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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소정의 여섯 번째 개인춤판… 기량 돋보인 전통춤과 전통춤의 확장 '가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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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소정의 여섯 번째 개인춤판… 기량 돋보인 전통춤과 전통춤의 확장 '가지꽃'

이소정의 안무·출연 '꽃心'.이미지 확대보기
이소정의 안무·출연 '꽃心'.
봄의 제단에 들어서면 물의 여신이 영접한다. 춤꾼들은 사위와 디딤으로 한 해의 경작을 기원한다. 숱한 춤의 흔적을 찾아내 좌표를 설정하고 ‘나’의 춤이 시작된다. 겹겹이 쌓인 춤 이끼들이 벗겨지면서 세월의 내음이 흩어지고 새롭게 올리는 춤은 여러 가지 꽃을 피워낸다. 그 꽃은 피와 땀방울이 모여 핀 ‘가지꽃’이다. 움직임은 바람을 부르고, 빛은 조명이 된다. 춤을 익히는 것은 빛과 물에 이어진 소리 이다. 바람・물・새 소리에 추임새하는 음악이다.

2월 21일 오후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이소정의 여섯 번째 개인춤판이 있었다. 제목 <가지꽃>은 여러 가지의 꽃을 네 가지 춤으로 한정, 여러 유파에 걸린 춤을 꽃으로 비유한다. 이소정은 ‘살풀이춤’, ‘꽃心’, ‘태평무’, ‘소고춤’을 사계절 위에 진설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하도록 청했다. <가지꽃>은 전통춤의 향방과 대중들과의 소통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고,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눈치 채지 못하게 도시적 연출과 분위기를 달리하고 있었다.
이소정의 살풀이춤(이매방류).이미지 확대보기
이소정의 살풀이춤(이매방류).

이소정의 살풀이춤(이매방류).이미지 확대보기
이소정의 살풀이춤(이매방류).

이소정의 첫 번째 ‘살풀이춤’은 겨울을 상징하는 꽃이다. 블루가 깔린 시각적 외양과 하얀 소복의 춤은 살풀이와 차별되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표현해내고 있다.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움직이는 미술품으로 기능한 춤은 제의적 본뜻보다는 미적 형식으로 존재한다. 징에서 시작되어 대금 선율이 들어오고 장구 장단에서 아쟁이 늦게 들어와서 합주로 연결되는 음악구성으로 변화를 주고 있고, 악사 배치도 옆이 아닌 뒤로 배치하여 사랑방 느낌을 준다.

두 번째 ‘부포놀음’(피고지고)은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금상과 ‘세계사물놀이 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이현철이 꽹과리를 들고 상쇠로 출연하여 새털로 만든 부포상모를 쓰고 꽃을 피우기 위한 동작을 선보인다. 자유자재로 운용되는 ‘윗놀음’에서 상모 가운데 빨간 부분은 꽃이 피어남을 상징하고 있고, 쇠가락에 맞춰 부리는 재주가 관객들의 감정을 간지럽힌다. 장(場) 사이 인서트를 담당한 그는 연주단에서는 ‘징’을 담당하고 있다.

이소정 안무·출연의 '꽃心'.이미지 확대보기
이소정 안무·출연의 '꽃心'.

세 번째 작품 ‘꽃心’은 이소정의 창작 안무작이다. 부포의 느낌과 비슷한 꽃을 두 손에 들고 살풀이춤의 호흡을 기반으로 추는 춤으로써 가야금(이송이)과 장구(전준영)의 삼각구도를 이용, 꽃(사랑)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면서 황병기의 가야금곡 ‘밤의 소리’ 연주에 맞춰 추는 춤이다. 꽃은 춤이 진행되면서 한 손에 모아지고, 붉게 퍼지는 화관과 붉은 치마가 조화를 이룬다. 꽃에게 마음이 전하는 것인지, 꽃이 말을 걸어오는지 절정의 봄은 타오른다.

국립창극단 서정금이 사회 겸 해설을 맡아 관객들이 전통춤을 쉽고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얼씨구’, ‘좋다’, ‘절씨구’로 추임새를 유도하며 고수(전준영)를 대동하고 부채를 들고 나와 꽃에 관한 판소리 단가 ‘사철가’와 심청가 중 ‘화초타령’을 불렀다. <가지꽃>에서는 춤과 소리가 꽃에 집중한다. 전통은 기회가 드물 뿐 금세 스며드는 스펀지 같다. 그녀의 재치 있고 유창한 입담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관객들도 춤의 일부임을 알렸다.

이소정의 소고춤(최종실류).이미지 확대보기
이소정의 소고춤(최종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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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의 소고춤(최종실류).

판소리가 끝나고 전체 악사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이소정은 강선영류 ‘태평무’를 선보인다. 이소정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이다.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태평무’는 군무 버전과 솔로 버전으로 번갈아 가며 추는 대표적인 전통춤 레퍼토리이다. 모든 악사들이 참여하는 이소정의 ‘태평무’는 위엄과 교태가 장단의 변화에 따라 완급을 조절해내면서 균형 잡힌 몸매에서 나오는 여유, 고도의 형식과 품격을 보여주었다.

<가지꽃>의 마지막 춤은 최종실류 ‘소고춤’이다. 이소정이 최종실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뒤 처음 추는 춤이다. 최종실의 특별 장고 반주로 선보인 ‘소고춤’은 삼색 띠를 착용하고 시원하게, 경쾌하고 역동적인 몸놀림으로 신명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소정의 춤 욕심이 무한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새로운 레퍼토리로 삼을만한 의미 있는 춤 장르였다. 춤은 봄의 만개를 알리고 있지만 이소정의 춤은 성숙을 지향한다. 성숙을 넘어 원숙이 있다.

이소정의 태평무(강선영류).이미지 확대보기
이소정의 태평무(강선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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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의 태평무(강선영류).

이소정은 최고보다 최선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량향상을 위해 매년 한두 번 개인공연을 하는 춤꾼이다. 땀이 범벅되도록 연습하고, 전통춤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해시키고, 음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공간에서나 자신을 내세우는 공연자 틈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어려서부터 국립무용단원으로서 활동하기까지 똑 같은 춤을 수 만 번 춰왔어도 늘 처음 대하는 것처럼 연구한다. <가지꽃>은 전통춤에 원작자를 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전통춤꾼으로써 이소정의 ‘홀춤’만 보여주는 엄정한 태도와 변화를 모색한 훌륭한 리포트였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