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을 시작한 계시별 요금제는 기존 '사용량'을 기준으로 하는 누진제와 달리 '시간대'를 기준으로 하는 요금제다.
예를 들어, 에어컨·낭방기 등 전기사용량이 가장 많은 여름철(6∼8월) 최대부하(오후 1시~5시) 시간대와 겨울철(11∼2월) 최대부하(오전 9시~정오) 시간대는 각각 킬로와트시(㎾h)당 188원과 159원이라는 높은 요금이 적용되고, 전기사용량이 가장 적은 봄·여름·가을 경부하(밤 11시~다음날 오전 9시) 시간대는 가장 낮은 82원이 적용되는 식이다.
한전은 계시별 요금제도 '일반형'과 '집중형' 등 2종을 마련해 선보였다.
집중형은 여름철 최대부하는 오후 3시~5시, 겨울철 최대부하는 오전 9시~11시) 등 전기사용량이 가장 많은 계절·시간대와 가장 적은 계절·시간대의 범위를 더 압축해 더 높거나 낮은 가격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한전과 산업부는 향후 계시별 요금제가 정식 도입돼도 기존 누진제와 병행 운영해 소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같은 계시별 요금제에 산업계와 학계는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계시별 요금제와 누진제 중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시별 요금제도 일반형, 집중형 등 여러 요금제 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온 소비자 선택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하다는 것이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그동안 누진제에 비판이 많았던 만큼 계시별 요금제는 그 대안으로서 도입 필요성이 크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주택용 전기요금제에 처음 시도하는 만큼 시범사업을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계시별 요금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우선 전력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계량기(AMI) 보급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산업부와 한전은 내년 9월까지 1년간 계시별 요금제 시범운영을 해 전력사용패턴을 분석하고 이후 다시 1년간 사업대상 가구를 늘려 총 2년간 시범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국내의 스마트계량기 보급률은 20%대로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산업부와 한전은 내년 말까지 전국 2250만가구에 스마트계량기를 설치하겠다는 목표지만 아파트 개별가구에까지 스마트계량기 설치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도입은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계시별 요금제 시범사업 기간을 2년으로 잡았지만, 현재의 스마트계량기 보급 속도를 보면 본사업 시작까지는 그 이상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계시별 요금제 도입으로 전기요금을 사실상 인상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에 적용되는 계시별 요금체계의 ㎾h당 단가만 보면 기존 누진제 요금체계보다 실제로 소비자 부담이 더 큰 요금제라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한전이 공개한 계시별 요금제 중 '일반형' 요금체계를 보면 가장 비싼 여름철 최대부하 시간대와 겨울철 최대부하 시간대 요금도 각각 188원/㎾h, 159원/㎾h로 현재 누진제 2단계 요금(187.9원/㎾h)과 비슷하거나 더 낮다. 모든 계절의 경부하 시간대 요금도 누진제 1구간 요금(93.3원/㎾h) 전후 수준이다.
그러나 한전의 재정 악화가 지속되는 만큼 정부와 한전이 부인해도 요금인상은 시간문제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한전 김종갑 사장이 "전기료가 원료값보다 싸다"고 지적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주장해 온 점이나, 한전 이사회도시 내년 상반기 중에 전기요금체계 전반의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계시별 요금제 시범기간이 끝나는 시점 전후로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계시별 요금제로 최대부하 시간대에 몰리는 수요을 일정부분 분산시켜 발전소 운영상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원가 이하로 판매해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 전반적인 요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하거나 계시별 요금제의 본사업 단계에서 전기요금 현실화 즉 요금인상을 꾀할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한전 측은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한다고 꼭 요금을 올린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현실화를 공언하며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산업부가 수용할 지는 미지수"라며 인상 추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에 전기를 저장해 비싼 시간대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를 위한 민간기업의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