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설치·영상·퍼포먼스를 하나의 콘셉트로 융합
고딕 시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색의 유리창으로 들어온 자연빛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고딕의 빛은 신의 현현(顯現)이자 초월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세계로 가는 관문이었다. 인상주의에 이르러 태양빛 그 자체가 작품의 주제이자 소재가 되었고, 망막에 펼쳐지는 빛의 향연이 캔버스에 다시 펼쳐지게 되었다.
한호의 작품은 ‘빛’을 담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밝고 명랑한 아이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외롭고 때로는 공허하고 슬펐던 유년시절에 그를 위로해주었던 것은 자연의 빛이었다. 서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에게 바다의 빛깔, 강의 반짝임, 어두운 동굴 속에서 보았던 하늘, 달빛과 별빛, 반딧불들의 반짝임은 오랫동안 그에게 마술과 같은 아름다움의 인상을 남겨주었고, 이 빛들이 주는 치유와 희망의 힘은 그의 작업 속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고교 시절 영어 회화(會話)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우연히 잘못 가입하게 된 회화(繪畫)반에서 그림을 배우게 된 한호는 유년의 기억이 자양분이 되어 점차 미술에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의 끼를 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Billie Jean)’ 공연으로 서산의 스타가 되기도 하고 교회 연극의 총연출을 맡는 등 대중 앞에 서고 자신을 표현하길 꺼려하지 않았던 한호는 이때의 경험이 현재의 퍼포먼스 작업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대학 졸업 후 지도교수셨던 장순업 작가의 도제식 가르침으로 회화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한호는 이후 8년 동안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며 2차대전 이후의 추상미술 ‘앵포르멜(Informel)’을 접하며, 예술의 정신성에 대해 깊이 연구하던 한호는 대학 시절부터 배워왔던 서예를 발전시켜 ‘캘리그라피(Caligraphy)’로 논문을 쓰게 된다. 이후 영상을 배우고 뉴욕에서 백남준과 빌 비올라(Bill Viola)의 비디오아트를 접하게 된 한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작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다변성, 다각성, 회화 장르의 공간성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로 그는 빛을 선택하게 된다. 회화의 성격이 짙은 그의 미디어 작업에서는 어린 시절 그를 달래주었던 달빛과 별빛, 바다와 강에 반짝였던 윤슬이 되살아난다. 그의 작품은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업과는 달리 철저히 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기술지향적 미디어 작업을 배제하고 새로운 매체로 회화적 감수성과 서정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한지와 그림, 빛으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은 차가운 기술이 아닌 따뜻한 그림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한호는 그를 치유해주었던 그 빛을 인류를 향한 빛으로 확산시킨다. 그의 작품은 개인적인 모티브에서 점차 사회전반에 대한 이야기, 인류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등 인류 역사의 고통, 치유, 염원 등을 염두에 두게 된다. “진정한 고통은 진정한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고통을 끄집어냄으로써 그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한호의 작품은 인류 보편의 고통과 슬픔의 어둠에서 조용히 빛을 발한다. 그의 작업은 한지 위 회화 작업을 한 후 타공 기법으로 하나하나 구멍을 뚫어 그 뒤에 LED 전구를 배치하여 빛을 앞으로 투과시킨다. 구멍을 뚫어 만든 상처의 자국에는 어느새 따뜻한 빛이 감싸고 우리는 빛이 만들어내는 체험과 운명의 공간 속에서 치유의 깊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한호의 작품은 회화와 설치, 영상, 퍼포먼스까지를 하나의 콘셉트로 아우르는 ‘융합(convergence)’적 작업이다.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라고 했던 현대 무용의 창시자였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의 표현처럼, 한호의 퍼포먼스는 영혼과 정신의 몸짓으로 위안부 할머니의 상처, 남북 분단의 현실, 전쟁고아의 슬픔을 어루만진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함께 미디어아트와 국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퍼포먼스는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제의(祭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영원한 빛-동상이몽’이 위안부 할머니의 상처를 다루었다면, 브라질 트리오 비엔날레 출품작인 ‘Lost Paradise’는 한민족사에 있었던 전쟁의 피해와 절규, 그리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분단 상황 속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으며 전쟁 이전의 한반도의 평화와 이를 복원하기 위한 낙원을 형상화한다. 한호 작가의 작품은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빛의 탐구에서 원폭 문제, 위안부 문제, 세월호 문제 등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이슈를 등장시켜 이를 빛으로 치유하는 작품들로서 점차적으로 인류 보편적인 역사적 문제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빛의 회화적이고 서정적인 탐구와 함께 이러한 인류의 문제를 한국인의 시선에서 다룬 부분이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전시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작가 한호는 누구?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학사, 석사, 박사준비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뉴욕과 베이징에서 현대미술 작업에 몰두했다. 소피아 종이 비엔날레 국제 문화 진흥기금수여(2011), 살롱드 몽후즈 입상(2013)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으며, 파리 시떼 유니버시티 레지던시, 뉴욕 덤보아트 레지던시, 베이징 공화랑 레지던시 등의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또한 프랑스 시제 비엔날레 초대전(2004), 팔레 도쿄 현대미술관 기획전(2005), 소피아 종이 국제 비엔날레(2011),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브라질 트리오 비엔날레 본 전시, 평창비엔날레 초청전 등 국제적인 전시에 참여했다. 회화에서 시작하여 LED를 이용하여 빛이 주는 희망과 치유를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필자 전혜정은 누구?
전혜정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