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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론화 거부하는 여혐 공론화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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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론화 거부하는 여혐 공론화 시위

온라인뉴스부 백승재 기자
온라인뉴스부 백승재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백승재 기자] “사진 찍으시면 안돼요. 사진 좀 지울께요. ”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성들이 네댓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지우고 삭제된 항목까지 꼼꼼하게 체크해 사진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우르르 몰려가 대열에 합류했다. 6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공론화 시위 및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많은 이들이 겪은 일이다.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약 130명으로 추산되며 모두 마스크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면서 최악의 날씨였지만 참가자들은 자리를 지키며 시위를 이어갔다. 입간판과 참가자들이 든 피켓에는 “또! 여자라서 살해당했다”,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등 지난 강남역 살인사건 집회 당시 등장했던 문구들이 다시 출현했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공론화하자는 취지의 집회였다.

이번 시위는 여성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열렸다고 주최 측은 말했다. 이날 주최 측은 사진 촬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취재진이 아닌 일반인들의 사진 촬영을 통제하고 사진 삭제를 요구했다. 주최 측은 시위 참석자들에 대한 성희롱이나 폭언, 신상노출 등을 우려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공론화’란 여럿이 의논하는 대상, 또는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다. 언론의 촬영은 허용하면서 일반인들의 촬영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사건을 공론화 하는 주체인 대중의 접근을 막은 셈이다. 현장에서 집회 내용을 보고 들은 이가 다른 이에게 직접 집회 내용을 전하며 집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사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게 되는 것이 공론화다. 언론보도를 통해서만 집회를 접하게 하는 것이 진정 공론화를 위한 조치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위 전 피해자의 유가족과 지인들은 시위로 인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시위 추진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한 누리꾼은 "이번 시위에서 말하고 싶은 건 피해자분의 죽음이 아닌 여성 혐오"라며 "유족 분들 심정도 이해하지만 이번 시위에 개입하실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주최 측이 여성혐오 공론화를 위해 이번 사건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최 측의 행동에서 그들이 무엇을 공론화시키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든다. 살인사건이라는 사건의 본질은 뒤로한 채 ‘여성이 살해당했다’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대중의 일반적 접근을 막고 언론보도만 허용하는 모습이 “내 말이 맞으니 내 말만 들어”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의 행동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아니라 그냥 ‘여성혐오’를 공론화시킬까 우려된다.


백승재 기자 tequiro0713@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