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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거리 곳곳 한국산 제품 즐비…자부심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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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거리 곳곳 한국산 제품 즐비…자부심 가득

[안도현의 글로벌 경제투어(16)] 유럽 횡단(베를린·동유럽)

폐허 속에서 다시 가능성을 찾고 성장한 독일과 베를린

동유럽 통해 미래의 여유로운 삶을 상상해보다
공산주의 체제가 만든 가난하고 생기없는 백인들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야경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야경
[글로벌이코노믹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 북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독일 베를린 시가지는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전으로 뜨거웠다. 독일이 이탈리아에 0대 2로 지면서 베를린 광장의 수많은 응원객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광장에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들이 넘쳤다. 독일의 완벽한 청결함이 상황에 따라 가끔 흐트러지기도 하는 것을 목격했다.

독일 역사박물관과 유대인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독일제국의 흥망과 유대인의 학살과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알기도 했지만, 60만 명이 넘는 민간인 사망자의 드레스덴 폭격과 폭격 맞은 상태 그대로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를 보면서 독일 역시 엄청난 폭격과 공습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슬픈 과거가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유럽 여행을 오기 전 나는 상가 투자 사기 사건으로 소송을 2차례 진행을 했고, 독일에서 결국 한국의 변호사로부터 내 항소의 패소를 듣게 되었다. 몇 년간 고생해서 모은 전 재산을 잃게 돼 다리가 풀릴 정도로 허망함을 느꼈다. 역시 패전국으로 잿더미가 된 독일이 성장한 것과 월드컵 패배에 대해 미래를 기약하는 독일인들을 보며 다시 희망을 갖기로 했다. 정말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언젠가 ‘나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는 각오로 아픈 순간들을 잊기로 했다.

베를린은 동서로 분단되었고, 분단국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수많은 독일인들이 독일재건을 위해 노력한 결과 세계 4번째의 경제대국과 유럽연합(EU)의 리더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 되는 통일 독일로 성장했다.

독일인들과 밤새도록 토론하면서 독일인들은 정치와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의식을 갖고 있으며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모습들을 보며, 암기과목과 시험에만 목적을 둔 한국 교육을 받은 나의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과 짧은 지식과 단편적 사고가 부끄러웠다.
오랜 이동에 샌들 밑창이 떨어졌고, 강력본드를 사서 밑창을 붙이며 다니다가 나중엔 발뒤꿈치가 터지게 되어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되자, 결국 터진 부분에도 강력본드를 발랐다. 신기하게도 겉피부가 보호가 되니 걷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분단된 동서의 독일이 하나가 되듯이 나의 갈라진 발꿈치의 살은 단단히 고정되었다.

독일 국경도시를 지나 걸어서 폴란드 국경을 지나갔다. 국경 심사대에서 독일 제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며 오늘 어디에서 머물 것이냐며 계속 물었다. 최신형 컴퓨터를 사용하는 독일 공무원과는 달리 폴란드의 국경에선 2세대 도스 컴퓨터에 흑백모니터를 쓰는 매우 초라한 복장의 폴란드 공무원들을 보면서 폴란드의 경제 상황과 국력을 짧은 시간에 비교할 수 있었다. 국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로수와 도로, 사람들의 표정까지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조용한 국경 마을에서 도보로 걷는 우리를 보며 폴란드인들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요한 바로로 2세의 그림과 사진들이 걸려 있었으며 종교적 색채가 짙은 폴란드의 음식들은 다행히 독일보다 풍성해 보였다.

온천과 긴 다리가 돋보이는 헝가리
온천과 긴 다리가 돋보이는 헝가리
온천과 긴 다리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슬로바키아 수도 블라스티라바를 구경하고, 체코 프라하로 이동한 뒤 야경을 구경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에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처음으로 포식했다. 한쪽 손이 불편한 동생이 스테이크를 썰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썰어 주는 대신 포크로 스테이크를 잡을 테니 칼질을 하라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험한 세상에서 살아나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내 수많은 여행을 통해 경험했기에 나 역시 그런 강인한 정신을 전해주고 싶었다.

군사 작전 같은 장시간의 험한 여행을 통해 장애인 동생은 점점 평범한 유럽 배낭객이 되었고, 손이 불편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대인기피와 상처 투성이의 손을 붕대로 감추며 스스로 한계를 짓던 모습에서 조금씩 용기를 내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 매일 저렴한 빵과 음료수로 경비를 절약하는 우리에게 프라하의 식당에서의 스테이크 정식은 최고의 호강이었으며, 극단적일 만큼 절약과 사치를 오가는 여행 방식에 적응해가는 동생과 함께 경비 절약을 논의하고 있었다.

