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의 역사와 문화를 스토리텔링 한 오페라 『선비』는 찬란한 유교, 불교의 고장 영주를 배경으로 한다. 영주에는 부석사, 소수서원, 선비촌, 순흥안씨 집성촌 등 문화자산이 즐비하다. 선비는 학식과 인품이 있으며 특히 선(善)한 사람, 지조가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분법적 구성의 작품, 어짐과 배려를 우선하는 선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계는 선비정신으로 승화된다.
오페라 『카르멘』,『마술피리』, 『피델리오』,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사랑의 묘약』,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와 같은 제목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현실에서 국산 『선비』 는 언급된 오페라들의 제작비, 영화감독 장이예모의 발레 『홍등』의 수입가, 원작 로얄티를 지급한 다수 뮤지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로 걸작을 만들어낸 셈이다.
정상급 성악가로 구성된 오페라 『선비』는 정통 오페라 음악의 사운드에 우리 고유의 선율을 배합, 우리 오페라의 특색을 드러낸 작품이다. 친밀감을 더하는 국악장단, 웅장함으로 다가오는 중창과 합창이 분위기를 돋우며 신명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품은 탁월한 음악성으로 정신문화라는 주제를 흥미롭게 전개시켜 제1회 대한민국창작오페라페스티벌 최우수작품이 되었다.
선비는 지조로 살고 한량은 저지른다. 시골 후미진 곳, 영주의 반란은 시골에서 배출한 대 석학들의 면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오페라로 치면 『선비』는 신생아이다.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면 출산 비용은 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예쁜 아이를 보기위해 시골에서 얼마든지 상경할 수 있다. 시기심에서 이 아이를 비난하는 것 보다는 아이의 바른 성장을 응원할 때 이다.
마음먹고 영주시와 영주지역 출신 인사들, 자발적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선비』는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자산을 스토리텔링 해 창작 오페라의 다양한 팬들을 확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는 70년이 되었지만, 한국은 아직 오페라 수입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오페라 중심국이 될 인적 자산이 충분하다.
유쾌한 내러티브, 영주 출신 성리학자 안 향의 사상, 그의 유지를 받들어 소수서원을 축조한 풍기군수 주세붕, 어진 선비 이덕인과 그의 아내 등을 메인 캐릭터로 설정, 그들의 이야기가 소수서원과 죽계천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간 존중을 기반으로 한 선한 사람들의 사랑, 선비정신이 축적된 정신문화가 일원다근(一源多根)으로 번짐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안향이 전한 선비정신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담고 있는 『선비』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행복한 이야기를 설파한다. 이 작품의 우수성은 노래에 적합한 시적 가사와 매력적인 음악, 탁월한 캐스팅, 작곡 지휘 연출의 여성 3인의 환상 호흡, 합창 오케스트라 조명 분장의 앙상블, 색감을 살린 의상과 무대 장치에서 드러난다.
인간냄새가 풍기는 토종 오페라 『선비』는 한국오페라사에서 새로운 원형을 창조한 빛나는 광휘(光輝)이다. 축적된 초인적 열정으로 갈등을 희망으로 전위(轉位)시키며 우리 오페라의 냉량(冷凉)을 ‘터질 것은 움틀 것‘으로 여기며 정도가 높고 숭고한 것들을 끄집어 낸 용기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최승우 총연출의 감각적 촉수, 희생이 만들어낸 작품에 경의를 표한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