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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건강을 위한 생식과 화식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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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건강을 위한 생식과 화식의 조화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몇 십 년 전만해도 많은 서양인들은 생선회에 대해 “비린내가 나는 생선을 어떻게 날로 먹느냐?”거나 “생선을 날로 먹는 것을 보기만 해도 역겹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하여 일식집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식당의 입구는 앉을 자리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 자리를 잡은 다음 음식이 나올 때까지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예전에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쳐다보지도 않던 일본 된장국인 ‘미소 수프’를 마시면서 생선회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들어 날로 먹는 음식이 몸에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양에서도 생선회나 초밥과 같은 일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조리하지 않은 생선을 먹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던 서양인들의 식생활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신선한 녹색채소와 과일이 보약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녹색채소와 과일에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녹색채소나 과일로 만든 주스는 엽록소가 풍부하다. 식물성 혈액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 몸에 좋은 엽록소는 조혈작용으로 혈액을 깨끗하게 해준다. 녹색채소나 과일을 먹기 싫어하는 분들은 생주스를 만들어 하루에 한 차례 이상 마시면 좋다. 녹색채소는 통째로 믹서에 그냥 갈아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우므로 녹즙기나 주스기를 이용해 즙을 내 마신다. 주스는 시간이 지나면 비타민 C 같은 영양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파괴되므로 만든 즉시 마시는 것이 좋다. 토마토, 딸기, 바나나, 사과, 복숭아, 망고, 수박 등은 주스를 만들 필요도 없이 그냥 생으로 먹거나 통째로 믹서로 갈아 마시면 된다. 여기에 요구르트나 우유를 섞어도 좋다.
음식을 가열하면 식품 속에 들어 있는 엽록소, 비타민, 무기질, 파이토케미컬 등이 파괴된다. 따라서 가열된 음식만 먹게 되면 우리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만성질환이 생기기 쉽다. 특히 비타민 C는 음식을 날로 먹어야만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다. 개, 고양이, 소, 돼지 등 대부분의 동물들은 몸 안에서 비타민 C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은 비타민 C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음식으로부터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비타민 C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가열하면 쉽게 파괴된다. 만일 몇 달 동안 모든 음식을 가열해서 먹으면 비타민 C의 부족으로 잇몸에서 피가 나고 이가 부스러지며 우울증에 걸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쉽게 피로를 느끼며 근육이 무기력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음식을 가열하면 소화효소가 파괴되고 굳어진다. 음식이 굳어지면 소화효소의 침투가 어려워지면 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굳은 음식은 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 위암이나 대장암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또한 음식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벤조피렌 같은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 대부분의 채소는 조리하지 않고 먹어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으므로 적당히 썰어 집에서 만든 천연 소스를 뿌리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생식을 할 때는 안전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도록 한다. 현미, 보리, 밀, 메밀, 노란 콩, 검은 콩, 녹두, 무 씨앗 등을 발아시키면 부드러워서 먹기 쉽고, 발아하는 동안에 각종 소화효소가 생성돼 소화를 돕는다. 또한 곡물을 발아시키면 감마오리자놀이나 루틴 같은 생리활성 물질이 증가한다. 따라서 생식을 할 때는 살아 있는 효소가 들어 있는 발아식품을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하지만 생식이 능사는 아니다. 식품의 특징에 따라 어떤 식품은 조리 과정을 거쳐야만 소화가 잘 된다. 만일 쌀로 밥을 하지 않고 날로 먹는다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쌀 같은 곡물은 물에 불리고 가열하는 과정에서 전분의 입자가 느슨해져 소화효소가 침투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도 물에 불리고 가열하면 소화율이 높아진다. 또한 가열하는 과정에서 독소가 파괴되고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죽어 위생적이다. 위장이 약한 사람이 거친 채식으로 생식을 할 경우 소화불량에 걸려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녹색채소는 날로 먹으면 좋지만 많이 먹을 수 없고, 금방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으면 양이 줄어 많이 먹을 수 있다. 살짝 데친 채소는 색을 보존하고 비타민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데치는 동안 효소의 작용을 멈추게 하고, 미생물이 죽어 쓴맛을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지나치게 오래 데치면 물컹해지고 색과 향을 버리게 되며 비타민 C 같은 영양소가 빠져 나가므로 짧은 시간 동안 살짝 조리해야 한다. 당근은 조리하지 않은 상태로 먹으면 베타카로틴의 흡수력이 떨어진다. 살짝 데쳐 먹으면 당근은 베타카로틴의 흡수율이 1.6배나 높아진다. 베타카로틴은 기름에 잘 녹는 비타민이므로 당근을 기름에 볶아 먹으면 더 잘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지방을 많이 섭취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식이섬유소가 많은 무청도 살짝 데쳐서 말리면 색도 변하지 않고 부스러지지도 않아 좋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절반 정도는 녹색채소나 과일 등으로 생식을 하고 나머지는 조리하여 화식으로 먹는 것이 좋다. 생식을 시작하더라도 무작정 완전 생식을 하기보다는 그 양을 서서히 늘려나가는 것이 좋다.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