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식품칼럼] 김장문화의 계승을 위해

공유
2

[식품칼럼] 김장문화의 계승을 위해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
2년 전 우리나라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당시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최종 확정하기 전까지 많은 분들이 노력했다. 그로 인해 한국의 대표적인 식문화인 ‘김장문화’가 전 세계인이 함께 보호하고 전승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다.

지중해 4개국의 ‘지중해 요리’, 멕시코의 ‘멕시코 전통요리’, 터키의 ‘제사음식 케시케키’ 등과 같이 대한민국의 김치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올리고 싶었다. 하나 당시 우리나라의 김치 생산량은 중국에 비해 적은 양이었고 더군다나 우리는 이미 김치 수입국으로 전환되어 있어 김치를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자랑하기에는 부끄러운 점이 있었다. 그러던 차 프랑스의 미식술, 일본의 ‘와쇼쿠, 일본의 전통 식문화’와 같이 김장 문화를 올리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중국이 김치의 생산량은 많을는지 모르나 김장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김장문화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김치를 담그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배추를 절이는 것이다. 너무 절이면 김치가 짜서 먹기 어렵고 제대로 절여지지 않으면 김치가 써서 맛도 없고 쉽게 부패할 가능성이 높다. 배추를 절이는 목적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적절한 염의 농도에서 부패균들은 자라기 어렵지만 김치발효균이 잘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이것은 그야말로 많은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잘 알고 계신 사항이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은 어르신네와 함께 김장을 담그면서 알맞게 절이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지역마다 독특한 특산물을 배추 속에 함께 넣어 다양한 맛을 내게 만들었는데 과거 부잣집에서는 10가지 이상의 색다른 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할 정도로 김치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이런 다양함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맛을 가진 김치를 만드는 데에서 유래가 되었고 겨울 내내 김치 위주로 식사를 하다 보니 이것저것 먹어보면서 싫증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채소를 절여서 오랫동안 저장해 두면서 먹는 음식은 다른 문화권에도 많지만 김장처럼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온 국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집중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저장해두는 풍속은 찾아보기 힘들다. 땅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거기에 보관하게 되는데 땅을 파고 항아리를 묻는 일도 여럿 남정네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수월하게 되는 일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김장을 담그고 장만하는 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김장문화에는 공동체 아이덴티티의 나눔이라는 상징적 정서가 숨어 있다. 함께 참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시집간 딸이나 아들에게도 보내주는 나눔의 잔치였다.

김장문화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깊지만 이렇게 담근 김치가 실제로 항암효과도 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김장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 의하면 각 가정에서 김장을 담그는 양도 줄고 담가 먹는 가정도 많이 줄 것이 예상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배추를 절이는 일도 절임 배추를 사서 담가 먹으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고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구태여 땅을 파고 항아리를 묻는 일도 필요 없다. 김장문화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변화다. 그래도 추석이나 구정 때 전 국민이 대이동을 하는 것보다는 김장철에 고향을 찾아가 어르신네와 가족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고 나누어 먹는 풍습이 살아남아 유지되려면 김장휴가라는 처방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40여 년 전 김장 보너스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일단 등재 후에는 나 몰라라하면서 관심도가 떨어지는 우리의 문화에 대한 자세라면 세계인이 지키고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아름다운 우리의 정서가 담긴 김장문화를 오래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과 꾸준함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