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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과 야성 경계 넘나드는 인간 정체성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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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과 야성 경계 넘나드는 인간 정체성 담아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43)] 온전하지 않은 몸, 봄을 맞다

소통 못하는 분절된 신체에서 소통의 세계로 문 열어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1924) -
아직 바람은 쌀쌀하지만 봄기운은 어느새 스멀스멀 피어나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는 쇼윈도 마네킹의 옷차림이 그렇고 코트 깃을 잔뜩 세운 우리와는 달리 조금씩 가지 끝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나무들이 그렇다. 그리고 어느새 밝은 양지에서 햇볕을 쪼이며 졸린 눈을 하고 털을 고르는 고양이의 코끝에서 봄은 조금씩 오고 있다. 긴 겨울에 잔뜩 움츠려서 일까. 어둠을 물러내는 태양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춥고 어두운 겨울을 지나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종교적 경건함으로 모든 욕망의 표현이 거세되었던 중세 시대를 ‘암흑시대’라 부르고, 르네상스(Renaissance)를 ‘재생’과 ‘부활’로 표현하듯이, 우리는 어둠과 추위가 지배하는 겨울이 지나가고 기지개를 켜듯 봄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같이 부활하길 기대하면서.

양정화 Untitled, 70.5×100cm, charcoal, oil bar, pen on paper, 2007
양정화 Untitled, 70.5×100cm, charcoal, oil bar, pen on paper, 2007
양정화의 작품은 무언가 가늠하기 힘든 형상으로 가득하다. 사람의 내면에 대해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져 온 작가는 사람의 인성과 동물들의 야성, 사람의 선한 심성과 악한 심성, 그리고 순한 면과 거친 면의 균형을 고민해오며, 자신이 보는 자신 내면의 모습과 타인의 모습의 본질을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인간 내부의 여러 균형들이 그 중심을 잃게 되면, 그 사람은 상처를 받거나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우리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세계, 표면 뒤에 감추어진 이면의 세계를 판화로 작업한다.

양정화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Trauma)로 인한 인간에 대한 불신과 작가 스스로도 풀지 못하는 낯섦과 이해불가, 해독불가, 두려움, 그리고 방어 기제를 색이 최대한 배제된 모노톤으로 표현한다. 자그마한 상처라도 나면 온 신경이 그 부분에 쏠리고 상처 부위는 마음 속에서 점점 커져 실제로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가 손과 발처럼 커진 듯 느껴지듯이, 양정화의 작품 속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없는 신체 부위는 가득히 커져 화면을 가득 메운다.

양정화 Illusion 0805, 190×415cm, digital print, 2008
양정화 Illusion 0805, 190×415cm, digital print, 2008
양정화 Untitled Mass, 39×68×25cm, sponge, spandex, acrylic color, 2010
양정화 Untitled Mass, 39×68×25cm, sponge, spandex, acrylic color, 2010
절단된 신체는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며, 사고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양정화의 절단된 신체는 욕망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이 신체는 나의 것도, 타인의 것도 아니며, 동시에 나의 것이자, 타인의 것이다. 이러한 신체는 유기적이지도 않으며, 하나의 온전한 유기체가 되기를 거부한다. 신과 자연의 질서로부터 벗어나고, 인간과 자연의 모든 요소를 지녔으되, 이것이 파편화하여 욕망하기만 할 뿐 우리는 거기에 어떤 인격도 부여할 수 없다.

