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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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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24) 6도(六道)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강정민(변호사·소설가)
강정민(변호사·소설가)
석가모니는 왜 색(色)이 공(空)하다고 선언했을까요? 또 공즉시색(空卽是色)은 도대체 무슨 의미로 한 말일까요?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해탈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대각(大覺)으로 나아가는 핵심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색은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색즉시공이란 물질세계의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왜 물질세계의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것일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석가모니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석가모니가 받아들인 세계관은 모든 중생은 큰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지 못하는 한 각자의 업(業)에 따라 6도(六道), 즉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를 오가며 끊임없이 생사(生死)의 윤회(輪廻)를 거듭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석가모니 생존 당시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에 근거한 석가모니의 인생관은 끊임없는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벗어나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세상에 거하는 것이라면, 6도에서의 삶은 공(空)한 것이 분명합니다. 삶의 진정한 목표를 모르는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6도를 빙글빙글 도는 삶은 공한 삶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도(人間道)의 물질세계는 공한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존재들이 거하는 영원한 세상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세상입니다.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은 저의 해석이 아닙니다. 인류의 스승들의 공통적인 관점입니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죽으면 각자의 수호신이 그를 죽은 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어떤 곳으로 데려가 심판을 받게 한다. 판결이 나면 안내자를 따라 저승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마땅히 당해야 할 일을 당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안내자가 그를 다시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온다. 반면 뛰어나게 거룩한 생활을 한 사람들은 이 지상의 감옥에서 풀려나 저 세상에 있는 순수한 집으로 가 순수한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예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묘사되어 있는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로 예수의 세계관과 인생관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은 천국 또는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되는 시험장에 불과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구원받은 사람들은 천국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생들은 나그네와 같으며(베드로전서 2장 11절), 이 세상의 삶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합니다(약고보서 4장 14절). 이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합니다(고린도후서 4장 18절).

자 그럼,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깨달음이 어떻게 무아로 연결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색(色)으로부터 시작하여 식(識)에 이르는 일련이 과정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과 연기법(緣起法)을 떠올리면 됩니다. 색(色)이 공하니 연기법에 의하여 수(受)도 공하고 상(想)도 공하고 행(行)도 공하고 식(識)도 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受想行識 亦復如是(수상행식 역부여시)’의 법문입니다. 이렇게 하여 오온이 모두 공함을 깨닫게 됩니다(照見五蘊皆空, 조견오온개공). 오온이 공하니 오온에 근거하여 형성된 아상(我相) 역시 해체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상이 해체되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소멸되고, 삼독(三毒)이 소멸되면 일체의 번뇌(煩惱)가 사라집니다.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면 인생의 모든 고(苦)로부터 해탈하게 됩니다.

석가모니는 이렇게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했고, 무아의 가르침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학자들은 6도(六道)를, 깨닫지 못한 중생(衆生)들의 마음 상태, 의식 상태, 심리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첨단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6도는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는 절대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에 불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하착(放下著), 내려놓음은 깨달음의 결과이지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도가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강정민(변호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