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살길은 오직 바다
23세에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인 지남호(指南號)의 실습항해사로 참치잡이를 시작한 김재철 회장은 27세의 나이에 선장으로 원양어선을 이끌고 인도양과 남태평양을 누비며 수출전사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변변한 제조업이 없던 우리나라에 수산업은 1960년대 수출액의 10~25%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수출 품목이었다.
김 회장은 "파도에 휩쓸리며 사람이 한 순간에 가 버릴 수도 있다는 한계 상황을 겪고 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사로잡은 화두는 "'바다는 평등하다'와 '사업은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의 두 가지였다"고 덧붙였다.
● 원양어선서 리더십과 경영철학인 '무대 경영론' 몸에 배
작은 것을 세심하게 챙기는 김 회장의 경영습관은 20대 시절 원양어선에서 이미 형성됐다. 거대한 원양어선도 작은 나사못 하나가 잘못돼 엔진이 서버리면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 무역협회장 시절 날렸던 리더십도 사실은 원양어선 시절 몸에 배인 것이라고. "20대 선장이 형님이나 아버지뻘 선원을 능숙하게 부리려면 리더십이 제일 중요한 덕목"이라고 김 회장은 술회했다.
20대와 30대 초반 참치 선단을 이끌며 종횡무진 바다를 누비던 '캡틴 킴'(Captain Kim)은 34세 되던 해인 1969년 땅으로 올라와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바다의 전사가 마침내 육지를 딛고 향후 47년간 수산식품, 금융, 식품, 건설, 포장재 등 4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3조8678억여원(2015년 9월말 기준)의 매출을 올리는 종합그룹을 키워내는 첫 그물을 던진 극적인 순간이었다.
김 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기업 인수로 2008년 10월에 있었던 미국 최대 참치 브랜드 '스타키스트'(STARKIST) 인수를 꼽았다. 원양어선을 통해 잡아들인 참치를 납품하던 일개 참치납품업체에서 세계 최대 참치캔 제조회사인 스타키스트를 인수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 당시 스타키스트는 미국 시장 점유율 40%였고, 동원은 델몬트로부터 4500억원에 인수해 현재 동원그룹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간판기업으로 키워냈다.
김 회장이 지난 47년 간 걸어 온 길은 창업기(1969~1979), 성장기(1980~1989, 성숙기(1990~1999), 글로벌 도약기(2000~현재)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2001년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설립했으며, 2008년 스타키스트 인수와 함께 2011년 아프리카 최대 수산캔 업체인 세네갈의 SNCDS 인수 등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또한 국내 매출의 70%가 동원 F&B와 동원홈푸드 등 식품산업에 몰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2015년 국내 최대 포장업체인 '테크팩솔루션'을 인수해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동원그룹은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지주기업으로 해서 자회사 6개 기업, 손자회사 21개, 증손자회사 10개 등 40여개 기업을 거느린 종합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9월 말 기준 자산총계 3조8678억여원을 기록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한 마디로 압축해 '무대 경영론'을 꼽았다. "회사를 무대에 비유해 경영자는 일종의 연출자로서 뛰어난 연출과 무대를 제공하고, 임직원과 구성원들은 일종의 배우 역할로 무대에서 성실한 연기를 통해 고객인 관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어 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이같은 행보는 최근 출간된 「파도를 헤쳐온 삶과 사업 이야기」 평전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김재철 회장을 두고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미래의 비전을 그물질하는 생명현장인 바다에서 시를 썼고 그 배위에서 어떤 연기자도 흉내 내지 못하는 드라마의 주연이 되었다"는 헌사를 보냈다.
김성은 기자 jad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