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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시대 삶의 단면 굵은 선으로 채색한 현대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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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시대 삶의 단면 굵은 선으로 채색한 현대무용

[무용리뷰] 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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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대전 예술의전당(아트홀 공연)이 지난 4월 10일과 11일 주최한 스프링 페스티벌 개막공연작 최성옥(충남대 무용학과 교수)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는 칼 오르프(Carl Orff)의 합창곡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를 텍스트로 삼아 불확실성의 시대, 황폐해져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의 삶과 사랑의 여러 단면들을 굵은 선으로 채색한 현대무용이다.

안무가는 카르미나 부라나의 서사, 중세 유럽 정서에서 추출한 끈적끈적한 서민들의 난장과 정열의 기운을 숨 막힐 정도로 밀어붙이는 음악에 맞서 싸우며 용해되는 거대한 판타지를 연출하였다. 즉흥과 우연의 순간들을 춤의 핵심으로 삼아 콜라주 형식으로 펼쳐 보인 이 작품은 원곡이 갖는 거대한 장중미와 역동성을 드라마틱한 춤과 연결, 한국식 '카르미나 부라나'로 형상화한다.
현대인들은 안주하지 못하고 서성대며 갈등하는 방랑자들이다. 정착과 방랑, 인간 필생의 과제로 부각되는 명제를 두고 부질없음과 집착은 늘 충돌한다. 원초적 생명력이 살아 숨 쉬도록 짜인 춤은 일탈을 꿈꾸며 방랑자가 되도록 부추긴다. '몸' 철학의 상부로 이어지는 다양한 실험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은 조명, 영상, 무대의 지속적 변화와 환상적 조화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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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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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이 작품의 춤 구성은 Prologue : '운명'-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 1막: '대지의 풍경', 2막: '방랑자들', 3막: '사랑이야기', Epilogue: '미로'-끝없이 갈라지는 길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품 중 트렁크는 방랑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거대한 빌딩 숲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군상들이 열정을 안고 모여든다. 영상은 수시로 상황을 설명하고 바닥 디자인은 고뇌의 흔적을 보여준다.

곡의 구성은 춤 이해를 위한 필수 코드이다. 관객을 압도하는 '서곡': 제1곡 '운명의 여신이여, 세계의 왕비여', 제2곡 '운명의 타격'에 이어 제1부 '봄의 노래' 편: 제3곡 '아름다운 봄의 정경', 제4곡 '태양은 모든 것을 누그러뜨린다', 제5곡 '잘 왔도다 봄', 제6곡 '춤곡', 제7곡 '숭고한 숲', 제8곡 '가게 사람이여, 볼 연지를 주세요', 제9곡 '왈츠', 제10곡 '세계가 내 것이 되더라도'는 봄의 도래를 환호하며 흥분과 열정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구축한다.

녹색시대, 눕고, 구르고, 뛰며 자연의 품에 안긴 봄의 약동은 (9),(2,3,5),(2,4,7),(2,2,5,2),(3,4,3)등 다양한 숫자(춤꾼들)의 조합으로 변화를 이루며, 수평과 사선의 빛과 균형을 이루며 영역의 분할을 시도한다. 특히 남성무는 힘과 기교를 보여주는 역동성, 경쾌한 움직임, 섬세한 디테일로 거대한 조형을 이룬다. 자연에 가까운 모습을 위해 분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진청(眞靑) 주조의 빛이 여인들을 부드러운 발레적 풍경으로 유도하고 남자들도 합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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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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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아주 명쾌한 춤은 용솟음치듯 빗소리를 영접한다. 제2부 '술집에서의 전경' 편: 제11곡 '분노의 마음 가라앉지 않고', 제12곡 '일찍이 내가 살았던 호수', 제13곡 '나는 승원장(僧院長)님이시다', 제14곡 '술집에서는'에서는 제1부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순례자, 이방인, 방랑자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키며 기대와 불안으로 가득 찬 여행의 긴장감을 조성, 현대적 모습의 풍경을 연출한다. 술집 분위기는 다양한 조명 구성, 노래, 춤과 어울려 절정의 유희감을 생산한다.

