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강금주의 미술산책(16)] 로댕에서 앤디 워홀까지 대가 작품 소장한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

공유
2

[강금주의 미술산책(16)] 로댕에서 앤디 워홀까지 대가 작품 소장한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

오하라미술관 전경이미지 확대보기
오하라미술관 전경
작은 배들이 떠다니는 강변을 따라 버드나무가 바람에 흩날리는 곳으로 일본 내에서는 정말 유명하지만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 있다. 17~19세기 에도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구라시키와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 오하라 미술관이다. 구라시키는 일본 오카야마현(岡山縣)에 위치한 곳으로 작은 운하와 회벽, 검은색 기와지붕이 어우러져 특유의 고풍스럽고 한적한 분위기가 가득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마을이다. 오사카까지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수로로 이용되었던 구라시키강을 끼고 발달한 이 마을은 예로부터 해안교통의 요지이자 상업지역이었다.

구라시키에는 당시 거상들의 저택과 창고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일본정부는 운하를 따라 창고들이 늘어선 거리를 중심으로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하여 구라시키 미관지구로 관리하고 있다. 맑은 운하를 따라 드리워진 버드나무, 에도시대를 연상시키는 인력거와 고급스러운 기와지붕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풍경은 엽서의 그림처럼 한적하고 평화롭다.
작은 운하와 회벽, 검은색 기와지붕이 어우러져 특유의 고풍스럽고 한적한 분위기가 가득한 구라시키이미지 확대보기
작은 운하와 회벽, 검은색 기와지붕이 어우러져 특유의 고풍스럽고 한적한 분위기가 가득한 구라시키
이 아름다운 구라시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일본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오하라 미술관(大原美術館)이다. 에도시대의 고풍스러운 가옥들 사이로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이오니아양식의 미술관이 보인다.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에서 방적공장을 경영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한 기업인 오하라 마구사부로(大原孫三郞),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화가였던 코지마 토라지로(鹿島虎次郞)의 우정과 예술적 교류로 인해 세워졌다.

코지마 토라지로는 당시 오하라 집안의 후원을 받아 유럽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고 그의 권유로 오하라 마구사부로는 서양미술품 수집을 시작하게 되었다. 토라지로는 직접 미술품을 선택하고 당시 유럽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작품을 수집해주는 등 미술을 사랑했던 오하라의 자문인 역할을 해주었다. 오하라 마고사부로는 1929년 48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한 토라지로를 기념하기 위해 이듬 해 구라시키에 오하라 미술관을 설립한다.

구라시키이미지 확대보기
구라시키
오하라의 컬렉션은 총 3500여점에 이르며 유럽의 미술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질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엘 그레코, 로댕, 모네, 르누아르, 고갱, 피카소부터 마크로스코, 재스퍼존스, 이브클레인, 앤디워홀 등 현대미술 작가까지 미술사를 관통하는 작가들의 중요 작품들을 모두 소장하고 있어 한적한 마을에 있는 사립 미술관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푸른 넝쿨이 우거진 돌담을 지나 그리스 신전을 닮은 오하라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면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 중 하나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겨준다. 너무나 전통적인 일본의 풍경을 간직한 구라시키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국적인 오하라 미술관의 외관과 로댕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로움과 함께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에서 일본의 이 작은 마을까지 바다를 건너고 건너 힘든 여정을 거쳐 도착했을 대가들의 작품이기에 왠지 더욱 반갑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구라시키이미지 확대보기
구라시키
서양미술품들이 전시된 본관에서 나와 작은 정원들을 지나면 일본의 전통 공예품들이 전시된 공예관, 일본 현대미술 전시관 등이 나온다. 그 컬렉션 또한 매우 방대하고 정원에 세워진 조각들도 헨리무어, 이사무 노구치 등 너무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미술애호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하라 미술관에서 나와서 마을 안으로 걸어가다 보면 구라시키의 옛 방적공장을 개조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아이비 스퀘어가 나오는데, 이곳에 바로 코지마 토라지로 기념관이 있다.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한 붉은색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코지마 토라지로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회화 작품들로 가득하다. 그의 작품들을 보며 그가 유학시절 서양미술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당시 매우 새로웠을 그의 작품이 일본 및 아시아 미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오하라미술관 입구이미지 확대보기
오하라미술관 입구
하루 종일 골목골목을 걸어 다녀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한적한 구라시키와 아름다운 컬렉션을 자랑하는 오하라 미술관은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특별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어쩌면 에도시대의 정취가 배어있는 다양한 도시들 중 유독 구라시키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오랫동안 구라시키와 함께 해 온 오하라 미술관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지역의 기업인과 화가가 함께 예술적으로 소통하고 교감하며 수집해온 작품들과 그것들을 구해올 때 일어났던 스토리로 가득한 미술관과 주변의 고즈넉한 마을 풍경은 이미 오랜 시간 꼭 맞춘 옷처럼 어우러져 다른 어떤 지역도 따라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미술 작품과 함께 한적한 곳에서 마음의 치유를 하고 싶다면 지금 한창 푸르른 버드나무 잎이 드리웠을 구라시키로 떠나야 한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