어요. 하지만 소리 학습을 통해 번역하지 않고 영어를 듣게 되면서 모르는 단어라 할지라도 일단 귀에 들리고 의미를 유추할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주 빠른 말들은 아직 내용까지 완벽하지는 못해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데다가 영어에 대한 무서움증이 사라진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했다. 바른 영어 소리를 통해 번역에 멍들고 E.S.L.에 상처받은 한국인에게 ‘깨는 영어’를 선사하는 차석호 소장. 그의 언어실험이 성공해 영어에 짓눌린 한국인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