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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미·일 금융완화정책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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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미·일 금융완화정책의 두 얼굴

부유층 자산 급증 불구 자산 없는 제로 세대 늘어 부의 양극화 심각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정책에 의한 엔화 약세와 주식 상승이 부유층의 자산을 늘여주고 있는 반면, 물가 상승으로 저소득층에는 타격을 주어 빈부 격차의 심화,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이번 일본 중의원선거의 큰 쟁점이 되고 있다. 2008년의 리먼 쇼크 이후 일찌감치 대폭적인 금융완화 조치를 취한 미국에서도 심각한 소득 격차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일본의 명과 암

일본의 SMBC 닛코증권(日興証券)이 도쿄증권거래소 제1부에 상장된 3월기 결산기업 가운데 지난 11월 19일까지 발표한 1381사의 금년도 상반기(4〜9월) 중간결산을 집계한 결과 순이익의 합계는 14조3070억 엔으로 전년동기대비 2.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 그룹 등 조사 대상 기업의 2% 정도에 지나지 않는 상위 30사의 순이익 합계가 7조2242억 엔으로 전체의 50.5%를 차지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에 의한 경제정책에 수반하여 진행된 엔화 약세로, 해외수익이 늘어나 이익을 증대시킨 것이다. 자동차와 전기 등의 수출관련기업 외에, 해외에 사업기반을 둔 대형 금융기관과 상사들도 혜택을 누렸다. 2년 전 상위30사에 1사도 들지 못했던 전기업체는 금년 미쓰비시전기(三菱電機)와 히타치제작소(日立製作所) 2개사가 포함되었다.

중소기업의 체감경기는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대기업 중에서도 업종이나 엔화 약세의 혜택 유무에 따라 업적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엔화 약세로 원재료의 수입비용이 증가한 소재 메이커와 소매업 등은 이익 감소가 두드러졌다. 게다가 원재료값 상승을 가격에 전가할 수 없는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엔화 약세를 이유로 한 1〜10월의 도산건수는 전년동기의 2.8배로 늘어났다.

이러한 중간결산의 결과는 금융완화정책에 의한 엔화 약세의 혜택이 대형 수출기업과 해외에 사업기반을 둔 금융기관이나 상사 등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 엔화 약세의 피해를 보는 업종과 중소기업, 소매업 등의 영업 환경이 악화되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은 물론, 대기업 중에서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한 아베 정권 하에서 진행된 금융완화정책으로 주식가격이 상승하여 부유층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예적금, 주식, 투자신탁 등의 금융자산을 1억 엔(약 9억3400만 원)이상 갖고 있는 '부유층 세대'가 2013년에 처음으로 100만 세대를 초과했다. 반면에 자산이 없는 '제로(0) 세대'도 30%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유층의 규모는 노무라종합연구소가 1997년부터 2~3년에 한 번씩 추계하고 있는데, 2013년에는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 보유액이 1억 엔 이상인 세대가 100만7000세대로, 전년도인 2011년보다 20% 이상 늘었다. 전체 세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로, 50세대 중에 1세대는 '부유층'인 상황이다.

자산액의 증가는 주가의 상승이 주된 이유다. 2013년 말의 닛케이평균주가(日経平均株価)는 1만6291엔31전으로, 2011년 말의 2배 가까이 올랐다. 부유층의 자산 규모는 2013년 241조 엔으로 2011년보다 28.1% 증가했다. 주식과 투자신탁을 많이 가지고 있던 세대일수록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그에 따라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사업도 호황을 보이고 있다. 일본백화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술품과 보석 장식, 귀금속의 2013년 판매액은 2012년보다 15.5% 증가했다. 고급손목시계와 해외 브랜드 의류도 인기여서 자산이 늘어난 부유층의 소비 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자동차수입협회에 따르면 금년 1∼10월에 판매된 1000만 엔(약 9억3400만원) 이상의 수입 외제차는 전년동기대비 50% 증가했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비 이외에 예적금과 주식 등의 금융자산이 없는 세대(2인 이상)는 금융홍보중앙위원회(사무국, 일본은행)의 금년 6~7월의 조사에서 30.4%로 나타났다. 사상 최고였던 작년의 31.0%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전국 8000세대를 조사한 추계조사이긴 하지만 금융자산 '제로(0)세대'의 비율은 1970~80년대에는 5% 전후에 그치는 해가 많았다. 버블 붕괴 후부터 증가 추세이며 2003년에 20%,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30%를 상회했다.

1인 세대로 제한하면 이 비율은 38.9%로 상승한다. 물가상승분을 뺀 실질 임금이 오르지 않고 급여가 적은 비정규직에 수입을 의존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의 명과 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재닛 옐런 의장은 10월의 한 강연에서 미국사회의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중간층의 활력이 없어지면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 경제의 약체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량의 금융완화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결과 미국의 주가는 크게 상승했고 미국의 개인 금융자산 중에서도 주식 잔액이 2009년의 7조2500억 달러에서 2014년 6월 말에는 13조3000억 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이 결과 투자용 부동산 등도 포함하여 자산 격차가 급속하게 확대되었는데, 캐나다 로열은행의 추산으로는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부유층의 자산은 2009년에서 2013년까지 4년 동안 13조 달러나 팽창했다. 소득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켓티 교수의 연구 그룹에 따르면 2012년에 전체 소득의 38%를 상위 5%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중간층의 연간 소득은 5만 달러 전후에서 횡보하고 있어 주가 상승 등의 경기지표 회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의 경제에 대한 불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기업은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을 자사주 매입과 주식 투자에 쓰고 종업원의 임금 인상과 정규직 고용 확대에는 쓰지 않았다.

경기부양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도 증가하여 최저생계비를 벌 수 없는 빈곤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3년경에는 12%였으나 금융 완화 후에도 15% 전후로 나타나 197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령기 아동이 빈곤 등의 이유로 자기 집에서 살 수 없어 노숙자 보호 시설 등에서 통학하고 있는 수는 2007년도의 79만 명에서 2013년도에는 124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금융 완화가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하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지만, 6년이 지났는데도 중저소득층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파급 효과는 거의 없고,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확대시켰다는 사실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금융 완화 조치: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버냉키 FRB의장이 같은 해 가을부터 은행에서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양적 완화정책'을 개시. 총액 4조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시장에 공급했다가 실업률 저하 등의 효과가 나타나 금년 10월 말에 종료했다.

/글로벌이코노믹 장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