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리스에는 테베라고 하는 도시 국가가 있었다. 테베로 가는 길에는 험준한 바위산이 버티고 있었고 그 길목을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여자의 얼굴,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뱀의 꼬리를 가진 괴물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져 틀린 답을 한 사람들은 가차 없이 잡아먹었다. 이 때문에 테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지도자들도 그 수수께끼를 풀어 스핑크스를 제거하려고 고심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답을 알면 질문을 한 괴물이 죽지만, 답을 모르면 괴물에 의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 어쩌면 2500년 전의 소포클레스는 스핑크스의 입을 빌어, ‘인간이여, 너는 누구이고 운명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소포클레스는 인간들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삶의 근원임을 강조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인간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이성적 활동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을 죽음으로 관철시켰다. 그리고 2,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인간의 이성적 진보는 모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텍스트의 비밀을 풀기 위한 긴 여정에 불과했다. 오늘 우리가 철학하는 이유는 ‘네가 누구냐’고 묻는 스핑크스의 질문 앞에 ‘나는 ○○다’라고 답하기 위해서이다. 이 문답은 어쩌면 우리 삶의 생사를 건 필생의 게임이자 숙제가 될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 혹은 ‘우리는 왜 철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로 대신할까 한다. 이 수수께끼는 이집트 신화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 ‘갓 오브 이집트 (Gods of Egypt, 2016)’에 나오는 장면에 등장한다.
I never was and always to be
No one ever saw me nor ever will
And yet I am the confidence of all to live and breathe.
What am I?
나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지만 늘 존재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은 나의 존재를 확신한다.
나는 무엇인가?
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일까. 영화를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답은 바로 ‘내일(Tomorrow)’이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대학에 가고 공부를 하고 철학을 하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 전부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매일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철학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내 자신은 변화시킬 수는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깊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정면으로 마주한 끝에 ‘나는 이렇게 살겠다’고 결심한 때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단 한번뿐인 이 거칠고 소중한 삶을 걸고 당신이 진정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신현정 중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