들뢰즈(Gilles Deleuze)는 아르토(Artaud)의 말을 빌려 이를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s)”라고 불렀다. “‘신체는 물질 덩어리이다. 그는 혼자이며 기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유기체들이란 신체의 적이다.’(Artaud, 1948)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에 반대한다기 보다는 우리가 유기체라고 부르는 기관들의 유기적 구성에 더 반대한다. 이 신체는 강도 높고 강렬한 신체이다.…유기체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신체는 전적으로 살아 있지만 유기적이지 않다. 따라서 감각이 유기체를 통해 신체를 접하면, 감각은 과도하고 발작적인 모습을 띤다.” 욕망하는 기계, 욕망하는 물체인 양정화의 신체는 ‘생명인 나’가 아니라 ‘살덩이인 그 무엇’을 보여줌으로써 어둡고 차가운 우리 내면의 욕망과 상처, 상실과 분노를 드러낸다. “주변의 사람이나 사물, 동물, 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문득 낯설어질 때 나는 작업을 통해서 그 낯설음과 대면하고 그것을 떨쳐버리고자 한다. 이때 과거의 어떠한 기억들이 현재의 경험과 공명하면서 갑자기 회귀되곤 하는데, 기억이라는 것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매번 회귀될 때마다 계속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재생된다. 이는 작품에서 변형된 몸 이미지, 반인반수의 형상으로 드러나며 인성과 야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시작은 끝일 수 있고 끝은 시작일 수 있다. 익숙함과 이질감,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양정화 Touch, 48.5×68cm, oil_bar, charcoal on paper, 2013
양정화 Touch, 48.5×68cm, oil_bar, charcoal on paper, 2013
양정화, Untitled, 35×25cm, charcoal on paper, 2007
양정화, Untitled, 35×25cm, charcoal on paper, 2007
절단되고 왜곡되어 그로테스크한 모습의 신체 이미지였던 양정화의 작업들은 어느새 조금씩 온기를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양정화의 작품에서 아직 하나의 온전한 신체로 기능하지는 않으나 마주잡은 손, 감싸 안은 팔, 조심스러운 접촉을 본다. 조용히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색을 본다. 그리고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를 본다. 고양이. 예로부터 죽음의 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던 고양이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나와 타인의 경계에 있는 작가의 살덩이의 세계 양쪽을 조용히 쳐다본다. 고양이를 기르면서 주변의 다른 존재와 다른 대상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늘어나게 되었다는 작가는 소통하지 못하는 분절된 신체에서 소통하는 세계로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기괴하고 물컹거리며, 소름끼칠 듯한 덩어리들은 어느새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로 안도하는 듯하다.

양정화 Untitled, Grip, 53×45.5cm, acrylic, charcoal on canvas, 2015
양정화 Untitled, Grip, 53×45.5cm, acrylic, charcoal on canvas, 2015
양정화 Untitled Hug, 53×45.5cm, acrylic, pencil on canvas, 2015
양정화 Untitled Hug, 53×45.5cm, acrylic, pencil on canvas, 2015
양정화 Untitled Face, 53×45.5cm, acrylic, pencil on canvas, 2015
양정화 Untitled Face, 53×45.5cm, acrylic, pencil on canvas, 2015
약한 존재인 우리는 자신의 결심과 명상에 따라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타인, 인생의 동반자를 통해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나 외로워’, ‘나 힘들어’라고 속으로 울부짖다가 ‘지금 내 곁에도 누가 있다’, ‘다른 이들도 이런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의 변화는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양정화의 신체는 여전히 분절되고, 그로테스크할 지라도 그 옆에는 그 파편화된 신체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고양이가 있다. 아직은 어두운 배경이지만, 푸른 빛, 보라 빛, 금빛에 어느덧 나처럼 일부인 신체가 서로 맞잡고 있다. 기대고 있다. 바라보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 자기 안의 환원에서 타자에 대한 확산으로 양정화의 작품들 속에는 조용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고양이의 코끝에서 처럼.

양정화 Touch, 44×53cm, oil bar, charcoal on paper, 2013
양정화 Touch, 44×53cm, oil bar, charcoal on paper, 2013
양정화 Untitled, 73.5×104cm, charcoal on paper, 2013
양정화 Untitled, 73.5×104cm, charcoal on paper, 2013
양정화 Touch, 48.5×68cm, oil bar, charcoal, pencil on paper, 2013
양정화 Touch, 48.5×68cm, oil bar, charcoal, pencil on paper, 2013
○작가 양정화는 누구?

홍익대학교 판화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주립대(New Palz) Art Studio Department에서 석판화 과정을 이수했다. 관훈갤러리, 갤러리 자인제노, Full&Pool-KT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일교류현대미술전, 프랑스 파리 국제 기획 초대전, Russia Novosibirsk International Graphic Biennial, Print Matter in Beijing, 부산국제판화제, 포트폴리오전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등 다수의 국제전과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인간과 동물, 자신과 주변, 추상과 구상, 다양한 매체 및 재료들의 충돌 등 경계와 이중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일상성의 시각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드러나는 비일상성과 감각을 주제로 지속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