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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기운 머금은 화폭위엔 사랑의 언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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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기운 머금은 화폭위엔 사랑의 언어 가득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46)] 봄의 소리, 사랑예찬/이영지 작가

누구에라도…무엇이든지 이야기하고 싶은 계절

소소한 인생의 조각들이 종알종알 말을 건네온다
봄에는 소리가 있다. 차가운 바람 소리와 날카로운 얼음 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하고 긴 겨울이 지나면, 봄은 얼음이 녹은 개울가에 물이 흐르는 소리, 한껏 하늘을 나는 새소리, 오랜 침묵의 시간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개구리 소리, 살랑이는 봄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아장아장 걷는 아가의 웃음소리 등 봄은 모든 만물이 깨어나는 소리를 담고 있다. 삶이 살아 숨 쉬는 소리는 그래서 봄에 꽃과 같이 피어난다. ‘내 인생의 봄’이란 표현처럼 우리는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봄에 비유하고, 봄에는 누구에게라도 무엇이던지 이야기하며 같이 깔깔대고 싶어진다. 봄 속에서.

이영지, 1분 1초가 아까워, 30x91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1분 1초가 아까워, 30x91cm, 장지위에 분채, 2015
이영지, 괜찮아...난..., 100x100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괜찮아...난..., 100x100cm, 장지위에 분채, 2015
이영지의 작품은 세상의 모든 봄을 담고 있다. 작가가 그리는 봄은 찬란한 이 세상 그 자체이다. 푸른 나무들에는 이제 막 힘겹게 싹을 틔운 연한 초록빛부터 뜨거운 햇볕에 푸르게 달구어진 짙은 녹색잎까지 갖가지 초록색 보석들이 빼곡하게 알알이 박혀있다. 작가는 힘들었을 때 나뭇잎을 그리기 시작해 한잎 한잎 그 잎을 채워나가며 점차 선에서 면이, 면에서 입체가, 입체에서 공간감이 생겨나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불행과 우울을 올올히 나뭇잎에 투영하고 있다. 작은 점에서 시작된 생명이 큰 생명으로 성장해나가도록 섬세하고도 성실한 붓질로 나뭇잎을 그려내는 작가는 나뭇잎을 그리면서 깨달은 조용한 행복감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준다.

이영지, 너로 가득해, 53X45.5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너로 가득해, 53X45.5cm, 장지위에 분채, 2015
이영지, 날 받아주겠니, 35x27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날 받아주겠니, 35x27cm, 장지위에 분채, 2015
이영지 작품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는 ‘사랑’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파내도 마르지 않은 샘 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작품 하나하나에서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소리내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사랑예찬(Eloge de l'amour)』에서 “욕망이 즉각적인 힘이라면, 사랑은 정성과 재연(再演)을 요구한다”고 썼다. 이영지의 사랑은 반복 체계를 인식하고 있다. “사랑해”를 아무리 외쳐도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데는 모자라고, “사랑해”를 아무리 들어도 상대방에게 받고 싶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듯, 작가는 끊임없는 반복의 작업을 통해 봄 같이 찬란하지만 짧은 청춘의 사랑을 인생의 사랑으로 화면 위에 붙들어 놓고 있다. 한지를 여러 겹 붙여놓은 2합, 3합의 장지 위에 단수 처리를 하고 그 위에 몇 번씩이나 아교 처리를 한 후에야 그림을 시작한다. 흩어진 보석처럼 셀 수 없을 만큼 촘촘히 나뭇잎들을 그리고 작은 새들은 종알종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흩날리는 꽃들은 바람의 소리를 전하며, 시들지 않을 봄날의 찬란함을 영원 속에 붙들어 놓는다.

