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일생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어떤 소설이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까. 평생 동안 일본의 사죄를 요구했지만 그 대답을 듣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일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할머니의 유언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9일 빈소를 방문했다.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아내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래야 할머니가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것 같다.
할머니는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2012년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하고 전쟁, 무력 분쟁지역의 어린이를 위한 장학금으로 5000만원을 기부했다. 2017년 사후 모든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할머니의 통장에는 160만원만 남아 있었다고 했다.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을 만들고 일본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재일동포 학생들을 도왔다.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한 최근까지도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라며 30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의견을 배제한 채 맺은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세워진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도 벌였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의 상징이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소원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아베의 망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할머니는 가셨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다. 일본이, 아베가 더욱 야속하다.
오풍연 주필 poongye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