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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미니 누구 기가지니 등 AI기기 사실상 공짜?…개인정보 저당 잡히고 할인 받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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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미니 누구 기가지니 등 AI기기 사실상 공짜?…개인정보 저당 잡히고 할인 받는 셈

염가 AI 마케팅 속 불편한 진실… 공짜 AI 기기는 없다

카카오가 18일 예약판매를 시작한 인공지능(AI) 스피커 ‘카카오미니’ 3000대가 40여분 만에 매진됐다. 사은품이 기기값보다 가격이 더 높았다.
카카오가 18일 예약판매를 시작한 인공지능(AI) 스피커 ‘카카오미니’ 3000대가 40여분 만에 매진됐다. 사은품이 기기값보다 가격이 더 높았다.
[글로벌이코노믹 신진섭 기자] 카카오가 18일 예약판매를 시작한 인공지능(AI) 스피커 ‘카카오미니’ 3000대가 40여분 만에 매진됐다. 카카오는 카카오미니 가격을 상회하는 사은품을 제공해 사실상 기기를 공짜로 풀었다.

카카오미니 예약 판매 가격은 5만5000원으로 정식 판매가 11만9000원 대비 반에도 못 미친다. 예약 구매자에게는 무제한 듣기가 가능한 ‘멜론 스트리밍 클럽’ 1년 이용권 혜택이 제공된다. 멜론 한 달 정기권 가격은 1만900원으로 일 년으로 환산하면 13만800원의 사은품을 제공한 것. 여기에 카카오미니 전용 피규어 1종을 제공해 사은품이 기기보다 더 가치가 높은 ‘출혈 마케팅’을 벌였다. 사은품 잔치에 고객들은 ‘밑져야 본전’식으로 카카오미니 예약구매에 나섰다.
네이버 AI 스피커 '웨이브'. 네이버 역시 기기값을 상회하는 사은품을 제공하며 고객 유치에 열중했다.이미지 확대보기
네이버 AI 스피커 '웨이브'. 네이버 역시 기기값을 상회하는 사은품을 제공하며 고객 유치에 열중했다.

◇공짜 AI기기는 없다


기업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카카오미니 등 AI기기가 저렴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플랫폼 선점과 데이터베이스 확보다.

AI 기기는 다른 서비스로 뻗어나가는 확장성이 특징이다. 스마트 스피커는 인공지능, 홈 디바이스 제어 기능, 각종 편의 기능 등을 탑재한 스마트 홈 가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기기에서 서비스되는 음악 감상, 일정관리 기능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AI스피커는 향후 금융 거래, 콘텐츠 판매, 쇼핑 등에 연동될 것이 확실시 된다.

지난달 16일 시장 조사·컨설팅 서비스 제공 업체인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 스피커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억 달러를 돌파한 후 2024년 스마트 스피커 세계시장 규모가 130억달러(약 14조8395억)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약 10년 사이에 32.5배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ICT기업들은 자사 AI기기를 염가에 풀고 있다. 한번 플랫폼 UI(유저 인터페이스)에 길들여지면 쉽사리 타사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아이폰 유저가 영원한 아이폰 유저로 남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ICT 기업들은 기기를 할인해주는 대가로 고객의 습관을 구매하고자 한다.

네이버는 지난달 네이버뮤직 무제한 듣기 1년 이용권을 9만9000원에 판매하며 15만원 상당의 웨이브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역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SKT AI 스피커 '누구 미니'. '누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출시됐다.이미지 확대보기
SKT AI 스피커 '누구 미니'. '누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출시됐다.

SK 텔레콤은 지난달 자사 AI스피커 ‘누구(NUGU)’의 축소형인 ‘누구 미니’를 출시했다. ‘누구 미니’는 4만9900원으로 누구 가격 9만9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웬만한 블루투스 스피커 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출시를 기념해 인증 고객 1만 5000명에게 멜론 1개월 이용권을 100% 지급하며, 추첨을 통해 세탁기, 제습기, 로봇청소기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것.

상황은 KT도 마찬가지다. KT는 자사 인공지능 TV ‘기가지니’ 가입자 확대를 위해 ‘기가 인터넷(1G)’과 ‘올레 tv 라이브 15’이상 요금제에 동시 가입하면 단말 임대료가 월 6600원인 ‘기가지니’를 무료로 제공한다. 기가급 무선 공유기 ‘기가 와이파이 홈’ 이용료 월 3300원도 전액 면제받을 수 있다.

