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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 전략' 마윈 "1등 잡으면 '왕'이 되고, 1등 못 잡아도 '2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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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 전략' 마윈 "1등 잡으면 '왕'이 되고, 1등 못 잡아도 '2등'이다"

[세계로 도약하는 중국기업(2)]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중)
가치경영을 통해 탄생한 '중소기업의 구세주'

지난 3월 22일 나집 라작 총리와 마윈 알리바바 회장. 알리바바의 동남아 물류 허브 구축 계획 공개 (출처 : 중국중앙방송 CCTV)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3월 22일 나집 라작 총리와 마윈 알리바바 회장. 알리바바의 동남아 물류 허브 구축 계획 공개 (출처 : 중국중앙방송 CCTV)
[글로벌이코노믹 김길수 기자]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마윈(马云) 알리바바 회장을 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 정부 경제고문으로 임명했다. 마윈 회장은 답례로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 건설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으며 나집 총리는 'Epayment, Ecity, Egovernment, Ecommence' 등 4개의 ‘E’를 개발해 말레이시아에 현금이 필요 없는 사회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동시에 알리관광(阿里旅行)과 말레이시아 국가관광국이 베이징에서 전략적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 22일 나집 라작 총리와 마 회장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디지털 자유무역지대' 출범식에서 알리바바의 동남아 물류 허브 구축 계획을 공개했다. 말레이시아를 디지털경제 허브로 탈바꿈하는데 마 회장의 영향력을 높이 산 결과였다.
마윈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도와 그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자료=SCMP이미지 확대보기
마윈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도와 그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자료=SCMP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0년 1월 창업 초기의 알리바바 '마윈'과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 소프트뱅크(SoftBank Corporation)의 회장 손정의(일본 명, 손 마사요시)의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다. 그는 손 회장 앞에서 브리핑을 시작했고, 6분 정도 브리핑을 듣고 있던 손 회장은 돌연 브리핑을 중지시켰다. 당황스러워하는 마윈에게 손 회장은 "이미 당신에게 2000만달러(약 205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후 17년이 지난 지금 알리바바는 Alibaba.com, Taobao.com, Alipay, Yahoo!중국, 알리바바 클라우드 컴퓨팅 등 5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중국 E-커머스 시장 절반 이상을 장악했으며, 미국의 아마존과 이베이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익을 거두는 거대 IT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알리바바의 성장 배경에 마윈 회장의 독특한 '가치경영'이 숨어있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중소기업들이 가장 흔하게 겪는 애로점이 세 가지 있다. 무역장벽, 시장 형성, 자금 압력이다. 알리바바는 이 세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그들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알리바바와 협력하게 되면 240개 국가의 시장과 기업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자금 압력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마윈 회장 또한 창업 초기 알리바바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을 바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창업 초기의 중소기업인을 위한 '무료 수수료 정책'과 '무료 정보 등록'을 원칙으로 전자결제∙상거래 모델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무료로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마 회장을 주변 동료들과 전문가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 회장의 도움을 통해 알리바바의 서비스를 이용한 중국의 우수한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참여하는데 성공했고, 중소기업이 성장하면서 알리바바의 수익도 자연히 늘어났다. 동시에 마 회장은 '중소기업의 구세주'라는 별칭도 얻었다.

이처럼 마 회장의 가치경영에는 다른 기업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독특한 철학이 담겨있다. 일반적인 기업들이 주변의 경쟁상대를 누르고 경영 하위 그룹들을 지배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반면, 마 회장은 하위 그룹을 육성시켜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공룡기업도 주변의 하청 기업이 없다면 탄생하지 못하고, 탄탄한 경영의 배경에는 하위 기업들의 활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최초 시장과 기업정보를 받아가던 중소기업들은 이제 알리바바의 첨병이 되어 전 세계의 시장 동향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 오픈 마켓 '타오바오'로 이베이이취에 정면 도전을 선포한 '알리바바'
온라인 오픈 마켓 '타오바오'로 이베이이취에 정면 도전을 선포한 '알리바바'

마윈 "1등 잡으면 '왕'이 되고, 1등을 못 잡아도 '2등'이다"

마 회장은 1992년 번역 전문회사를 차려 근근이 사업의 명목을 유지하면서 1995년 중국 최초의 상업용 웹인 '차이나옐로페이지'를 만들었다. 이후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의 공식 사이트 개설 및 정부와 산하 무역업체 간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맡으면서 제조업체와 무역업체들 간의 전자상거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서서히 사업 방향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9년, 4년간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 항저우에서 10명의 청년들과 함께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기업들의 인터넷 거래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어 기업들이 원가를 절감하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알리바바가 수수료를 통해 사업을 유지하는 형태였다.

이렇게 시작된 알리바바의 B2B 전자상거래 서비스는 기록적인 성장을 보여주었고, 마 회장은 B2B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C2C 시장' 진출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중국 C2C 시장은 미국의 온라인 경매업체인 '이베이(ebay)'의 중국 지사 '이베이이취(ebay易趣)'가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었다. 블루오션이나 마찬가지였던 B2B 시장과 달리 넘어서야 할 거대한 벽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알리바바는 오로지 이베이을 공략하는 데만 총력을 집중했다. “1등을 잡으면 ‘왕’이되고, 1등을 못 잡아도 ‘2등’은 할 수 있다”는 마 회장의 ‘벤치마킹 전략’이었다. 2003년 5월 오랜 고심 끝에 마 회장은 온라인 오픈 마켓인 ‘타오바오’를 만들어 이베이이취에 정면 도전을 선포했다. 이때부터 알리바바는 오직 이베이만을 연구하고 이베이를 이기기 위한 전략에 매진했으며 이베이를 중국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모든 이익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10년. 길고 지루한 도전 끝에 결국 타오바오는 이베이이취를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과 중국 내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베이의 참패였다. 이후 이베이이취의 고객들은 모두 타오바오의 고객이 되었으며 타오바오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 80%를 점유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알리바바는 세계 무대에 진출하기에 이르렀으며 다양한 사업으로 진출하며 경쟁력을 키워 외국 IT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

김길수 기자 g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