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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통해 인류의 고통과 슬픔 극복하고 생명력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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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통해 인류의 고통과 슬픔 극복하고 생명력 창출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61)] 빛으로 밝히는 사랑의 치유

철저하게 회화를 기반으로 따뜻하게 서정성 표현

회화·설치·영상·퍼포먼스를 하나의 콘셉트로 융합
태초에 빛이 있었다. 세상의 시작은 빛과 함께였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나그네는 빛을 향해 걷고 하늘의 달과 별의 빛에 의존하여 방향을 가늠한다. 아무리 긴 밤도 결국은 새벽을 맞이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두움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빛’을 만들어내고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 ‘문명’을 시작하게 된 중대한 사건이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불멸한 신의 존재는 ‘빛’으로 대변되었고, 빛을 시각화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은 미술사에서 끊이지 않고 탐구되었다.

고딕 시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색의 유리창으로 들어온 자연빛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고딕의 빛은 신의 현현(顯現)이자 초월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세계로 가는 관문이었다. 인상주의에 이르러 태양빛 그 자체가 작품의 주제이자 소재가 되었고, 망막에 펼쳐지는 빛의 향연이 캔버스에 다시 펼쳐지게 되었다.

한호 작 Eternal Light, 예술의 전당 설치, 2011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예술의 전당 설치, 2011
한호의 작품은 ‘빛’을 담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밝고 명랑한 아이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외롭고 때로는 공허하고 슬펐던 유년시절에 그를 위로해주었던 것은 자연의 빛이었다. 서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에게 바다의 빛깔, 강의 반짝임, 어두운 동굴 속에서 보았던 하늘, 달빛과 별빛, 반딧불들의 반짝임은 오랫동안 그에게 마술과 같은 아름다움의 인상을 남겨주었고, 이 빛들이 주는 치유와 희망의 힘은 그의 작업 속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고교 시절 영어 회화(會話)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우연히 잘못 가입하게 된 회화(繪畫)반에서 그림을 배우게 된 한호는 유년의 기억이 자양분이 되어 점차 미술에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의 끼를 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Billie Jean)’ 공연으로 서산의 스타가 되기도 하고 교회 연극의 총연출을 맡는 등 대중 앞에 서고 자신을 표현하길 꺼려하지 않았던 한호는 이때의 경험이 현재의 퍼포먼스 작업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한호 작 Eternal Light-Well of Jacob, 2013 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Well of Jacob, 2013
대학 졸업 후 지도교수셨던 장순업 작가의 도제식 가르침으로 회화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한호는 이후 8년 동안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며 2차대전 이후의 추상미술 ‘앵포르멜(Informel)’을 접하며, 예술의 정신성에 대해 깊이 연구하던 한호는 대학 시절부터 배워왔던 서예를 발전시켜 ‘캘리그라피(Caligraphy)’로 논문을 쓰게 된다. 이후 영상을 배우고 뉴욕에서 백남준과 빌 비올라(Bill Viola)의 비디오아트를 접하게 된 한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작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다변성, 다각성, 회화 장르의 공간성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로 그는 빛을 선택하게 된다. 회화의 성격이 짙은 그의 미디어 작업에서는 어린 시절 그를 달래주었던 달빛과 별빛, 바다와 강에 반짝였던 윤슬이 되살아난다. 그의 작품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업과는 달리 철저히 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기술지향적 미디어 작업을 배제하고 새로운 매체로 회화적 감수성과 서정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한지와 그림, 빛으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은 차가운 기술이 아닌 따뜻한 그림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한호 작 Eternal Light, 2011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2011
