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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최고급 제품을 만들어 내는 강인한 이탈리아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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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최고급 제품을 만들어 내는 강인한 이탈리아 중소기업

김경석 前 주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



들어가며: 이탈리아의 진정한 저력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주로 명품, 패션, 음식, 관광의 나라로 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전통산업 분야는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기 원리를 최초로 창안한 것처럼 우주항공, 중화학, 기계, 전자 분야를 포함한 모든 산업이 골고루 발달한 나라다. 모름지기 제조업 분야에서는 프랑스, 영국을 능가하며 독일 다음으로 유럽 제2위 제조업 국가의 지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탈리아의 실력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탈리아 전체 제조업 분야 기업 수의 99.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이탈리아 산업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세분해서 보면 종업원 10인 미만의 미소기업이 81.6%, 10인 이상~50인 미만 소기업이 15.9%를 각각 차지하며 50인 이상~250인 미만 중기업도 2.2% 정도에 머물며 대기업은 0.3%에 불과하다.

이탈리아 제조업의 원동력

그렇다면 개미군단 중소기업이 주축을 이루는 이탈리아가 국제적으로 강한 제조업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각종 산업별로 자생적으로 발달한 수많은 산업클러스터를 가지고 있다. 섬유, 의류, 기계금속, 가죽가공, 가구, 건축자재, 항공, 선박, 의약, 타일, 대리석 가공, 금은보석 가공, 안경, 화장품, 스포츠화, 유리, 악기, 햄, 치즈, 칼, 가위 등 분야별로 200여 개 클러스터가 전국에 퍼져 있으며 해당 각 분야에서 세계 산업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19세기 통일국가를 이루기까지 1400여 년 동안 여러 도시국가로 존속한 이탈리아는 각 도시국가별로 생활에 필요한 직물의류, 가죽, 신발, 가구, 도자기, 철, 금은세공 제품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해야만 했고 그러한 자급자족 체제는 자연히 특정 지역에 특정 산업이 특화되는 산업클러스터로 발전했다. Biella 모직(Zegna, Loro Piano), Como 실크(Ratti), Firenze 가죽제품(Gucci, Ferragamo), Bologna/Modena 자동차(Ferrari, Lamborghini), Varese 항공산업(Augusta), Brianza 가구, Cadore 안경(Luxottica사), Sassuolo 타일, Arrezzo 금은보석가공(Uno Erre) 등의 클러스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탈리아 주요 클러스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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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Istituto G. Tagliacarne / Ist

특히 각 클러스터 내에서 동종 영세기업 간 치열한 경쟁은 부단한 혁신을 유발해 각 기업은 자기만의 전문 분야에 특화, 초특화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쟁력을 견지하고 있다. 제조업체인 갑과 부품공급업체인 을은 신뢰를 바탕으로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제품개발과 규모경제의 효과를 얻는 등 신비로운 조화와 경쟁이 혁신을 유도하고 있어 이탈리아 산업클러스터는 강인한 중소기업을 배양하는 핵심적인 기반이다.

흔히들 장인정신으로 표현되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의 직업마인드와 행태는 이탈리아 중소기업을 강하게 만드는 뒷받침이 된다.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이탈리아인들에게는 학력의 차등이 없으며, 직업의 귀천의식도 없다. 그리고 한 가지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는 천직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식으로 특정 분야에 전념하다 보니 전문성이 강해지고 특정 기술에 특화, 초특화로 자기만의 고유의 기술을 축적하게 된다. 조사에 의하면 이탈리아 국민의 73.3%는 고향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입시지옥도 없고 교육비 부담도 적어 누구든 희망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으나 대학 진학률은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편이다. 고등학교 진학 시도 인문계보다 실업계를 더 선호한다. 학력보다 숙련된 기술이 중요시 되기 때문이다. 115년 전에 설립돼 전통가구를 생산하는 Citterio사는 12명 규모의 소기업이지만 중졸인 Citterio사장이 쌓은 고유의 기술로 사담후세인, 카다피, 푸틴은 물론 중동 왕실 부유인사를 대상으로 세계 최고급 호화가구를 판매해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람보르기니 자동차는 볼로냐 인근 첸토마을에 위치한 자동차기술고등학교 출신의 람보르기니가 창업한 회사의 제품이다.

Citterio사 고급 가구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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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Citterio사 제공

이탈리아 중소기업을 경쟁력 있게 만드는 데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규모가 작은 데 따른 유연성과 혁신전략에 있다. 이탈리아 기업환경은 직업안정 보호, 전 국민의 연금화, 교육의료 보장, 부동산 시장 안정 등의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장기 저성장, 국가부채누적, 높은 실업률의 경제여건 속에서 높은 사회보장세, 높은 세금, 높은 금리, 노동시장의 경직성, 사법행정의 비능률성 등은 기업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또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저가 제품의 쇄도로 이탈리아 전통산업제품은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15인 이하 소기업인 경우 해고 문제 등에 있어서 노동법의 규제를 덜 받고 있기 때문에 전체 기업 수의 90% 정도가 소규모 가족기업 형태를 취하게 됐으며 소기업주는 밤낮, 휴일을 가리지 않고 부단히 일하고 있다. 기업 규모가 작은 것은 소비자 취향 변화와 시장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중소기업들은 유연성을 살려 제품 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중국 기업들이 이탈리아 제품을 모방하고 있어 이를 막고 중국과의 경쟁을 이겨나기 위해 이탈리아 중소기업들은 제품의 품질을 최고급화 하는 동시에 제품을 다양화 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한 결과 때문인지 이탈리아 중소기업들은 매년 독일, 프랑스 보다 더 많은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중소기업으로부터 배울점

그러면 이탈리아 중소기업에서 우리가 벤치마킹 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의 대기업 중심 생산체제로 인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해소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건전하게 발달하게 된 배경인 이탈리아 중소기업의 구조, 노사 간 임금계약체제, 제품혁신 행태 등에 대한 우리의 많은 관심과 깊은 조사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이탈리아 중소기업과 우리 중소기업 간의 교류협력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이탈리아 중소기업은 다른 나라에 비해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한국 중소기업 기술인 및 기술사관들과 이탈리아 중소기업-기술학교 간 연수 또는 기술이전협력 사업을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으며, 그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중소기업 지원 유관기관 및 산업협회 등이 재원을 마련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아울러 유럽 시장에서 축적된 이탈리아 중소기업의 경험과 우리의 IT기술을 함께 접목, 기술제휴, 합작투자, 기업인수 등의 방식으로 협력할 경우 제3국 시장 진출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업에는 우리 대기업도 이탈리아 중소기업과의 협력에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관련해 이탈리아 기업과 협력하는데 있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탈리아 언어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대체로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편이므로 이탈리아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교류협력을 보다 쉽게 풀어 나가게 하는 섬세한 의사소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