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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필립스는 왜 기업 분할에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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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필립스는 왜 기업 분할에 나섰나?

네덜란드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조명 가전 헬스케어 기업인 필립스는 지난 9월말 기업 분할을 선언한데 이어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모태사업인 조명사업부를 분할하고 대신 가전사업부와 헬스케어사업부를 헬스 테크(Health Tech)사업부로 통합하겠다는 게 그 핵심이다.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이윤이 낮은 조명사업부문을 떼어내고, 빠르게 성장하는 헬스케어사업부문으로 기업의 비즈니스를 재편하겠다는 목표다. 조명사업부문을 분할하는 데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늦어도 2016년까지는 독립법인이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총 5000만 유로가 투입될 사업부문 구조조정으로 올해 1억 유로, 내년에는 2억 유로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필립스 측은 기대하고 있다.

물론 필립스의 구조조정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필립스는 123년 전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에서 백열전구에 애착을 가졌던 엔지니어 안톤과 제라르드 필립스 형제에 의해 설립됐다. 그 후 1920년대 유럽, 브라질, 인도에 지사를 낼 정도로 급성장했다.

백열전구 기술축적에 힘입어 1938년 형광등을 개발했고, 1982년과 1983년에는 프랑스의 전구회사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의 조명분야를 인수해 세계 최대 조명기기 업체로 발돋움했다. 1939년 첫 선을 보인 전기면도기는 전 세계에 3억 개 이상이 팔리며 소형가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자체 개발한 오디오카세트와 CD를 앞세워 세계를 선도하는 전자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80년대 이후 일본기업의 성장으로 위기에 봉착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60여 개에 이르는 사업을 가전제품, 전략부품, 전자시스템, 서비스 등 4대 핵심분야로 일괄 통합했다.

필립스는 1984년 반도체제조용 장비회사인 ASML을 합작 설립, 다시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1년 IT 버블이 붕괴되며 사상 최악의 적자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해 휴대폰과 오디오, 팩스 사업을 외부에 매각했다.

2006년 9월에 이뤄진 반도체 사업부 매각은 거센 논란을 불러왔다. 필립스 기술을 상징하던 반도체사업 매각에 대해 “필립스의 심장을 도려내는 짓”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제라르드 클라이스터리 CEO는 반도체 사업부의 지분 80.1%를 민간 파트너 컨소시움에 매각했다. 산업이 성숙하고 각종 표준이 확립되면서 독자적인 부품회사가 등장했기 때문에 굳이 부품사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LCD와 반도체는 공급량도 충분하고 한국을 비롯 일본 대만에서 대량 생산중이어서 다른 데서 사서 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때 분리 설립된 회사가 NXP 반도체다. 이 회사는 2013년에 4조815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문제는 이번에도 필립스의 기업분할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 지 여부다. 일각에서는 사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필립스의 기업 분할이 기업 경영 실패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사업 구조조정을 계속해 왔지만 일자리는 줄어들고 성장 동력은 찾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주식시장 또한 필립스의 분할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업분할 발표 직후 필립스 주가는 2.4% 올라 25.01유로까지 상승했다.

반면 기업분할에 대해 노동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1891년 설립 당시부터 회사의 DNA와도 같았던 조명부문의 노동자들은 ‘배신감’을 느낀다고 할 정도로 강력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력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기업 분할로 헬스케어와 소비자 가전 간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형 스캐너, 초음파 영상장치 등을 앞세운 헬스케어 부문이 소비자 가전과 합쳐지면서 가정용 의료기구 시장에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VISIQ가 이런 혁신적 제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VISIQ는 트랜스듀서와 태블릿 PC로 구성된 초음파 시스템으로, 휴대가 쉽고 사용방법이 간단해 의사가 병원 밖에서도 산부인과 진찰을 하며 고품질의 스캔을 할 수 있다. 헬스 테크 사업부문으로 통합되며 웨어러블 의료기기분야에서 혁신적 제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사업조정으로 글로벌 조명산업에도 지각 변동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전구와 조명 부품으로 시장을 선도하던 시대는 지나갔으며 ‘서비스’로서의 조명산업이 부각되고 있다. GE와 필립스, 오스람이 여전히 세계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업체간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모태사업인 조명사업까지 떼어내는 혁신적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필립스가 글로벌 헬스테크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글로벌이코노믹 김경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