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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10)] 평범한 일상에 그림을 걸다, 공공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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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10)] 평범한 일상에 그림을 걸다, 공공미술

러버덕
러버덕
지난해 가을, 석촌호수를 찾아온 노란 ‘러버덕’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공공장소에 귀여운 모습의 거대한 노란 인형이 등장하니 그 오리가 머무는 몇 개월간 석촌호수는 명소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러 매체에 소개된 바가 있듯이, 러버덕은 단순한 고무인형이 아닌 공공미술(Public Art) 작품이다.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이라는 현대미술 작가가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제공하고 놀라움과 웃음을 주고 싶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나의 작품은 일상으로부터 잠시 휴식을 준다. 걸어가던 사람이 잠시 길을 멈추고 자전거를 타던 사람은 내려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만들어 간다. 이것이 공공장소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효과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공공미술이 무엇인지, 어떠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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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질하는 사람
감천이미지 확대보기
감천
일차적인 의미의 공공미술은 지역사회를 위해 제작되고 지역사회가 소유하며 향유하는 미술을 뜻한다. 그러나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 미국의 ‘The Percent for art(미술을 위한 일정지분투자)’와 ‘Art in public place(공공장소의 미술)’제도에 기초를 두고 형성된 것으로 보다 복잡하다. 전자는 공공건물을 건축할 때 건설 예산액의 1% 정도의 지분을 미술품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이고 후자는 말 그대로 지역사회에서 공공장소에 전시할 미술품을 제작, 의뢰하고 구입하여 관리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적인 움직임은 당시 대지미술, 자연미술, 생태미술 등을 포함하는 환경미술이라는 장르를 발전시키고 미술관 밖의 미술, 판매와 거래의 대상이 아닌 보다 자유로운 미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특히 대표적으로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자연환경을 창조적으로 응용하는 대지미술에 ‘공공성’과 ‘소통’이라는 개념이 더해지면서 공공미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공공미술은 60년대부터 서서히 시행착오와 시민적 합의를 거치며 발전되어 왔지만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은 90년대부터 시작되어 비교적 그 역사가 짧다. 아직 시민들이 생각하는 공공미술은 건축물을 장식하는 작품, 야외조각, 또는 건물 로비에 있는 작품 정도의 개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마을미술프로젝트처럼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고, 더 나아가 도시계획과 함께 이루어지는 공공미술의 형태도 있다. 계단식 산동네의 특징을 고스란히 안은 채 주민과 소통하고 협업하여 예술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성공한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약 3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이 마을은 국내 공공미술의 발전된 사례, 파괴 없는 창조의 사례로 불리며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앞서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일본의 나오시마, 이누지마 같은 섬마을도 발전된 공공미술의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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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벨
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
서울 포스코센터에 설치된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아마벨(Amabel)이나 청계천 복원사업 때 세워진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스프링(Spring)은 처음에 흉물스러운 조형물이라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품성이나 조화로움 등 미적인 해석은 차치하고 우리는 이제 그것을 하나의 익숙한 상징조형물이자 공공미술 작품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랜드마크나 상징조형물과 같은 형태에서부터 마을미술프로젝트까지...공공미술은 이미 여러 형태로 우리들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미술관의 미술에서 벗어나 잠시 생각해 보자. 호수에 떠 있던 고무오리의 황당하지만 귀여운 자태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면, 망치질하는 사람이 없는 광화문 흥국빌딩을 상상할 수 없다면, 일상의 미술로서의 ‘공공미술’은 당신 곁에 이미 친구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