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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뭐지?" 선입견 의존하는 판단은 오류 범하기 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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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뭐지?" 선입견 의존하는 판단은 오류 범하기 십상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56회)] 현명한 선택은 많은 인지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최근 한 사교모임에서 처음 만난 김철수(가명) 씨는 달콤한 멘트를 잘 날리는 낭만주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는 외관상 보이는 대로 진정한 낭만주의자인지 아니면 여자만 보면 유혹하려는 바람둥이인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또는 첫 모임에서 만난 이영희(가명) 씨는 빠른 결과를 내야 하는 중요한 팀을 운영할 때 함께 해도 괜찮은 믿음직한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팀원들을 이용하기만 하고 자신의 몫은 안 하는 뺀질이인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특정한 인지적 도식의 본보기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내는 행위는 모든 사회적 추론이나 행동에서 필수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혹은 그 것)은 뭐지?”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어떤 다른 인지적 과제가 수행되기 전에 꼭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대답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정신적 지름길을 ‘대표성’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다. 이 대표성 휴리스틱은 지난번에 소개한 가용성 휴리스틱과 함께 자주 사용된다.

기본적으로 대표성 휴리스틱은 주위에 있는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는 인지적 도식에 일치시킬 경우, 그 일치가 얼마나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어보자. “박영석(가명) 씨는 매우 수줍어하고 소극적이며 매우 협조적이다. 그러나 사람이나 현실세계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그는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고 세밀한 것에 많은 신경을 쓴다.” 만약 박영석씨에 대해 위와 같은 소개를 받았다고 하자. 그리고 그의 직업이 다음 네 가지 즉, ①농부 ②상인 ③도서관 사서 ④의사 중에서 어느 것일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한다고 하자. 과연 박영석씨의 직업은 무엇일까?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신이 인지적 구두쇠이고 휴리스틱을 사용하여 쉽게 결정을 내린다면 잘못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이미지 확대보기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자신이 인지적 구두쇠이고 휴리스틱을 사용하여 쉽게 결정을 내린다면 잘못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박영석 씨의 직업을 정확히 알아맞히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네 직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수와 특징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박영석 씨의 직업을 알아맞히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많은 정보를 가질 필요도 없고, 긴 시간을 할애할 수도 없다. 이런 경우에는 대표성 휴리스틱을 사용하면 쉽고 빠르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각각의 직업 범주에 속하는 평균적인 사람들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에 대해 인지적 도식을 가지고 있다. 즉, 농부의 특성과 도서관 사서의 특징이 각각 어떨 것인지에 대해 대략적인 모양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직업의 전형적인 모습과 박영석 씨가 얼마나 닮았는지 여부를 판단한 후, 그 유사한 정도를 근거로 그의 직업에 대해 결정한다. 이 과제를 제공받은 학생들은 보통 박영석 씨가 도서관 사서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박영석 씨에 대한 소개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도서관 사서의 속성에 대한 인지적 도식과 제일 부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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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성 휴리스틱은 특정한 사람이나 사건이 특정한 인지 도식의 전형과 얼마나 부합되는지를 결정할 때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 비교적 빠른 방법은 때때로 틀릴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빠르고 손쉬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종종 다른 중요한 정보들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만약 박영석 씨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부이고 사서는 한 사람밖에 없는 마을에서 산다면 그가 농부일 확률이 훨씬 더 높고 사서일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서의 특징에 대한 자신의 인지적 도식과 얼마나 맞는지만 염두에 두고, 그 마을에 사서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대표성 휴리스틱을 사용할 때는 종종 이처럼 중요한 정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사람들은 자주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를 무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인지적 휴리스틱과 마찬가지로 대표성 휴리스틱을 사용할 경우에도 정확한 결론을 내려야 할 경우에는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틀린 답을 낼 수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한다. 매 결정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정보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결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경제적이지도 못 할 뿐만 아니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정확히 내리기 위해 심리적 에너지를 소진하면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결정을 미루거나 대충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정확성을 신속성(迅速性)과 바꾸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

손쉽게 결론 내려는 게 인간의 속성
"정확성보다 신속성이 먼저" 생각

우리는 모두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이다.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를 찾고 수집하고 추론하여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하고 쉬운 방법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성향을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여러 샴푸 중에 한 특정 제품에 만족하면 다음 번에도 기계적으로 동일한 제품을 구매하려고 한다. 이미 만족했는데 또 다른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일일이 두 제품을 비교하고 평가하고 결정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하지 않는다.

‘인지적 구두쇠’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평범한 삶을 사는 ‘갑남을녀(甲男乙女)’나 그 결정 하나하나가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더 합리적 과정을 거쳐 정확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도 사람이라 종종 ‘인지적 구두쇠’가 되고, 또 대표성 휴리스틱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각 조직의 대표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만 요직을 채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할 경우, 일치된 결론에 이르기까지 격렬한 논쟁을 거쳐야 하는 수고가 들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의논을 한다면 손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 대부분의 지도자는 이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것이 합리적이고 현명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가 모여 만장일치로 통과됐기 때문에 현명한 결정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손쉬운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만장일치’라는 허울은 사실상 자신의 의견의 기계적인 메아리일 뿐이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만큼 판단 내려
실수 피하려면 많은 정보 수집 필요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든 후보자들이 만약 자신이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면 할 일들을 소위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나열한다. 하지만 이 많은 정책들을 후보자 별로 그리고 후보자 간에 일일이 비교해보고, 실현 가능한지를 검증해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의 유권자들은 만약 선호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에서 공천 받은 후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후보에게 투표를 할 것이다. 그 후보의 공약은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를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선호하는 정당에서 공천 받은 후보라면 좋은 공약을 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일일이 검토하는 수고를 할 필요를 덜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수고스럽고 많은 시간이 들더라도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도 많이 있다. 인지적 구두쇠처럼 쉽고 빠른 다양한 휴리스틱을 사용해서 내린 결정의 책임은 고스란히 그 선택을 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처럼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인지적 구두쇠이고 휴리스틱을 사용하여 쉽게 결정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쉬운 길을 버리고 수고스럽더라도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인지적 도식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형성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도식을 그냥 차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지금도 많은 지도자들이 우리들의 이런 경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실체를 숨기고 진실이 아닌 허황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들을 조종하고 이용하려고 한다. 소위 자신들이 원하는 ‘틀(frame)’을 만들고 그 틀로 현실을 보도록 조종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인지적 구두쇠라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이들을 진실하지 못하다고 질책하기 전에, 그런 이미지에 조종당하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