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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원전 재해석한 신인안무가의 재기 넘치는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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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원전 재해석한 신인안무가의 재기 넘치는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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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
순수는 무너지고 증오로 스며드는 선홍/ 담쟁이처럼 기어오르던 실핏줄이 빛을 잃었다/ 열정은 사라지고 핏기 없는 나락/ 우리의 장화・홍련은…/ 분주히 피워내고자 했던 희망이란 이름의 질주/ 숨, 기(氣)가 차단된 공간에서/ 죽어야만 사는/ 억장이 무너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 먼 옛날의 잔혹한 핏빛 기다림/ 그녀도 인간이 되고자 했다/ 몸부림의 계모 이야기

2017년 9월 23일(토) 오후 4시, 7시 성수아트홀에서 공연된 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은 부제를 ‘잔혹한 기다림’으로 설정한다. 낯익은 제목의 낯 설은 계모 이야기는 계모가 ‘악의 축’이란 존치관념을 허물고, 지위의 유동과 이질적 가족의 편성에서 자신을 항변하며, 증오를 무기로 삼는 오용과 뒤틀리고 냉정한 계모(강윤정)의 심리에 중심을 둔 한국창작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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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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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의 기본 축은 계모, 남편(노기현), 장화・홍련(오유진・이연지)이고, 계모의 욕망(김나형)과 악귀(김상현·유원태·우경식·김수민·이찬솔)가 심리적 공간을 파고 든다. 안무자 강윤정은 친모와 동등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은 계모에 대한 변호적 해석으로써 상황이 만들어간 여성 심리를 극성 농후한 춤으로 격하지 않게 유연한 움직임으로 표현해낸다.

안무가는 남편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하는 여자, 딸들과의 화친을 바라지만 외면당하는 여자의 상황에 집중하면서 미세한 악귀들의 음산한 움직임, 가공된 느낌을 주지 않는 헝클어진 마음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춤으로 배역의 이미지를 살리는 데 주력한다. 악귀들은 남편의 무관심, 장화・홍련의 질투와 불안, 계모의 고독과 분노를 표현하는 다양한 감정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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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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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화려하지 않지만 부티 나는 검정 원피스), 남편(중후한 느낌의 셔츠와 바지, 트렌치코트), 장화(고전적 진보라 색 원피스), 홍련(흰색의 상의와 스커트, 발랄한 느낌의 청 자켓), 욕망(욕망을 상징하는 빨간색 상의와 치마), 악귀(평범해 보이지만 산 자들과 다른 느낌의 디테일이 있는 상하의)의 인물의 성격화에 사용된 의상과 눈높이에 맞춘 성격 구분도 흥미롭다.

이 작품은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음악은 각 장의 분위기에 맞게 음원 편집이 되어있고, 무대 장치는 극적 틀을 갖는다. 조명은 무대의 채움과 비움을 구분 짓는다. 두 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극적 장면의 화려한 조명, 장화・홍련 사후의 아버지의 독무, 계모와의 이인무, 계모의 독무 등은 관객에게 쉽게 감정 전달이 되게끔 장치된다.
프롤로그: ‘벽에 갇히다’, 활 연주의 거문고 사운드는 청공(靑空, Blue Hole)이다, 아버지, 욕망, 계모가 차례로 의미하고, 걸음마다 욕망이 피고, 벽에 갇혀 길을 잃는다. 1장: ‘흔들리는 행복’, 페르마타가 뿌리는 푸른 들판의 꿈은 한없는 행복을 가져올 듯 하지만 외롭고 쓸쓸한 한 여인의 거센 질투와 매서운 경계를 동반한다. 듀오벗의 ‘다리’가 위로를 전한다.

2장: ‘차가운 손’, <검은 사제들>・ <장화홍련>・<악녀 >의 OST가 깔리고, 악귀들이 등장한다. 퇴마의식 같은 주문에서 시작한 음습한 기운이 번지는 가운데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증폭된다. 무리들의 움직임 속에 여인이 몸을 던진다. 미움과 분노가 일고, 장화홍련이 다가서지만 여인은 매몰차게 등을 돌린다. 메마르고 창백한 그녀의 손길은 온기를 잃은 지 오래이다.

3장: ‘어긋난 사랑’,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타악(Epic Music Mix),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비탈리의 ‘샤콘느 G단조’의 흐느끼는 듯한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장화와 홍련, 여인이 뱀의 또아리 처럼 하나의 형상으로 합쳐졌다 분화되기를 반복한다. 거친 바람 속에 장화와 홍련의 외마디 소리, 어긋난 사랑은 괴로움과 고통을 낳는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흘러나오고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는 이 시대의 담론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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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정 안무의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

에필로그: ‘벽을 허물다.’, 남편의 관심을 갈망했던 여인의 욕망과 이를 외면했던 남자의 고해가 이루어진다. 산 자는 죽은 자의 혼을 달래고 죽은 자는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춤이 추어진다. 장화와 홍련이 소생하며 오래고 잔혹했던 기다림의 끝을 모두의 화합으로 끝을 맺는다. 프롤로그에서 사용된 우민희의 청공(Blue Hole)이 아린 슬픔을 상기시킨다.

강윤정, 고전소설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의 계모를 동시대의 화두로 삼고, 자식을 둔 어미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창의적 춤으로 구성해 내었다. 그녀는 가족에서 파생된 증오심과 비극적 파멸을 주도한 계모를 희생양으로 다룬다. 이 문제를 현대사회로 확장 시키면 서로의 이해와 화해 없이는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곳곳에 포진된 가학성을 만난다는 결론을 내린다.

신인 안무가의 문화원형 재해석은 늘 호기심을 부른다. 계모, 욕망, 악귀에 대한 독창적 묘사는 비극적 서사를 구축하는 원동력이다. 공포, 불안에 대한 우울한 명상은 플롯의 역전으로 말끔하게 해소된다. 강윤정은 대척점에 있던 존재들을 평화의 공간에 불러내어 감각의 착란 같은 화합을 유도하는 모험을 감행하였다. 『장화홍련, 잔혹한 기다림』은 세련된 아이러니를 보여준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