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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18)] 조용하게, 그러나 선명하게-나를 위로하는 색(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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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18)] 조용하게, 그러나 선명하게-나를 위로하는 색(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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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컬러링북(Coloring Book)이 큰 인기를 끌었다. 로봇이나 공주 캐릭터에 색을 입히는, 아이들을 위한 색칠놀이의 성인판이라고 볼 수 있다. 알록달록 색깔을 칠하고 무언가를 그리고 끄적거리는 행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며 ‘힐링을 위한’ 어른들의 고상한 취미로 떠오른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컬러링북이 있지만 대부분 자연, 여행지, 디자인 패턴, 명화 등의 주제로 아름답고 다소 복잡한 도안들이 책으로 묶인 것이다. 무언가에 색을 입힌다는 것, 색연필을 잡고 칠한다는 것, 자기만의 그림책을 완성한다는 것. 이 일련의 행위가 바쁜 생활에 지친 이 시대의 어른들에게 어떻게, 어떤 위로를 던진 것일까.
어린 아이들은 누구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손에 힘이 생기기 시작하면 낙서를 하고 싶어하는 법. 끄적이고 그리고자 하는 것, 나아가 창작하고자 하는 것은 곧 인간의 본능이다. 유년기를 벗어나 더 이상 자유로운 창작놀이가 허락되지 않은 어른들에게 컬러링북은 일종의 소박한 미술시간일 것이다.

퇴근 후 자기만을 위한 시간, 색연필을 잡은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미술을 통해 시각적인 자극과 무언가를 만든다는 성취감을 맛본다. 이러한 과정의 중심에는 바로 ‘색(色)’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미술이라는 시각예술은 작품이라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 재질감 등의 외재적 재미들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다름 아닌 색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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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바넷 뉴먼(Barnett Newman) 같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50-60년대 미국에서 발전되었던 색면추상과 단색화가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예술작품에 내재된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 색채가 우리에게 주는 강렬한 힘을 보여주는 예이다. 무엇을 그렸는지, 어떠한 재료를 썼는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관람객의 시선에 들어와 뇌를 자극하는 것은 색깔인 것이다. 색면추상 작품이 가지는 일종의 숭고미는 압도적인 캔버스 크기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감상자의 마음을 가장 먼저 두드리는 색채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리에는 화려한 간판과 광고가 넘쳐나고 디스플레이 기술은 이미 너무나 발전되어 실재보다 더 선명한 화질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이용하면 사진들은 버튼 하나로 쉽게 보정되고 색깔이 입혀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시각적으로 풍족한 시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록 실재의 색감과는 조금 다르더라도 물감, 색연필, 크레파스 등이 주는 정감 있는 색채가 그리운 것이 아닐까. 그리고 손을 움직여 색으로 면을 채우는 그 과정을 느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색을 고르고 칠하는 재미, 2차원의 면을 다양하게 매운 색깔들을 바라보는 재미. 이것이 곧 미술을 창작하는 재미이자 감상하는 재미이다. 컬러링(Coloring)은 미술이라는 예술이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다채로운 경험과 감동을 색깔을 중심으로 고스란히 축소시킨 과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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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테라피(Color Therapy)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색깔이 있는 것을 곁에 두고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스트레스 해소를 할 수 있다는 치료요법이다. 색이 우리 몸에 흐르는 다양한 에너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색 도시 속 바쁜 현대인들에게 색이 주는 활력을 느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어린 아이의 행위와 같이 손을 움직여 색을 칠해보는 경험이 한번쯤은 꼭 필요하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미술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색감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한 번이라도 느꼈다면 미술의 근본적인 즐거움을 경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색은 미술이 주는 즐거움이자 우리에게 건네는 깊은 위로이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