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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돈 풀자는 정부, 풀겠다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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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돈 풀자는 정부, 풀겠다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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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보강하고, 경제에 힘을 불어넣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주 문 대통령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바른미래당 김성식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돈을 많이 풀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와 함께, 통화정책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행도 화답하고 있다. 이주열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통화신용정책은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완화기조를 유지하되, 완화 정도는 거시경제와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를 점검하면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돈을 더 풀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돈은 이미 과다하게 풀린 상태다. 지난 8월 통화증가율은 6.8%에 달했다. 최근 통화는 6%대의 높은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어렵게 2% 성장률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통계물가’상승률은 0%다. 여기에다 돈의 유통속도는 뚝 떨어졌다. 한국은행에서 풀려나간 돈이 얼마나 많은 신용을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통화승수가 크게 떨어져 돈을 풀어도 그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구동성’으로 돈을 풀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년에는 ‘세수 부진’으로 정부의 재정 방출이 여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더욱 한국은행의 통화 방출에 의존할 참이다.

그렇지만 돈을 푼다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KDI도 "올해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한 덕분에 민간 부문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2% 정도의 성장을 하는 게 가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런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 최근의 조사가 보여주고 있다.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201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1.3%가 월급 보릿고개를 ‘매월 겪고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43.3%는 ‘가끔 겪고 있다’고 했다.

‘겪은 적이 없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5.4%에 불과했다. 직장인 가운데 94.6%가 다음 월급날이 오기 전에 월급을 다 써버리는 ‘월급 보릿고개’를 격고 있는 셈이다.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의 형편이 이랬다. ‘부정기적인’ 수입으로 먹고사는 서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돈이 밑바닥까지 미치지 못하는 현실로는 경기가 살아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내수경기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 통화는 되레 부작용을 몰고 올 수 있다. ‘실물투기’다. 과다하게 풀린 돈 가운데 일부가 투기 쪽으로 몰리는 것이다. 일부 지역의 아파트값이 펑펑 치솟는 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건설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서민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택공급을 최대한 앞당기고, 교통난 해소를 위한 광역교통망을 조기 착공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교육∙복지∙문화∙인프라 구축과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도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투기는 번져나가는 속성이 있다. 어떤 사람이 투기로 짭짤한 재미를 보면 다른 사람도 그냥 있지 않고 덩달아 뛰어드는 것이다. 가뜩이나 돈이 넘쳐서 이를 경계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건설 투자였다.

돈을 풀더라도 그 돈이 기업의 시설투자 등 건전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본을 넘어선 돈 확대정책은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