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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지금 '사춘기 앓이' 중 …질풍노도 한가운데 지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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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지금 '사춘기 앓이' 중 …질풍노도 한가운데 지나고 있어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53회)] 적과 동지 가르는 이분법적 사회는 미성숙한 사회

한국 사회는 지금 국가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갈등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6개 단체 관계자들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 사회는 지금 국가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갈등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6개 단체 관계자들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어쩌다 한국인』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리학이 인기가 있는 이유를 "바로 한국 사회는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으며, 그것도 질풍노도의 시기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지금 한국 사회는 마치 사춘기에 도달한 청소년들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의 가장 중요한 발달과제는 새로운 자아정체감(自我正體感)을 확립하는 것이다.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발달의 과정에서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 확립을 강조한 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자아정체감을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거대한 사회질서 속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에 대한 느낌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혼란을 느끼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靑少年期)는 '어린이(少年)'와 '어른(靑年)' 사이에 끼어있는 시기다. 다른 말로 하면, 청소년은 더 이상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두 시기의 특징이 함께 존재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것이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움과 갈등의 기저에 깔린 심리적 원인이다. 어린이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〇〇〇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린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형사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꼭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어린이를 양육할 책임을 지고 있는 부모가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제부터 '〇〇〇의 자녀'가 아니라 '〇〇〇'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안다는 것은 '자아정체감'을 확고히 확립한다는 것이다.

​청소년기 가장 중요한 발달과제
새로운 자아정체감 확립하는 것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관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 동일시하려고 한다. 마음에 맞는 소수의 친구들과 '집단'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언어나 의식(儀式)을 개발하여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동질감을 느끼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매우 당파적이고 편협하고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냉혹하게 배타적이 된다.

서둘러 정체감을 찾으려는 청소년들의 특징을 에릭슨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이상(理想)과 자신의 적(敵)을 고정관념화 시킨다. 일부 청소년들은 집단 정체감과 아울러, 세상의 선악에 대한 명확한 관념을 제시해주는 국가적, 정서적, 또는 종교적인 이념에 동조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자기 확신이 약하다. 자신과 다른 가치나 생각을 인정한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자신의 가치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매우 불안정해지고 불안해진다. 이런 상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들은 자신과 같은 생각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파당(派黨)을 짓고,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만 안정을 얻을 수 있다.

파당을 지으면 서열이 생긴다. 어느 조직에서나 서열은 '힘'의 차이에서 생긴다. '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청소년들에게 일차적인 '힘'은 신체적인 힘이다. 즉,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대장'이 된다. 힘이 약한 청소년들은 당연히 대장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조직원들에 의해 '조직의 쓴 맛'을 톡톡히 보기 때문이다. 조직의 '졸개'들은 자신이 얼마나 대장에게 충성심이 강한지를 계속 확인시킨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왕초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다. 비록 대장의 명령이 비합리적이거나 자신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조직에서 쫓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 찾기 위해 방황
혼란스러움·갈등 바닥에 깔려

청소년들은 아직 자신과 다른 가치와 생각을 인정할 만큼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고를 이분법적으로 한다. 이들에게는 이 세상에 '내 편'과 '남의 편'만 존재한다. 그리고 '내 편'은 무조건 옳고 '남의 편'은 무조건 틀린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의 정도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얼마나 강하게 배척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자신들의 생각은 '절대선(絶對善)'이고 다른 생각은 '절대악(絶對惡)'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보기에 옳거나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배타적으로 몰입하는 '전체주의'에 빠진다.

청소년기의 갈등과 혼란은 자아정체감이 확립되어 가면서 점차로 약화된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가치를 접해도 서로 다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제는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고 '내 편'이 절대적으로 옳고 '남의 편'의 생각이나 가치를 두려움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세상은 '동지'와 '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내 편 중에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만장일치'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라는 깨닫게 된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이 곧 자아정체성 확립의 크기를 나타낸다.

변증법적(辨證法的) 심리학을 주창한 리겔(Klaus Riegel, 1926-2018)에 의하면, 성숙한 성인들은 변증법적으로 사고한다.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인식'이나 '사물'은 정(正)·반(反)·합(合)의 3단계를 거쳐 전개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전개를 변증법이라고 생각하였다. 변증법에서 '정(正)'의 단계란 그 자신 속에 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이며, '반(反)'의 단계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순에 부딪혀 제3의 '합(合)' 단계로 전개해 나간다. 따라서 이 합의 단계는 '정'과 '반'이 종합 통일된 단계이며, 여기서는 '정'과 '반'에서 볼 수 있었던 두 개의 규정이 통일된다.

건국기념일 언제인지 놓고 갈등
한국사회 청소년과 비슷할 수도

성인들이 변증법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이들은 어떤 사실이 진실일 수도 있고 동시에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인정한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값어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강함의 표시라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현실의 모든 측면을 고려할 수 없는 조건에서 판단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인다. 따라서 '나'에게는 진실이지만 '너'에게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 인정이 조화와 타협의 전제 조건이 된다.

변증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비일관성과 모순을 잘 감지하고 정(正)과 반(反)으로부터 합(合)을 이끌어낸다. 또한 합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 합은 정이 되고 또다시 반이 생기는 과정이 되풀이 된다. 따라서 이들은 항상 인지적 불평형(不平衡) 상태에 있다. 이들은 갈등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피해야 할 상황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을 통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성숙하기 위해 대화와 타협을 하려고 한다. '변증법(dialectic)'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리스어의 'dialektike'에서 유래하며, 원래는 '대화술·문답법'이라는 뜻이었다. 대화(dialog)라는 영어 단어의 근원이기도 하다.

아직도 건국기념일이 언제인지를 놓고 갈등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자아정체감'을 찾기 위해 갈등하는 청소년과 비슷할 수도 있다. 국가의 정체가 '자유민주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를 두고도 혼란을 겪는 한국 사회는 청소년과 비슷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 같은 혼란을 되풀이하는 한국 사회는 정말 청소년과 비슷하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