한호는 그를 치유해주었던 그 빛을 인류를 향한 빛으로 확산시킨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인 모티브에서 점차 사회전반에 대한 이야기, 인류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등 인류 역사의 고통, 치유, 염원 등을 염두에 두게 된다. “진정한 고통은 진정한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고통을 끄집어냄으로써 그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한호의 작품은 인류 보편의 고통과 슬픔의 어둠에서 조용히 빛을 발한다. 그의 작업은 한지 위 회화 작업을 한 후 타공 기법으로 하나하나 구멍을 뚫어 그 뒤에 LED 전구를 배치하여 빛을 앞으로 투과시킨다. 구멍을 뚫어 만든 상처의 자국에는 어느새 따뜻한 빛이 감싸고 우리는 빛이 만들어내는 체험과 운명의 공간 속에서 치유의 깊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한호의 작품은 회화와 설치, 영상, 퍼포먼스까지를 하나의 콘셉트로 아우르는 ‘융합(convergence)’적 작업이다.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라고 했던 현대 무용의 창시자였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의 표현처럼, 한호의 퍼포먼스는 영혼과 정신의 몸짓으로 위안부 할머니의 상처, 남북 분단의 현실, 전쟁고아의 슬픔을 어루만진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함께 미디어아트와 국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퍼포먼스는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제의(祭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호 작 Eternal Light - 동상이몽,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및 퍼포먼스,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 동상이몽,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및 퍼포먼스, 2015
한호 작 Eternal Light - 동상이몽,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및 퍼포먼스,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 동상이몽,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및 퍼포먼스, 2015
한호 작 Eternal Light - 동상이몽,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및 퍼포먼스,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 동상이몽, 베니스 비엔날레 설치 및 퍼포먼스, 2015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영원한 빛-동상이몽’이 위안부 할머니의 상처를 다루었다면, 브라질 트리오 비엔날레 출품작인 ‘Lost Paradise’는 한민족사에 있었던 전쟁의 피해와 절규, 그리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분단 상황 속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으며 전쟁 이전의 한반도의 평화와 이를 복원하기 위한 낙원을 형상화한다. 한호 작가의 작품은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빛의 탐구에서 원폭 문제, 위안부 문제, 세월호 문제 등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이슈를 등장시켜 이를 빛으로 치유하는 작품들로서 점차적으로 인류 보편적인 역사적 문제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빛의 회화적이고 서정적인 탐구와 함께 이러한 인류의 문제를 한국인의 시선에서 다룬 부분이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전시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호 작 Eternal Light, 트리오비엔날레 설치,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트리오비엔날레 설치, 2015
한호 작 Eternal Light, 트리오비엔날레 설치,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트리오비엔날레 설치, 2015
한호가 구현하는 ‘영원한 빛’은 바로 ‘사랑’이다. 『존재와 사건(L'Etre et l'Evenement)』(1988)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사랑예찬(Eloge de l'Amour)』(2009)이란 책에서 포르투갈 시인 페소아(Pessoa)의 시구절 “사랑은 하나의 사유다”에서 시작하여 “예술은 제 모든 형식 속에 사건 그 자체를 담아내는 위대한 사유”라고 설명했다. 한호의 예술은 회화와 설치, 퍼포먼스와 미디어라는 그 모든 형식 속에 아픈 사건들을 담아내고 사유한다. 구멍이라는 상처의 흔적으로 되살아난 그 사건들은 빛으로 제 몸을 밝히고 결국 빛으로 그 상처를 치유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저는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바디우가 예찬했듯이 한호의 사랑의 빛은 모든 고독과 상처를 넘어 세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타인과 함께 하는 기쁨의 순간을 창출한다. 빛이 전해주는 치유와 사랑의 공간. 거기에 한호의 작품이 빛나고 있다.
한호 작 Eternal Light, 평창비엔날레 설치, 2015이미지 확대보기
한호 작 Eternal Light, 평창비엔날레 설치, 2015

●작가 한호는 누구?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학사, 석사, 박사준비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뉴욕과 베이징에서 현대미술 작업에 몰두했다. 소피아 종이 비엔날레 국제 문화 진흥기금수여(2011), 살롱드 몽후즈 입상(2013)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으며, 파리 시떼 유니버시티 레지던시, 뉴욕 덤보아트 레지던시, 베이징 공화랑 레지던시 등의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또한 프랑스 시제 비엔날레 초대전(2004), 팔레 도쿄 현대미술관 기획전(2005), 소피아 종이 국제 비엔날레(2011),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브라질 트리오 비엔날레 본 전시, 평창비엔날레 초청전 등 국제적인 전시에 참여했다. 회화에서 시작하여 LED를 이용하여 빛이 주는 희망과 치유를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고, 매일경제 TV <아름다운TV갤러리>에 미술평론가로 출연중이다.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