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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상미기한(賞味期限)’으로 식량을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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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상미기한(賞味期限)’으로 식량을 아끼자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찾고 있다. 그래서 효능이 있는 음식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구입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음식을 잘 먹는 일도 중요하지만 혹여 우리 몸에 들어 온 건강을 해치는 성분들을 신속하게 밖으로 배설하여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옛말에 ‘잘 싸야 잘 산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배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식품산업에 있어서도 그와 비슷한 논리가 성립된다. 좋은 식품을 생산하는 것 못지않게 해가 되는 식품은 가능한 빠르게 폐기 처분하여 다른 사람들이 먹고 탈이 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으로 마련한 것이 유통기한이다. 유통기한을 넘어선 식품은 폐기처분하여 우리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리가 있고 타당한 법이라고 여겨지나 자세히 보면 여기에도 문제점이 남아 있다. 모든 식품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식품 중에는 물기가 많은 식품도 있고 건조되어 수분이 별로 없는 식품도 있다. 수분이 많은 식품, 이를테면 우유나, 고기, 생선과 같은 식품은 수분뿐만 아니라 세균들이 좋아하는 영양소들도 풍부하여 쉽게 미생물들이 번식할 수가 있어 식중독을 유발하는 수인성 전염병세균이 창궐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식중독을 일으키기도 하여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런 식품은 빠르게 세균들이 증식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넘기면 매우 위험하다. 그런가하면 물이 적은 건조된 식품으로 커피나 라면, 과자류, 빵, 쌀, 후춧가루, 고춧가루 등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식중독을 유발한 위험은 없는 대신에 맛에 있어서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에 불편한 맛이나 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품질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모든 종류의 식품을 모두다 일괄적으로 유통기한을 적용하고 날짜가 지난 것은 모두 폐기처분해야하는 것으로 관리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폐기처분되는 가공식품이 일 년에 약 7000억 원에 다다른다. 엄청난 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 50년 전 만하여도 외국의 원조를 받아가면서 어렵게 끼니를 채워나간 민족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풍족하게 먹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시절을 접어둔 채 이렇게 식량 자원을 낭비해도 될 것인가!

식품과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식중독균을 유발할 가능성이 적은 식품의 경우는 유통기한이란 표현보다는 ‘상미기한’(賞味期限·먹을 때 가장 신선한 시간)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품질이 조금 떨어지는 식품은 가격을 낮추어 팔도록 권장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식량자원도 아끼면서 아울러 생계문제도 해결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미국에서 귀국하여 생활이 어려웠던 1988년도 시절 우리 가족은 일반 쌀 대신에 통일벼를 선택하였는데 이는 밥맛이 떨어지지만 가격이 두 배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2~3년 묵은 통일벼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일반 쌀의 1/4가격이면 구입을 할 수가 있어 집을 마련하고자 저축하였던 우리 가족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요 너무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도 유통기한이 하루가 지난 빵은 1/3가격으로, 2일이 지난 것은 1/4가격으로 구입할 수가 있어 생활이 어려운 유학생들은 맛이 좀 떨어지지만 값싼 저 품질의 식품을 선택하여 먹곤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실용적이면서 자원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경제적인 IMF를 극복한 우리가 또 다른 식량 IMF를 맞이할는지 모를 정도로 기후 변화와 환경여건의 변화로 외국으로부터의 식량을 원활히 수입하지 못할 순간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금 품질이 떨어진다고 그냥 폐기처분할 것이 아니라 품질이 떨어진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식품의 안전을 철저히 하여 식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식품의 경우는 현행법과 같은 유통기한을 엄격하게 적용해 나가지만 식중독과는 거리가 멀지만 맛이나 향, 그리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조직감이 최상제품에 조금 못 미친다면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 가격을 통하여 보상함으로써 식량 자원을 아껴나가고 식량의 폐기처분으로 인한 환경오염도 줄여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