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5월, 파리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열렸던 낙선전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작품이 있다.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이다. 마네는 이 그림으로 명성을 잃고 대중들과 비평가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신고전주의 회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젊은 화가들에게는 새로운 예술에 대한 희망과 영감을 주었다. 마네의 ‘올랭피아’ 역시 피죽도 못먹은 여자의 시체를 그린 저속한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롱전에서 낙선했지만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마찬가지로 정면을 응시하는 당당한 시선의 여인, 평면적인 묘사와 원색적인 색감은 그 자체로 새로운 화풍의 시작을 알리는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렇게 마네는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와 같은 젊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이후 ‘인상주의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바지유는 당시 새로운 화풍을 보여주던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싶어했지만 보불전쟁에 참여했던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이후 1874년 처음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가 열리게 된다. 이 전시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작품은 모네의 ‘해돋이:인상’(1872)으로 이 작품과 전시회를 조롱하는 비평가의 칼럼에서 ‘인상주의(Impressionisme)’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고 이후 이들 화풍을 일컫는 미술용어로 자리 잡는다.
인상주의라는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화풍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도움을 준 인물이 또 있다. 바로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이다. 카유보트는 화가이자 컬렉터로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구입하며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그의 컬렉션은 모두 과거 뤽상부르 미술관에 기증되어 지금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주의 컬렉션의 모체가 되었다. 살롱전을 중심으로 한 주류 예술 그룹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들은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결국 새 시대를 열었다. 보수적인 시각에 맞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서로를 존중해주고 북돋아주는 끈끈한 우정이 없었다면 현대미술의 시발점으로서의 인상주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명한 가을날, 새로운 미술을 위한 전사였던 인상파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당시 그들이 쏟았을 많은 땀방울과 힘들게 인내하며 버텼을 작업과 생존의 나날들을 상상해본다. 인상주의에 대한 모든 것이 신화가 된 지금, 그들이 화폭에 담아낸 소소한 삶의 이야기, 지나가버리는 자연과 시간의 한 순간, 그리고 간지러운 햇살의 아른거림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