이영지, 같은 꿈꾸기, 35x27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같은 꿈꾸기, 35x27cm, 장지위에 분채, 2015
이영지, 스치는 바람, 110x60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스치는 바람, 110x60cm, 장지위에 분채, 2015
‘1분 1초가 아까워’, ‘아무리 노력해도 네가 보여’, ‘너로 가득해’, ‘너는 날 녹여’, ‘사랑은 시들 줄도 모르고’, ‘행복해서 미안해’…. 달콤한 사랑의 언어로 가득한 그림들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과 나무, 새들이 작가의 이야기를 전한다. 작가가 하고 싶은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은 새를 통해서 드러난다. 정적인 것에서 벗어나 동적인 것, 날아다니는 존재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말로 할 부분은 너무 많은데 그 이야기를 혼자서는 다 할 수 없어서 부리로 날갯짓으로 이야기를 전해 줄 존재를 찾았고, 이 새는 이제 한 마리에서 늘어나 종알종알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가 그리는 꽃들이 특정한 꽃이 아니라 가장 찬란한 계절에 가장 예쁘게 피는 꽃이고, 작가가 그리는 나무가 특정한 나무가 아니라 알알이 박힌 나뭇잎으로 작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나무이듯이 작가를 이야기해주는 이 새들은 이름이 없다. 아니 표정도 없다. 따라서 이영지의 이름 없고 표정 없는 꽃과 나무와 새들은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가 설명하듯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들, 표정들의 여러 변화하는 과정을 그림에 담아낸다. 여기에 나타나는 ‘새’ 또한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표현하고 싶지만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과거 잊고 지낸 것, 드러내지 못하고 숨겨야하는 여러 모습들을 ‘새’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 그 새는 내 자신일 수도 있고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새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림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다. 새들은 휴식하고, 날며, 사랑을 속삭인다. 작가가 전달하는 1인칭 시점의 제목들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공감하는 이야기, 그리고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이영지, 나도 쉬고 싶다, 65x65cm, 장지위에 분채, 2010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나도 쉬고 싶다, 65x65cm, 장지위에 분채, 2010
이영지, 나 갖고 싶지, 35x27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나 갖고 싶지, 35x27cm, 장지위에 분채, 2015
가장 꿈같은 봄이 펼쳐지는 이영지의 그림 속에는 그러나 무수한 점을 찍어서야 한그루의 나무가 온전히 서 있듯이, 무수한 상처와 아픔을 딛고 난 후에야 생명이 가득한 사랑을 꽃피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병아리의 깃털처럼 부드럽고, 강물에 비치는 햇살처럼 반짝이는 봄. 끝없는 정성과 노력으로 자신의 아픔을 알알이 새겨내는 그림. 그림 속에 피어난 봄은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사랑이다. 그리고 기쁨이다. 푸른 나뭇잎과 나무들이 주로 등장했던 이영지의 그림 속에는 어느 샌가 예쁜 색의 꽃들이 가득피고 음악이 들려온다. 사랑의 생명력은 기쁨을 찬연히 꽃피운 봄을 어느새 우리에게 데려왔다. 알랭 바디우가 예찬한 사랑처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저는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는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원천에 담겨 있는 물속에서 저는 우리의 기쁨을,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의 기쁨을 봅니다. 말라르메의 시처럼, ‘물결 속에서 발가벗은, 네 기쁨에 이른 너를’ 저는 봅니다.”

이영지, 너랑 봄, 27x35cm, 장지위에 분채, 2015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너랑 봄, 27x35cm, 장지위에 분채, 2015
이영지, 사랑은 시들 줄도 모르고, 72.7x60.6cm, 장지위에 분채, 2014이미지 확대보기
이영지, 사랑은 시들 줄도 모르고, 72.7x60.6cm, 장지위에 분채, 2014
●작가 이영지는 누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13년 슬로베니아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MMMart에 참여했다. 서울을 비롯하여 오사카, 홍콩, 싱가포르, 대만, 사우스햄톤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아트페어에 참여했으며, 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비구상적 작품에서 구상 작품으로 선회한 후, 자신과 주변인들의 일상적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 온 작품을 따뜻한 화면으로 전달하고 있다.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