수많은 한국 관광객과 여행객들이 프라하의 고성과 다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으며 한국말을 하는 프라하 점원들과 세계를 누비는 한국인의 성장과 위상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여행객들이 프라하의 불친절과 태도에 대해 비판하며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며, 여행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개인의 경험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중국인을 보았는데, 자신의 부모는 오래전에 중국에서 추방되었으며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을 보며 애국심과 민족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며, 중국인이라도 다른 사상과 생각이 있고 국적에 대해 획일적인 사고는 결국 열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시청사에서는 비엔나 필하모니 심포니를 거대한 전광판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거대한 공연장이 되어 도시 전체를 풍요로운 음악과 예술로 가득채웠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유럽 관광객과 오스트리아인에게서는 삶의 넘치는 여유와 풍요로운 삶의 이야기들이 향기로운 음식과 달콤한 클래식과 함께 배고프고 가난한 배낭여행객의 마음에도 꿈을 심어주었다. 동생과 나는 언젠가 ‘발레리 게이기에프(Valery Gergiev)’가 지휘하는 차이콥스키 비창을 꼭 다시 듣자며 약속했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의 패전을 딛고 일어나 다시 유럽의 중심이 되었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의 패전을 딛고 일어나 다시 유럽의 중심이 되었다.
서유럽과는 달리 동유럽 거리는 먼지로 가득했고, 길에는 사나운 개들이 넘쳐났다. 과거 김일성을 추종하며 북한식 체제구축을 위해 국민들을 잔혹하게 통치했던 차우세스크의 화려한 궁전과 동상들에 비해 국민들은 가난해보였다. 독재자와 잘못된 정치가 금발의 하얀 피부의 사람들로 하여금 고난에 찌든 후진국의 국민 표정을 만든다는 것이 신기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개에게 쫒기며 돌을 던지는 집시들을 피해 거의 녹초가 되어 들어온 캐나다인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 중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미국 국적을 속이기 위해 캐나다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유럽여행에서는 미국인의 자부심이 때로는 방해가 된다고 했다.

한국 자동차와 대우 에어컨 등이 거리에 가득했고, 길거리 전통음식은 새큼한 맛과 기름진 국물이 넘쳐나서 마치 한국음식 같았다. 로마인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다양한 보석과 귀금속들이 박물관에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간단한 맥주를 놓고, 미국, 프랑스, 몰도바, 루마니아, 독일, 이탈리아, 뉴질랜드, 덴마크 출신의 게스트하우스 여행객들이 하나가 되어 밤새도록 떠들며 토론했다. 친해지게 된 미국인 친구가 몰도바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신이 몰도바로 초청한다며 몰도바로 향했다. 해바라기와 집단 노동을 하는 농부들, 거리를 횡단하는 말들의 모습을 보며 몰도바 국경으로 갔고, 결국 영어가 통하지 않고 초청장이 없어 방문비자를 신청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국경에서 인접도시까지 돌아갔다. 인근 후시란 곳에 도착하여 역에서 서성이는 우리에게 젊은 친구들이 말을 걸었고 갈 곳이 없는 우리를 한 친구의 집에 초청했다.

루마니아 전통 춤과 음식에 취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집에서 다양한 체험과 생활을 하며 한참을 머물다가 우린 다시 불가리아로 향했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 도착하자마자 영어는 통하지 않았고, 처음 보는 불가리어 속에서 오직 손짓과 보디랭귀지만으로 숙소를 정하고 현지 시내를 구경했다.

피곤해서 쉬고 있는 우리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었고 뒤에서 가방을 통째로 들고가려는 일행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자, 그들은 도망쳤고 계속 추적하기 시작했다. 유로를 현지 통화로 환전하고 물건값을 지불하는데 10년 전 화폐라며 휴지조각을 환전했다며 반환했다. 환전 사기를 당한 것이다.

같은 숫자와 같은 모양인데 10년 전에 폐기했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무 곳에서도 통용되지 않는 종이 그림일 뿐이었다. 지폐의 가치는 사회 통념상의 약속일 뿐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는 것처럼 영속적이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몇 천년을 떠돌아다니며 금과 다이아몬드에 집착하던 유대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베르나란 곳에 도착하여 못하는 수영을 시도했고, 얕은 곳이라고 방심하다가 물밖으로 나오지 못해 죽을 뻔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공포에도 대부분의 영국과 프랑스의 여름휴가객들은 관심도 갖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으로 숨을 참고 물위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고 다행히 해변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아무 일도 없듯이 해변에서 젖은 소금기의 옷을 뜨거운 태양에 말리고 터키를 향해 기나긴 버스를 탔다. 피곤에 찌든 나에 비해 영어문외한이던 동생은 어느덧 자유롭게 외국인과 영어 회화를 하고 있었다.

/글로벌이코노믹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