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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禾音) 안정규 서예 개인展…평정과 고요의 세계 불러온 70여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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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禾音) 안정규 서예 개인展…평정과 고요의 세계 불러온 70여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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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노정용 기자] 11월 마지막 주 23일부터 29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1전시관에서 안정규 서예전이 열리고 있다. 시간을 삭힌 그녀의 글에는 빠르게 가지 않은 바람의 사연과 느긋하게 먹을 갈며 출사를 기다린 깨달음의 수행 과정이 담긴다. 한지와의 대화에서 통관과 소통을 배운 그녀는 자신의 글들로써 진한 묵향을 잠재우고, 들뜸을 가라앉힌 평정과 고요의 세계를 불러온다.

가을이 깊어지면 긴 꼬리를 남기고 흩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깊이감을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뒷모습을 그릴 때, 달의 앞모습으로 다가오는 여인, 화음(禾音) 안정규는 밤마다 달바퀴가 둥근(不識氷輪夜夜圓) 이치를 들고 데뷔전을 갖는다. 인생의 나이테를 한 바퀴 돌아서야 수레바퀴 아래 자신이 있었음을, 그것도 소박한 빛깔과 겸손함으로 자신의 그간 작업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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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禾音)은 곧은 줄기에서 나온 이삭의 모습을 견지해온 서예가이다. 조선조 여인像으로 그녀가 선보이는 칠십여 점의 글은 스승 초정 권창륜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화음이 조심스럽게 자신을 수면으로 드러내는 순종의 미덕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가짐과 좋아하는 글귀로 소재를 삼은 작품들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삶의 지침을 공유하고자 한다.

서예가의 삶, 그것은 올곧은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그녀는 어지러운 세상의 균형추 역할과 중심을 잡아나가는 노력은 신사임당의 모습을 닮아있다. 아홉 해의 어린 시절을 동문수학하면서 지켜본 정규, 서예가로서 화음(禾音)은 앞서는 부러워하지 않았고, 느린 걸음으로 글자마다 기교가 아닌 정신을 집어넣으려고 애쓰면서 아날로그 시대의 도덕적 전범(典範)을 수용해왔다.

화음(禾音)은 자신의 최초 서예 개인展에 주제가 담긴 제목 자체도 담아내지 않았다. 겸손의 극치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바보群에 속한다. 숨 가쁘게 눈치 보며 줄타기를 하지 않았고, 타인의 빛에 자신을 무임승차시키지도 않았다. 모양, 크기, 체를 달리한 그녀의 서예 변주 속에 간결한 핵(核)으로 자신의 자세를 담았고, 동참의 서(敍)로 의지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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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고향과 그 고장 사람들의 정서를 닮은 글들을 진설(陳設)하였다. 작은 산들이 에워 싼 마을, 햇살 좋은 빛을 받아 부드러운 흙에서 커온 곡식을 살찌게 하는 곳, 술이라도 빚으면 금세 시가 나올법한 느낌이다. 그녀의 예작(藝作)에는 공간 구성과 필묵법에서 스승의 애정과 영향이 스며들어 있고, 빠른 바람이 지나가도록 배려한 흔적이 숨어 있다.

흔히 접해온 글귀에는 ‘체’의 구성으로 식상함을 우회했고, 시문에는 문향이 우려 나오도록 노력한 정성이 엿보인다. 같은 듯, 다른 그녀의 손놀림으로 쓴 글들은 손열음과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와 같은 감동과 열정이 숨어있다. 창작 정신과 기교를 보여주는 종이 선택, 전지의 가감, 가로 및 세로의 배치, 다양한 체, 글자 크기의 구성은 흥미롭다.

그녀는 수묵의 그윽함 속에 색지와 물감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하고, 오래된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유도하기도 한다. 자신의 한시 창작 능력을 감추고, 화음(禾音)이 고전과 좋아하는 글에서 가져온 서예 글에다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살아가면서 위로가 되는 글’, ‘행복한 동행’, ‘고전에서 찾은 위안’ 정도로 표현될 것 같다.
사계(四季)에 걸린 변화와 미묘한 자연현상에 걸친 감정을 담은 그녀의 글에는 봄밤 이슬비에 꽃의 눈물, 밝은 달 아래 쏟아지는 고독, 소복이 쌓인 들판의 추억이 담겨져 있다. 그녀에게 ‘시간의 나이’는 자신에게 자양분을 주고 성숙시켜준 바람이었다. 그녀가 이번 전시회를 치르고 너른 서예의 들판에서 창작정신을 마음껏 구사하여 빛나는 광휘(光輝)가 되길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노정용 기자 n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