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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왜 논란인가] '김영란법' 공감하지만 경제적 파장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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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왜 논란인가] '김영란법' 공감하지만 경제적 파장 줄여야

내일 헌재서 위헌여부 선고…시행 땐 농축산업 등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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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이동화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오는 28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결정날 경우 오는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김영란법의 취지는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데 있다. 세계 각국도 투명사회를 지향해가는 만큼 그 방향성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이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부터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을 받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 등’에 민간인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은 물론 비정규직을 포함시키면서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고위공직자인 국회의원, 정당인 등이 부정청탁 금지의 예외에 들어가 규제를 피해간 것도 이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국민권익위원회가 펴낸 김영란법 해설서를 참고해도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일률적이고 통상적으로 제공되는 금품’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지속적으로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적한 것처럼 김영란법은 필요한 법이지만 많은 사람이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것도 문제다.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농축산업이 직접 피해를 입는 등 내수가 위축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김영란법의 경제적 손실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연간 11조6000억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사회의 뇌물관행이 연간 11조원에 달한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지만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2016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에서 지적했듯이 한우농가와 같은 특정 업종에 영향이 집중되는 것은 법을 시행하면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농축산업계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추석과 설날에 몰리는 명절 선물 특수가 크게 줄어들어 연간 한우 4100억원, 사과 1296억원, 배 287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영란법의 시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율곡로4길에 있는 유명 한정식집 ‘유정(有情)’이 최근 60년 만에 문을 닫았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1인당 점심 3만5000원, 저녁 5만5000원짜리인 현재 매뉴로는 영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법이 시행될 경우 경제적 피해와 관행의 개선 등 부작용이 나타나겠지만 우리 사회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런 만큼 사회 각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 김영란법은 정부의 민심 진정용 카드?

정무위에 상정된 후 방치돼 왔던 김영란법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후였다. 사고 발생 한달여가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화두로 내세운 것.

박 대통령은 그 일환으로 국회에서 김영란법을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당부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언급은 6월2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도 이어졌고, 6월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급기야 그 적용 대상을 정치인과 고위층으로 한정해 조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국회에 촉구하기에 이르게 된다.

당시 “법 적용 범위는 물론 부정청탁에 대한 모호한 기준은 자칫 무고한 범법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충분한 논의 없이 김영란법을 통과시켰을 경우 생길 부작용은 물론 현실성이 없는 법안이라는 의견도 분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고위층부터 적용 대상으로 해 모범을 보이는 게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발언에 힘입어 김영란법은 급기야 1월 임시국회 종료 전날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 마지막 날인 12일 정무위 전체회의도 통과했다.
청와대는 물론 여야 지도부 역시 김영란법의 조속한 처리를 공언했다. 세월호 참사로 술렁이던 민심을 진정시킬 국면 전환용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 공직자만 쏙 빠진 김영란법…본안은 어디로?

당시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으로 공직자나 공직자의 가족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을 때 대가성이나 직무연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김영란법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이해충돌 방지’, 즉 공직자가 직무를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한 부분을 통째로 뺀 ‘반쪽짜리’ 법안을 상정했다.

뿐만 아니라 부정청탁의 주요 루트인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등에는 법망을 피할 우회로를 열어줬다. 당초 정부안은 예외 대상을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로만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무위는 여기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까지 포함시켰다. 범위가 모호한 이 ‘제3자의 고충 민원’이 예외 조항에 포함되며 법안의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무위는 왜 공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대학병원 종사자 등을 적용 대상에 슬쩍 끼워 넣었을까.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법조계나 시민단체, 금융계 등 공공성이 강한 다른 직업군이 제외된 상황에서 언론사 등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3월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이상민 의원은 “당초 취지대로 국회의원, 판·검사, 시·도지사, 장관, 청와대 수석, 지방공무원 등 공직자만 대상으로 해도 극약처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공직사회의 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취지인데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포함하게 되면 관리가 안된다”고 말해왔다.

그는 “어버이연합 등 공적 책임이 있는 시민단체는 빠지고 민간이 포함되는 등 형평성에 문제가 많다”며 “개정안에는 원래 취지인 고위 공직자의 비리에만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영란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역시 “반부패법은 보통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김영란법은 부패를 막아서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밝힌바 있다.

◇ 이번 주 김영란법 운명 결정…헌재 결정에 촉각

헌법재판소가 28일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이 제기한 부정청탁금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의 심리 결과를 선고하기로 결정하면서 김영란법의 운명에 또 한 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재가 위헌 여부를 가릴 쟁점 사항은 ▲부정청탁의 개념과 유형이 모호한지 ▲배우자 신고의무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3·5·10만원 규정이 죄형 법정주의에 위배되는지 ▲언론인·사립교원을 적용 대상에 넣은 조항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 등 4가지다.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면 김영란법은 예정대로 9월28일부터 시행되지만 헌법소원 청구 대상 조항 중 하나라도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면 국회에서 후속 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해당 조항의 시행이 미뤄질 수 있다.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후 정치권이 대대적인 법 개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농업·어업·축산업계와 공산품 업계 등 내수시장 위축에 대한 부작용 우려다. 규제 수준이 지나치게 강해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정치권 역시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어찌됐든 김영란법의 취지는 공직자의 부정과 부패를 근절해 보자는 것이다. 그 원인을 제공하는 일반 국민들의 공직자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근절하고, 금품이 동반되지 않는 부정한 청탁 역시 형사처벌하고, 거기에 돈까지 받으면 가중해 형사처벌하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갖는 의미가 ‘공무원 등 공직자의 부정과 부패를 막기 위한 법’이라는 점, 그 전제는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과 ‘공무원 직무의 순수성’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지해야 한다. 공적인 기능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규율 대상으로 삼고 투명한 공무 체계를 확립한다면 이 법이 원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3년여를 끌어 온 김영란법의 목적 아닐까?



노정용 기자 noja@
이동화 기자 d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