최성옥 안무는 솔로, 두엣, 군무에 이르는 변화의 무파(舞波)와 미장센으로 엄숙과 정열 사이의 고뇌를 추상으로 이끈다. 거대한 탁자 여섯 개, 그 위에 서있는 여섯 명 서로의 주장을 위한 춤을 춘다. 각자의 개성을 들어내기 위한 경쟁, 두드러진 나신의 남자 춤추면 다른 탁자위의 남자들이 서있다. 모두에게 맞춘 포커스, 신체 각 부분이 돋보이는 춤을 춘다. 탁자도 이동하며 춤춘다. 만화경, 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포이즈, 탁자 위 연인의 솔로가 뒤따른다. 카르멘을 연상시키는 열정의 붉은 빛이 탁자를 휘감는 가운데 방랑의 트렁크 다시 등장한다.
제3부 '사랑이야기'편: 제15곡 '사랑의 신은 어디에나 날아와서', 제16곡 '낮, 밤 모든 것이', 제17곡 '붉은 동의(憧依)를 입은 처녀가 서 있었다', 제18곡 '나의 마음은 한숨에 차있다', 제19곡 '젊은이와 처녀가 있다면', 제20곡 '오라, 오라', 제21곡 '헤매는 나의 마음', 제22곡 '즐거운 계절', 제23곡 '그리운 사람이여', 제24곡 '아아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여', 제25곡 '운명의 여신이여, 세계의 왕비여'는 빛의 신비로 봄의 미토스를 창출한다.

길 떠나는 가족, 같은 마음을 가진 듯 한 줄로 선 방랑의 무리들, 여인은 사랑을 노래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무리들, 마무리를 위해 재빨리 이어지는 합창곡, 짝을 이루는 무리들, 후반으로 갈수록 조명은 밝아오며, 다양한 조형으로 뛰어오르며, 업고, 업히고, 뽐내고, 몸을 흔든다. 조용히 걸어오는 여인, 이어지는 남성 5인의 군무, 가변의 무대는 계속 회전하고 바람소리 피날레를 합창, 운명의 여신은 방랑자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춤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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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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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옥 안무의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
길(La Strada)과 벽(Die Wand)의 미로에서 다양한 방랑의 파편들인 불안, 기대, 희망, 절망, 사랑, 증오, 기쁨, 슬픔들이 혼재한 가운데 춤은 심도 깊은 호흡으로 현대성의 짐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미풍에 하늘거리며 나비처럼 자유로울 것인가를 고민한다. 절망적 삶은 희망을 만들고, 희망은 다시 삶을 이어주는 뫼비우스의 띠인 것을 안무가는 믿기 때문에 잔가지처럼 나뉜 길을 가며, 열정의 띠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더 높이 비상하려는 몸짓을 연출한다.

중세 세속적 시가집의 필사본으로 보이에른의 송가(Lieder Aus Beuern)인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를 작곡한 칼 오르프의 25곡, 이것을 안무한 최성옥은 중세와 현대를 오가며 수미쌍관의 묘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방랑의 음유시인들이 신성을 희롱하며 환락을 조장하며 세속적 풍자와 익살로 극성(劇性)을 띠고 있다. 운명의 여신에 대한 성스러운 칭송이 이 작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면서 인간들의 삶은 철저히 운명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장엄하게 보여준다.

최성옥, 현대무용의 거대한 한 축을 견고하게 구축해내고 있는 안무가이다. 서울에 진주해 있는 현대무용 벨트의 일부분을 대전으로 남진시키며, 가벼운 기교와 땀방울이 보이지 않는 연기로 관객들을 기만하고 있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현대무용들의 작태를 경고하듯 작심하고 보여준 '카르미나 부라나–방랑의 노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제자들이 견지하고 있는 현대무용의 수범적 행위는 바람직한 춤 행위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