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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두릅나무 꽃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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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두릅나무 꽃을 보다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고향 후배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뒷마당 모퉁이에 하얗게 꽃을 피워 단 나무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름을 물었더니 두릅나무란다. 두릅나무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면서 나는 그 나무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 적 나의 어머니는 봄이 되면 가시투성이 두릅나무 끝에 새순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여린 두릅 순을 따서 밥상에 올리시곤 하셨다. 살짝 데친 어린 순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고 씹으면 입 안 가득 번지던 쌉쌀하면서도 달큰한 뒷맛이 단번에 입맛을 돌게 하던 두릅은 봄날 최고의 나물이었다.

두릅은 영양소가 풍부하여 ‘봄나물의 제왕’으로 불린다. 나무껍질은 당뇨병과 신장병의 약재로, 열매와 잎, 그리고 뿌리 등은 위의 기능을 돕는 건위제로 쓰인다. 뿌리부터 잎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청정임산물이 다름 아닌 두릅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릅나무 꽃을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어린 순이 나오기 무섭게 입맛을 다시며 다투어 채취하는 인간의 욕심 앞에 꽃은 저만치 뒷전으로 밀려나 관심 밖이기 때문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에 숲이 우거진 곳보다는 주로 숲 가장자리나 너덜바위지역, 양지바른 비탈진 곳에 서식한다. 전국 어느 산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였지만 우리나라 숲이 우거지면서 두릅나무는 조금씩 숲에서 밀려나 자연산 두릅의 생산량도 덩달아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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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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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나무 꽃

두릅나무는 두릅나뭇과에 속하는 잎 지는 작은키나무다. 기껏해야 3~4m 정도로 곧게 자란다. 하지만 이렇게 큰 나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줄기 가득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기는 하였지만 인간의 탐욕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어린 순을 잘라내면 또 다른 눈을 자라게 하여 무차별적인 인간의 공격에 대비한다 해도 수없이 수난을 당하다 보니 크게 자라기는 쉽지 않은 때문이다. 잎은 가지 끝에 깃 모양으로 갈라진 긴 잎줄기가 여러 개 나와 작은 잎들이 9개에서 21개 정도까지 어긋나게 달려 2~3겹의 깃털 모양을 이룬다. 끝이 뾰족한 달걀 모양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가을에 노랗고 붉게 물든다. 잎이 지고 나면 가지가 적어 나무는 볼품이 없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그런데도 두릅나무가 다시 한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때가 있으니 다름 아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요즘이다. 꽃은 가지 끝에 연녹색을 띤 유백색의 꽃차례가 달린다. 같은 길이로 두 번 어긋나게 갈라진 꽃대가 나와 끝마다 꽃이 달린다. 작은 꽃들이 모여 처음에는 둥근 공 모양을 이루다가 점차 포도송이 모양으로 달려 피며 커다란 꽃송이를 이루는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모습은 멀리서 바라봐도 눈이 부시다. 가을이 깊으면 꽃이 피었던 자리엔 어김없이 구슬처럼 작은 열매들이 자주색으로 익어 새들의 귀한 겨울양식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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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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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 순이 인기가 많다 보니 요즘은 농가에서 소득자원으로 재배하는 곳이 많다. 두릅나무는 종자를 심어도 되지만 뿌리를 심는 게 번식이 잘 된다. 봄에 두릅나무 뿌리를 캐어 10~15㎝ 정도로 잘라 심으면 된다. 심은 지 한두 달 정도 지나면 발아하여 자라기 시작하는데 순을 따지 말아야 잘 자란다. 볕만 잘 들면 몇 두만 심어도 주위로 계속 번져가므로 키우기도 쉽다. 이제는 일부러 산에 올라 야생의 두릅을 탐하지 않아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욕심을 내도 탓하는 법도 없이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두릅나무이지만 이제는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온전한 나무로 곁에 두고 꽃과 잎을 완상해도 좋을 듯싶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로 가는 환절의 길목에서 눈부시게 피어난 두릅나무 꽃을 보며 생각한다. 저리 주변이 환하도록 눈부신 꽃을 피우기까지 고단했을 두릅나무의 생을. 그리고 나무나 사람이나 어느 한 부분에만 집착하여 분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