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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의 극명한 대비 통해 끝없는 욕망에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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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이상의 극명한 대비 통해 끝없는 욕망에 경종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55)] 욕망이라는 이름의 괴물

이룰 수 없는 이상향 좇다 결국 파멸하고 마는 인간 묘사

작가의 작품에 투영된 거세되지 않은 욕망서 자신을 확인
박효진, Paradise Lost, Pigment print, 80 x 100㎝, 2014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Paradise Lost, Pigment print, 80 x 100㎝, 2014
아름답던 메두사가 끔찍한 괴물이 된 것은 그녀의 욕망 때문이다. 메두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자신이 여신보다도 더 아름답기를 원했으며 아테나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정을 나누는 등 그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그 욕망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우리의 욕망은 꿈틀거리는 뱀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 메두사처럼 점점 우리 속에서 자라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괴물로 변하기 전의 메두사처럼 욕망의 모습을 숨긴 채 스스로를 제어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욕망은 언제든 괴물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저주에 걸린 메두사처럼 아름다운 과거만을 간직한 끔찍하고도 슬픈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박효진, Hope, Pigment print, 110 x 110㎝, 2015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Hope, Pigment print, 110 x 110㎝, 2015
박효진, Temptation, Pigment print, 102 x 110㎝, 2015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Temptation, Pigment print, 102 x 110㎝, 2015
박효진의 작품들은 그런 슬픈 괴물을 닮았다.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니케, 다비드, 포세이돈, 성모상 등은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거나 인간의 이상향을 대변하고 있는 신화 속 인간적인 신들의 모습이며 청화백자는 가장 고도의 문화적 완성품을 대변하고 있다. 이는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이거나 고도의 문화적 산물은 인간이 꿈꾸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바닥을 딛고 있는 현실적 이상화의 모습과 달리 위의 화려한 꽃들은 더 높은 욕망의 산물이며 닿을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모습을 보여준다. 계절과 시간에 상관없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 미친 듯한 꽃의 향연에 색색의 물감들이 끼얹어져 있다. 숨을 돌릴 수도 없이 강렬함으로 욕망을 분출하는 이 꽃다발들은 그러나 가장 화려한 상태에서 멈추어져 있는 조화이며 거세된 욕망에 다름 아니다. 아랫부분의 조각상과 청화백자가 진정성이 있는 진품이 아닌 작가가 시장에서 구입한 복제된 가품이듯이 우리가 꿈꾸는 현실은 그것만으로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 또한 이 이상화는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것은 거세되고 죽어있으며 그 터져 나오는 색채는 피를 흘리듯, 눈물을 흘리듯 아래로 향하고 있다.

박효진, Fall of an Empire 12, Pigment print, 110 x 110 ㎝, 2015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Fall of an Empire 12, Pigment print, 110 x 110 ㎝, 2015
박효진, Paradise Lost 2, Pigment print, 110 x 110㎝, 2015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Paradise Lost 2, Pigment print, 110 x 110㎝, 2015
현실을 이상화한 모습은 가장 행복한 모습이어야 한다. 닿을 수 없을지라도 파라다이스의 모습은 가장 완벽한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나 박효진의 작품 속에서 현실 속의 이상화와 궁극의 이상향의 모습은 왠지 모를 슬픔을 담고 있다. 이 작품들은 한때 아름다웠으나 이제는 두렵기까지 한 괴물들의 모습을 닮아있다. 메두사는 아름다웠던 자신의 과거 모습을 저주 속에 영원히 가두어버린 채 자신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돌이 되어 버린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이면서 외눈박이 괴물로 탄생한 키클로프스(Kyklops)는 인간을 내던져 죽이고 그 고기를 먹을 정도로 잔혹하지만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Galatea)의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로워한다. 세이렌(Seiren)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배의 선원들을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선원들이 노래를 들었음에도 그 지역을 빠져나가면 자존심에 결국 죽음을 택해야 하는 운명이다. 매혹적이지만 위험하고, 아름답지만 슬프며, 결국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죽음으로까지 갈 수밖에 없는 서글픈 괴물들의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들의 조합 속에서도 결국은 고개 숙여 제 자신의 슬픈 액체를 떨구어야 하는 박효진의 작품들에게서 되살아난다.

