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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칼럼] 4차 산업시대에서 디자인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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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칼럼] 4차 산업시대에서 디자인 경쟁력

이혜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이혜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최근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조·서비스업 할 것 없이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수출은 1970년 이후 가장 오랜 기간인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해 침체되어 간다. 포항·울산·거제를 잇는 동남권 공업 벨트에서는 지난 3년간 이미 6000여 명이 해고되었다. 문제는 지금의 위기는 전조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근원적 위기는 올해 스위스 다보스포럼(WEF)에서 대주제로 설정된 ‘4차 산업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WEF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서 향후 5년간 70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이 기간에 새로 생겨나는 직업은 200만개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사 UBS가 내놓은 ‘4차 산업혁명’ 백서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노동시장 유연성, 기술 수준, 교육 시스템, 사회간접자본, 법적·제도적 환경을 수치화해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국가 순위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25위에 불과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2002년 유비쿼터스 과학기술 정책을 선언했을 때부터 예측된 바였다. “디지털, 바이오 등의 융합과 IoT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온·오프 네트워크로 모든 것이 연결, 지능적인 사회로 진화된다”는 디지털 스마트 혁명을 예상하고 준비했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의 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승자가 나타났듯이 이 시기에는 21세기에는 한국이 디지털 혁명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떠한가. 한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4대강 사업에 수십조를 쏟아 부으면서 과학기술 발전을 등한시했다. 미래를 위한 창의적 교육정책은 미미했다. 그 결과 수출 주력 품목들이 글로벌 공급과잉과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 내부 역량을 강화한 중국 기업들이 한국기업들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국 대가업의 주된 경쟁 영역이었던 철강·화학·기계·선박·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장비산업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상당한 실력을 키웠다.

이제 과학으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우리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 같이 들린다. 2015년 중국의 국제과학논문의 경우 웹오프 사이언스에 등재된 전체 논문의 18.7%로 늘어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과학 대국이 되었다. 반면 한국은 세계 비중 2.7%로 이란에 이어 14위에 그친다. 이미 달 탐사선을 보낸 중국은 독자적인 항공기 제조기술, 최고의 고속철도의 기술 강국이 되었다.

인터넷 모바일 분야에서 중국의 창업 붐 또한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기세다. 정부는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이라는 슬로건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젊은이들은 그에 호응한다. 전국에 짝퉁제조업체들이 창업 아이디어맨들과 연합해 무엇이든지 뚝딱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에서 중국기업에서의 수평적 관계성은 우리나라의 수직적 관계와 대비해 유연함과 협력, 네트워킹 경제를 이루고 있다.

WEF는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의 일자리가 더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4차 산업혁명은 잠재적 위협이기도 하지만 미리 예측하고 준비했다면 무궁무진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모든 삶의 사이사이에 융합기술이 들어간다면 안전이나 건강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4차 산업혁명이 경제적 잉여(economic surplus)를 창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고 있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에 직면해 있다. 이 변화의 규모와 범위, 복잡성 등은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고 역설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의 과학역량의 폭발적 성장으로 위협을 느낀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여기서 세계 3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자랑하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우리가 참조할만하다. 국가 창립 이래 ‘아시아 제 1세계’라는 기치로 서구와의 교류협력에 치중해왔지만 최근 들어 중국과의 과학연구 및 산업화 협력을 위한 채널 구축에 적극적이다. 20세기 말 미래학자들이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꿈의 시대, 정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바 같이 싱가포르는 환상적 도시를 창조해 나갔다. 마리아베이에 21세기형의 꿈의 랜드마크를 구축했고 이처럼 아름다운 도시미학을 창출해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대학교육(SUTD)을 통해 기술 디자인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디자인의 본질은 우리 사회경제 속의 잠재적 니즈를 발굴하고 소비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인간적·감성적 언어로 해석하고 문화스토리를 담은 솔루션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소비자들은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 소비생활을 즐긴다. 세계시장점유율 1위 상품수가 가장 많고 또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이에 부응하여 디자인 또한 끊임없이 창조되고 진화되어야 한다. 디자인은 차가운 과학기술 지식과의 결합을 통해 꿈의 제품을 창출하면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면서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는 동적 존재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소비재와 서비스 분야에 대중국 우위를 지키기 위해 디자인·패션뷰티·엔터테인먼트를 포괄하는 소프트혁신이 유일한 대응책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시의적절하게 창조경제를 정책적 기치로 내세웠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창조경제 자체를 추상적이라고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창의적 교육이 부재한 우리 교육현실의 결과라 안타깝다. 우리 부모들은 오직 대학입시만을 위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암기위주의 과외에 투자한다. 대학은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하에 예술분야를 없애고 많은 논문을 생산하는 분야만을 확장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창조경제란 구호만 요란할 뿐이다.

디지털 신인류의 꿈을 구현시키는 감성적 디자인 혁신이야말로 우리의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가야할 최선의 방안이 아닐까. 위기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시 우리의 역동성을 결집해 ‘다이나믹 디자인 코리아’를 드높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혜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지속가능과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