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박관정은 한양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2014년 코리아국제무용콩쿠르 대상 및 금상, 제19회 한국현대무용콩쿠르 금상, 제44회 동아무용콩쿠르 은상을 수상한 현대무용가 이자 춤꾼이다. 현대무용의 험난한 숲 속에서 자신의 안무 개성을 살리고, 현대무용의 철학적 동맥(動脈)을 찾기 위해 분주히 춤밭을 일구는 신진안무가이다.
직접적 만남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인상, 매력, 호감, 음성 등은 사라지고 메시지화한 서로의 생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느새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 더 익숙해져있다. SNS 소통의 시대는 악화되면서 대화 단절, 대인 관계 약화, 소통 능력 저하, 개인주의 심화 등 각종 사회문제로 이어지며 타인과의 대화나 형성이 어려워졌다.
이 작품의 오브제로 등장하는 사과는 소통, 소리(말), 관계, 감정 등을 나타낸다. 도입부는 무음으로 처리된다. 남자와 여자가 마주보며 탁자를 두고 의자에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한다. 이 둘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감정을 느끼고 소리(말)로 대화를 하는, 일반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소통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만남>, 패르트의 ‘알리나를 위하여’(Fuer Alina)의 리듬 속에 SNS속에서 소통하는 장면. 한 공간 안에서 같은 대화를 하고 있지만 서로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감정을 느낄 수도 없다. 대화하고 있지만 관계는 약화되며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2장 <점점 사라지는 사과>, 도나하 데너히의 현의 울림으로 스스로 사과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게끔 하는지도 모르고 잃어버렸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서야 불안함을 느끼고 소중함을 느낀다. 여자1(박관정)는 사과를 계속 씹어 먹는다.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소통, 소리(말), 관계, 감정을 말한다. 여자2(최수경), 남자1(김준영)은 여자1(박관정)의 미래의 모습들이다.
일상을 상징하는 탁자와 의자 두 개가 소품이다. 안무가는 비교적 느리게 시간을 설정하고 움직임을 만들어 내며 급정지하는 현대무용의 특질을 보여준다. 단절을 장치하도록 사과는 씹히거나 파괴된다. 피아노 사운드에 맞추어 춤은 스냅 사진처럼 전개되거나 내면의 흐느낌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삼인무는 가볍게 떨리거나 강한 음악의 영향을 받는다.
플라스틱 보드가 걸리고 잊은 것과 잃어버린 것이 쓰여 지고, 적혀있다. ‘만남’, ‘대화’라는 꿈은 사라지고, 느린 피아노 건반의 소리는 ‘아쉬움’을 토해낸다. 탁자위로 서는 여자는 반복동작을 만들어 낸다. SNS 시대의 우울한 풍경이 쏟아진다. 안무가로서 박관정은 실험작 『잊어버린 것, 혹은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을 자신을 경계하는 채찍으로 삼은 것이다.
박관정, 그녀가 현대를 담는 그릇으로써 핸드폰을 차용한 것은 현대무용가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첫 발자국은 늘 미진(微塵)을 남기는 법이다. 그녀의 현대무용 밭에 뿌린 에스프리는 허용된 도전을 전제로 하기에 거침이 많았다. 앞으로의 그녀의 춤들이 현대무용의 신개념을 확장하고 전위적 예형(藝型)을 창조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