◇당신의 얼굴 표정, 목소리, 습관까지 모두 가져가는 AI


플랫폼 선점은 1차 목표일 뿐이다. 궁극적 목표는 고객 데이터베이스 확보다. 이용고객의 수와 서버에 축적되는 데이터 양은 비례한다. AI 기기들은 고객들의 이용 습관, 대화 내용, 생활 패턴 등을 수집해 서버로 전송해 데이터화시킨다. 많은 데이터가 쌓일수록 AI는 머신러닝을 거듭해 점점 정교해지고 똑똑해진다. 알파고가 많은 기보들을 학습하며 바둑고수로 거듭났듯 말이다.

하지만 많은 수의 고객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각 사의 서버로 자동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저당 잡히는 대가로 기기 값을 할인 받는 셈이다.

지난 7일 SK텔레콤은 자사 내비게이션 앱 T맵에 인공지능 ‘누구’를 결합한‘T맵x누구’서비스를 선보였다. SK텔레콤은 T맵에 누구를 탑재해 더 많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7일 SK텔레콤은 자사 내비게이션 앱 T맵에 인공지능 ‘누구’를 결합한‘T맵x누구’서비스를 선보였다. SK텔레콤은 T맵에 누구를 탑재해 더 많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7일 SK텔레콤은 자사 내비게이션 앱 T맵에 인공지능 ‘누구’를 결합한 ‘T맵x누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SK텔레콤은 “T맵의 일 평균 사용자(ADAU, Average Daily Active User)가 240만 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이용자가 2건씩만 음성명령을 이용해도 매일 인공지능이 학습 가능한 데이터가 480만 건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어 “판매대수 20만 여대로 국내 1위인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의 하루 대화 횟수가 약 50만~60만건인 점을 감안하면 머신러닝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10배나 늘어났다”고 자찬(自讚)을 이어갔다. 모든 대화 데이터가 수집된다는 건 데이터 전송을 거부한 소비자가 전무하단 뜻이고 이는 사실상 소비자들에게 데이터 전송 여부 선택권이 전무하다는 것을 자인한 모습이다.

'T맵X누구' 약관. AI와의 대화 내용을 수집하고 있지만 관련 약관 내용은 찾아 보기 어렵다.
'T맵X누구' 약관. AI와의 대화 내용을 수집하고 있지만 관련 약관 내용은 찾아 보기 어렵다.

김포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T맵x누구를 사용할 때 데이터가 수집된다는 내용의 약관이나 알림을 본 적이 없다”며 “고객이 데이터 수집에 대한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는 제도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기존 T맵에서 T맵x누구로 업데이트할 때도 관련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법 제15조 2항은 수집하려는 개인정보의 항목이 변경됐을 때 정보주체에게 알려야 하며 이를 어길시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돼 있다.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KT 기가지니. 광범위한 정보를 KT에 제공해야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KT 기가지니. 광범위한 정보를 KT에 제공해야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KT 기가지니 서비스는 약관상 동의를 받고 있지만 수집하는 데이터베이스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음성명령 언어, 성명, 성별 등은 물론 SNS 아이디와 비밀번호, 선호 버스정류장, 사용자의 얼굴 표정, (집안) 사람 수 등 정보를 모두 KT측에 제공해야만 기가지니 이용이 가능하다. 기가지니는 이번달 이용자수 20만을 돌파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중 얼마만큼의 고객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KT로 전송되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KT는 기가지니 서비스 가입자 수 연내 50만 달성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T 기가지니 이용약관. 사용자의 얼굴 표정, 연령, 성별, 사람 수 등 광범위한 정보는 서비스 이용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이므로 동의를 하지 않으면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하다.
KT 기가지니 이용약관. 사용자의 얼굴 표정, 연령, 성별, 사람 수 등 광범위한 정보는 서비스 이용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이므로 동의를 하지 않으면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 제 3조 1항은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을 명확하게 하여야 하고 그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적법하고 정당하게 수집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동법 4조 2항에선 정보주체(이용자)가 ‘개인정보의 처리에 관한 동의 여부, 동의 범위 등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숭실대 정보보호학전공 김은환 교수는 “AI 초기 단계에서 막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고객에게 동의를 받지 않거나 지나친 정보 수집은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일부 기업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서비스를 AI라는 이름을 붙여 시장에 내놓는 것도 문제다. 노골적으로 AI를 상품화 시키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덧붙였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