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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폴리케톤 상용화, 그 주역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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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폴리케톤 상용화, 그 주역을 만나다

[인터뷰] 효성그룹 효성기술원 이 원 전무

[글로벌이코노믹=천원기 기자] “세계에서 처음으로 나일론을 개발한 미국 듀폰은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보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많이 올라갔어요. ‘폴리케톤’도 그렇게 만들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효성의 브랜드로 키울 생각이에요.”


이 원 효성기술원 그룹엔지니어링플라스틱(Group Enpla) 소재개발팀 전무는 효성그룹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신소재 폴리케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효성그룹 신소재 개발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안양기술원에서 기자와 만난 이 원 전무는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간간히 섞여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폴리케톤 개발의 최고 지휘자로서의 자부심도 엿보였다.

폴리케톤은 효성의 끈질긴 연구 끝에 나온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계열의 신소재다. 산업 전반에 쓰이는 나일론의 원천기술을 듀폰이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폴리케톤의 원천기술을 효성이 가지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개발비로 모두 500억원을 투입했다. 오랜 기간 인력과 개발비가 집중 투자되는 신소재 개발에서 효성은 그야말로 집요했다. 이 전무는 그 이유를 효성의 DNA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기업문화가 바탕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소재산업은 연속적으로 가기 어려워요. 상용화까지 아무리 짧게 걸려도 7~8년은 걸립니다. 폴리케톤 개발은 조석래 회장의 특명으로 시작됐고 그 결과물은 연구진을 믿고 기다려주는 최고경영자의 의지와 신념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효성기술원은 효성의 DNA가 숨 쉬는 곳이다. 글로벌 넘버1 상품인 스판텍스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1971년 효성은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부설연구소를 설립했다. 이것이 현재의 효성기술원의 효시가 됐다. 이후 합성섬유 분야 연구에서 효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면서 화학원료와 제품 및 신소재 분야로 연구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2006년에는 중앙연구소와 생산기술연구소를 통합해 효성기술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효성에서 본격적으로 폴리케톤 연구가 진행된 것은 지난 2004년이다. 당시 효성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엔지니어링플라스틱 사업을 주력으로 하던 알토란 같은 계열사를 매각하게 된다. 동양나일론으로 출발하며 국내 섬유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효성으로서는 뼈아픈 시련이었다. 더군다나 매각 과정에서 '향후 10년동안 관련 사업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첨부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간 소재 산업이 모든 산업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왔던 조석래 회장은 효성기술원에 '신소재를 개발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이 전무는 이에 대해 “(조 회장이) 사업을 매각하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냐“‘새 소재를 한 번 만들어 보라는 특명에 따라 폴리케톤 연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개발 과정은 작은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작은 뒷동산을 여러 번 넘다보니 결과적으로 에베레스트를 등반한 것이 됐다. 10여년간의 연구기간 중 연구진에게는 수차례의 위기가 있었다.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개발과정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을 법도 했지만 이 전무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갔다. 하나만 들려달라는 닦달에 그저 웃기만 했다. 너무도 많아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신소재 개발에 몰두해온 그에게 에피소드는 밤을 세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일이었다.

개발하는 과정에서 성과없이 일이 진행되면 사람들이 다 지쳐요. 그렇지만 원천기술을 개발한다는 게 일에 몰입하는 뭐랄까. 원동력이 됩니다. 작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터닝포인트가 되고 원동력이 되지요. 개발하는 과정은 매번 언덕을 넘어가는 깨달음의 연속이었고, 폴리캐톤은 그런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전무와 연구진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신소재 폴리케톤은 연구개발비로 모두 500억원이 투입됐다. 국내외 특허는 총 160건에 이른다. 개발기간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9년이다. 이른바 롱텀(Long Term) 연구의 결과물이다.

폴리케톤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npla) 사업 분야에서 나일론 등을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Enpla 시장은 매년 5% 이상 성장하고 있다. 201260조원에서 2015년에는 66조원으로 확대되고, 202082조원에 이어 230년에는 126조원까지 시장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효성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폴리케톤은 1938년 듀폰이 나일론 상업화에 성공한 이후 미국과 독일 등 소수업체만 갖고 있던 고분자 기술을 국내 기업인 효성이 그 원천기술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

더욱이 대기오염의 주범인 일산화탄소(CO)와 에틸렌과 프로필렌이 합쳐진 올레핀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친환경 소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나일론보다도 내구성과 내마모성이 뛰어나고 기존 소재를 대체하기 보다는 기존 소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기 때문에 자동차, 전기, 섬유 등 산업 전반에서 활용도가 높다.



이 원 전무는 기존 소재로는 부족한 부분을 폴리케톤으로 바꿈으로써 그 부품의 부가가치를 올리는데 사용하는 소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의 연료 탱크 같은 경우 실제 넣는 건 가솔린이나 경유 등 액체지만 이것들이 기화돼 기체와 공존하게 되면서 기체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 때문에 연료 탱크를 다층으로 만들면서 공정이 복잡해진다하지만 폴리케톤을 사용하면 다층으로 연료탱크를 만들지 않아도 기체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어 공정이 간단해지고 성능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내년 본격 상업생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고 있다. 효성은 내년 7월부터 연산 5t 규모로 폴리케톤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 원 전무는?
1957년 대구 출신이다. 1983년 경북대 공업화학과 졸업 후 서울대 고분자공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1991년 삼성토탈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신소재 연구에 집중한다. 2003년 삼성토탈 연구소장, 2008년 중국사업담당 상무를 지냈다. 2009년 기초소재 발굴 및 개발담당 상무를 거쳐 2011년 효성기술원 상용화연구소 K-Project 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2012년부터는 효성기술원 중합연구 Group Enpla 소재개발팀 전무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