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누진제 대안' 계시별 전기요금제에 "소비자 선택 환영 vs. 요금인상 수순"

공유
1

'누진제 대안' 계시별 전기요금제에 "소비자 선택 환영 vs. 요금인상 수순"

23일부터 2년간 시범실시 돌입...정착하려면 스마트계량기 보급 확대 필수
"재정악화로 인상 시간문제" 주장에 한전 부인...정부도 부담 느껴 수용 미지수

지난 6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공청회의 모습. 사진=김철훈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6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택용 전기요금 개편 공청회의 모습. 사진=김철훈 기자
한국전력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주택용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계시별 요금제) 도입을 위해 지난 23일부터 전국 7개 지역 2048가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에 들어가자 전문가들은 환영하면서도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시범사업을 시작한 계시별 요금제는 기존 '사용량'을 기준으로 하는 누진제와 달리 '시간대'를 기준으로 하는 요금제다.
1년을 '여름-겨울-봄·가을' 세 시기로, 하루를 '최대부하-중간부하-경부하' 3개 단계로 나눠 전력사용량이 가장 많은 계절·시간대에 가장 비싼 요금을, 사용량이 가장 적은 계절·시간대에 가장 싼 요금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에어컨·낭방기 등 전기사용량이 가장 많은 여름철(6∼8월) 최대부하(오후 1시~5시) 시간대와 겨울철(11∼2월) 최대부하(오전 9시~정오) 시간대는 각각 킬로와트시(㎾h)당 188원과 159원이라는 높은 요금이 적용되고, 전기사용량이 가장 적은 봄·여름·가을 경부하(밤 11시~다음날 오전 9시) 시간대는 가장 낮은 82원이 적용되는 식이다.

한전은 계시별 요금제도 '일반형'과 '집중형' 등 2종을 마련해 선보였다.

집중형은 여름철 최대부하는 오후 3시~5시, 겨울철 최대부하는 오전 9시~11시) 등 전기사용량이 가장 많은 계절·시간대와 가장 적은 계절·시간대의 범위를 더 압축해 더 높거나 낮은 가격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한전과 산업부는 향후 계시별 요금제가 정식 도입돼도 기존 누진제와 병행 운영해 소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택용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계시별 요금제) 내용. 자료=한국전력이미지 확대보기
주택용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계시별 요금제) 내용. 자료=한국전력

이같은 계시별 요금제에 산업계와 학계는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계시별 요금제와 누진제 중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시별 요금제도 일반형, 집중형 등 여러 요금제 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온 소비자 선택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하다는 것이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그동안 누진제에 비판이 많았던 만큼 계시별 요금제는 그 대안으로서 도입 필요성이 크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주택용 전기요금제에 처음 시도하는 만큼 시범사업을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계시별 요금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우선 전력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계량기(AMI) 보급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산업부와 한전은 내년 9월까지 1년간 계시별 요금제 시범운영을 해 전력사용패턴을 분석하고 이후 다시 1년간 사업대상 가구를 늘려 총 2년간 시범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국내의 스마트계량기 보급률은 20%대로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산업부와 한전은 내년 말까지 전국 2250만가구에 스마트계량기를 설치하겠다는 목표지만 아파트 개별가구에까지 스마트계량기 설치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주택용 계시별 요금제 도입은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계시별 요금제 시범사업 기간을 2년으로 잡았지만, 현재의 스마트계량기 보급 속도를 보면 본사업 시작까지는 그 이상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계시별 요금제 도입으로 전기요금을 사실상 인상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에 적용되는 계시별 요금체계의 ㎾h당 단가만 보면 기존 누진제 요금체계보다 실제로 소비자 부담이 더 큰 요금제라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한전이 공개한 계시별 요금제 중 '일반형' 요금체계를 보면 가장 비싼 여름철 최대부하 시간대와 겨울철 최대부하 시간대 요금도 각각 188원/㎾h, 159원/㎾h로 현재 누진제 2단계 요금(187.9원/㎾h)과 비슷하거나 더 낮다. 모든 계절의 경부하 시간대 요금도 누진제 1구간 요금(93.3원/㎾h) 전후 수준이다.

그러나 한전의 재정 악화가 지속되는 만큼 정부와 한전이 부인해도 요금인상은 시간문제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한전 김종갑 사장이 "전기료가 원료값보다 싸다"고 지적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주장해 온 점이나, 한전 이사회도시 내년 상반기 중에 전기요금체계 전반의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계시별 요금제 시범기간이 끝나는 시점 전후로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계시별 요금제로 최대부하 시간대에 몰리는 수요을 일정부분 분산시켜 발전소 운영상의 효율을 높이고 비용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원가 이하로 판매해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 전반적인 요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하거나 계시별 요금제의 본사업 단계에서 전기요금 현실화 즉 요금인상을 꾀할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한전 측은 "계시별 요금제를 도입한다고 꼭 요금을 올린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현실화를 공언하며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산업부가 수용할 지는 미지수"라며 인상 추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에 전기를 저장해 비싼 시간대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가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를 위한 민간기업의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