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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수소폭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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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수소폭탄 만들기

[글로벌이코노믹 이재구 기자] 리처드 로즈 지음, 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159쪽, 5만원

이제 한반도는 새로운 핵무기 경쟁의 중심지가 된 듯 하다. 북한은 지난 2006년 10월 처음으로 원자폭탄 실험을 한 이후 조금씩 기술력을 키워왔고 결국 올해 1월 6일 4차 핵 실험을 통해 ‘수소 폭탄만들기’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주변국들의 핵군비 경쟁을 암암리에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한미 전문가들은 북한의 발표를 부정하고 있다. 이를 인정할 경우 핵개발 금지를 요구하는 대신 보유한 핵 축소를 요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인한다고 해서 북한이 원자폭탄에 이어 수소폭탄을 개발했거나 기술을 확보했다는 현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 책의 저자 저자 리처드 로즈(Richard Rhodes)는 ‘수소폭탄 만들기-20세기를 지배한 암흑의 태양’에서 60여년 전 미국과 소련이 수소폭탄을 만든 과정과 그 배경들을 기밀해제된 1000건의 미정부 보고서를 바탕으로 보여준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우리가 처한 한반도의 핵현실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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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초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2발의 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은 제 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초강대국 미-소 간 냉전이라는 새로운 거대 전쟁의 시작이었다.

두 초강대국은 공동의 적인 독일의 나치, 이태리, 일본을 꺾었다. 이제 이들은 전쟁목표를 전세계 정치, 군사, 외교 지형에서의 우위 확보 전략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원자폭탄에 이은 수소폭탄이 있었다.
소련 스파이들은 원자폭탄이 개발되는 연구과정을 기록해 소련에 넘겨주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원폭이 일본에 투하되기 전에 이미 미국 원폭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보다는 늦었지만 소련역시 원폭에 이어 수폭을 만든다.

로즈는 과학자들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공식적인 수소폭탄 개발 천명을 하기도 전에 과학자들이 수소폭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미국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만들어가던 과정에서 수소폭탄의 원리까지 밝혀냈지만 이들은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수소폭탄을 만들겠다고 천명하기 이전부터 이미 수폭을 만들고 있었다.
미국이 1952년 11월 실시한 세계최초의 수폭 실험. /사진=위키피디아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 1952년 11월 실시한 세계최초의 수폭 실험. /사진=위키피디아

“아메리카 합중국 대통령은 1949년 10월 6일에야 수소폭탄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이다.” (654쪽)

미국의 원자폭탄 만들기를 지휘했던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을 반대한 이유에 대한 증언도 흥미롭다.

원폭개발참여자 앨버레즈 박사에 따르면 “그는 미국이 수소폭탄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오펜하이머의 주된 논거는 이랬다. 우리가 수소폭탄을 만들면 러시아도 수소폭탄을 만든다. 우리가 안만들면 러시아도 안 만든다”고 말했다.(684쪽)

저자는 핵으로 핵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1949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러시아가 핵무기에 점점 더 근접했음을 느꼈다....슈퍼(수소폭탄)를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끓었다....루이스 스트로스가 슈퍼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음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슈퍼를 개발하면 무시무시한 상황이 연출되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우리한테는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던 게 아니다. ‘슈퍼가 제작되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슈퍼를 만들 수 있다면 미국이 먼저 가져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어니스트 로런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군부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런 생각이 1949년 봄에 분명하게 감지되었다. 수면아래에서 웅성거리는 그런 소리 말이다.....특별한 매개가 있었던 건 아니다...다시말해 강력한 기류가 존재했다.”(617쪽)

저자는 또한 미국이 (2차대전) 승리와함께 유럽에서 실질적 세력을 제거했음에도 계속해서 핵무장을 강화했었다는 사실을 적시하기도 한다.

1,159쪽의 방대한 분량인 수소폭탄만들기는 첫머리부터 마치 스파이소설을 읽는 듯한 전개로 독자들을 빨아 들인다.

이 논픽션 속에 등장하는 미국, 영국, 소련을 넘나드는 원폭, 수폭 정보를 빼내려는 스파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존 르 카레가 쓴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설이다. )

당시 미국과 소련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원리를 바탕으로 한 엄청난 에너지가 축적된 무기를 만들겠다는 욕심을 실현시켰다. 하지만 수소폭탄은 결국 단 한번도 쓰이지 못했고 결국 냉전의 종식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한국전쟁 휴전 1년 후인 1954년 이승만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사용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가 다음과 같이 쏘아 붙인 걸로 돼 있다.

“미국은 단 한번도 한국을 하찮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가 일부러라도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도 한마디 해 주지 않을 수 없군요. 전쟁이 나면 그 결과는 참혹할 거요. 핵전쟁이 일어나면 문명이 파괴됩니다. 도시가 파괴되고 수백만명이 죽어요. 그런 무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겁니다. 크렘린과 워싱턴이 전쟁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그 결과가 너무나 끔찍해서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이에요. ... (997쪽)

수소폭탄 개발 경쟁 결과 러시아는 마침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 리틀보이의 3배가 넘는 TNT 50메가톤급 수소폭탄 차르 붐바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후 이 무시무시한 무기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포의 균형 속에서 핵기술은 오히려 확산됐다.

북한의 수폭 개발 주장을 계기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논리와 주장까지 나타나기 시작한 이즈음이다.

저자 리처드 로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핵무기는 국가 주권을 제한해 국제사회의 폭력을 줄이는 바로 그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그런 주권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보호했다. 정치균형을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핵기술이 확산됐다....북한은 자신을 홀대했다가는 위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1004쪽)

과연 저자의 기대대로 핵이 언제까지나 상호균형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까?

저자가 열심히 취재해 소개하는 미소 강대국의 수소폭탄 기술 개발 전쟁, 미국의 핵기술을 빼내려는 소련 스파이들의 암약상과 그것이 드러나게 된 계기, 당시 미국과 소련 지도자들의 핵에 대한 생각 등이 고구마줄기처럼 계속 이어져 나온다. 동시에 수소 폭탄을 둘러산 냉전의 역사, 그리고 핵 공포가 지배하는 한반도의 장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방향을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책이다.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이재구 기자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