박효진, Harmony, Pigment print, 116 x 140㎝, 2015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Harmony, Pigment print, 116 x 140㎝, 2015
박효진, Fall of Empire, Pigment print, 100x80㎝, 2014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Fall of Empire, Pigment print, 100x80㎝, 2014
박효진의 작품 속에 투영된 욕망은 잃어버린 욕망, 거세된 욕망에 대한 분출과 슬픔을 동시에 드러낸다. 극도의 아름다움과 최상의 선을 지녔으나 결국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게 된 서글픈 괴물의 모습이 박효진의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 조용한 청화백자의 단아함과 극도의 아름다움과 최상의 선을 추구한 조각상들 위로 잘려져 꽂혀 있는 화려한 꽃들은 그 아름다움을 잃지도 시들지도 않지만 그 꽃은 향기도 없이 박제된 이상향을 보여준다. 그 이상향은 잃어버린 낙원이자 강박적 젊음에의 목마름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욕망이 채워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패한 이상향에 대한 우리의 갈증은 줄어들지 않는다. 뜨거운 피보다 붉고, 황금보다도 밝고, 꽃들보다도 화려한 색은 거세된 욕망의 꽃다발 위로 처연히 흘러내린다. 비로소 완벽한 현실의 조각상과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이 흘러내리는 물감으로 만나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합쳐진 그 조합물들은 아름답지만 그로테스크한 괴물이 되었다.

박효진, Spiritual Garden, Rose, Pigment print, 80x100㎝, 2014이미지 확대보기
박효진, Spiritual Garden, Rose, Pigment print, 80x100㎝, 2014
박효진의 욕망이 구현되는 공간은 ‘밤의 공간’이다. 이곳은 감추어두었던 성적인 비밀이 드러나고 욕망이 꿈틀대며 신비한 힘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는 밤의 공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밤은 내 앞의 대상이 아니고, 나를 에워싸며 나의 모든 감각을 관통하고 나의 상기를 질식시키며 나의 인격 동일성을 거의 파괴한다. 나는 더 이상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대상들의 윤곽을 보는 것으로부터 나의 조망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밤은 측면이 없고 그 자체로 나와 접하며 밤의 통일성은 마나(mana: 초자연적인 힘)의 신비적 통일성이다…. 모든 공간은 반성하는 자에 대하여 그 부분들을 결합하는 사고에 의해서 지탱되나 그 사고는 아무 곳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그것과 결합하게 되는 것은 밤 공간의 한가운데서이다.” 밤에 공간에서 펼쳐지는 박효진의 작품은 그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뿌리도 없는 욕망의 정원을 꾸민다. 밤의 정원 속에 잘린 메두사의 머리가 굴러다니듯 박효진의 오브제들은 저마다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돌이 된 메두사의 머리와는 달리 그 오브제들은 아직도 그 색을 반짝이며 채워지지 않는 그 안의 독기를 내뿜고 있다. 메두사의 머리가 돌이 된 것은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효진의 작품을 우리의 거울인 듯 바라본다. 거기에서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괴물 같은 내 자신의 욕망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감각을 관통하고 나의 비밀을 드러내며 나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자신 안의 괴물적 욕망을 확인한다. 우리는 모두 괴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돌이 되지 않고 완전히 거세되지도 않은 채 아직도 채우지 못한 갈증을 뚝뚝 떨구어내며 서 있다. 끝없는 욕망의 밤 속에 서있는 괴물 같은 자신의 모습. 이것이 박효진이 꾸민 정원의 모습이다. 밤의 정원에서 욕망은 끊임없이 자라난다. 계속 꽃을 피운다.

● 작가 박효진은 누구?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 및 동 대학원에서 조소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영국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순수미술 석사를 졸업했다. 서울과 런던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 런던, 일본, 홍콩 등에서의 그룹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신체의 일부분을 확대하고 군집해 욕망을 드러내는 조각 작품을 했으며 현재는 이질적인 오브제들을 결합해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밤의 정원’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