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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돈 있으면 나도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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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돈 있으면 나도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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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는 사치 때문에 망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검소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비단옷을 입지 않아서 비단 짜는 기계와 여공(女工)이 없어졌습니다.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목욕시키지 않은 말을 타며, 깨끗하지 못한 그릇에 밥을 담아먹고, 진흙으로 된 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공장(工匠), 축목(畜牧), 도야(陶冶) 등의 직업이 사라졌습니다.…”

조선 때 실학자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정조 임금에게 제출한 ‘북학의(北學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었다. ‘소비를 늘려서 경제를 살리자’는 건의였다. 소비를 해야 비단 짜는 사람이 먹고살 수 있고 말을 키우고 도자기 굽는 사람도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를테면 ‘소비확대론’이었다. 박제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의 내수시장 활성화 정책’을 벌써부터 제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북학의’에는 ‘모순’이 있었다. ‘북학의’에는 이런 말도 나오고 있었다.

“"백성은 조석거리가 없습니다. 열 집 있는 마을에 하루 두 끼를 먹을 수 있는 자가 몇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비상식량이라고는 옥수수 몇 자루와 고추 몇 십 개를 매달아놓은 것뿐입니다. 농촌 백성은 한 해에 무명옷 한 벌을 얻어 입지 못하고… 도시에서도 소녀들이 맨발로 다니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어쩌다 새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창녀(娼女)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백성의 생활은 이랬다. 입을 옷도, 먹을거리도 형편없었다. 이런 백성에게 소비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박제가는 소비를 건의하고 있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국민에게 소비를 호소했다. 코로나 19 사태와 관련, “실제 파급 영향 외에 지나친 공포심과 불안감으로 경제·소비심리 위축이 큰 편”이라며 “국민도 이제 정상적인 경제·소비활동을 해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힌 것이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 19 사태가 “실물경제로의 파급 영향이 불가피한 만큼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이를 극복해 나가는 게 지금부터의 핵심 과제”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 19 사태로 국민이 ‘방콕’을 하는 바람에 외식업체 가운데 85.7%가 고객이 감소하고, 평균 고객 감소율이 29.1%나 된다는 조사가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사이에 고객이 뚝 떨어진 것이다. 화훼농가도 울상이라는 소식이다. 국민이 소비를 해줘야 힘이 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은 돈이 없다. 코로나 19 사태 이전부터 소비를 억제하는 현실이다. 정부는 ‘소주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나라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출은 ‘마이너스 증가율’로 허덕이는 상황에서 주머니가 불룩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월급쟁이들의 경우는 이른바 ‘월급고개’를 겪고 있다. 월급을 매달 ‘정상적으로’ 받아도 쪼들리고 있다. 지난해 ‘공익활동형’ 노인 일자리의 월평균 보수는 27만 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정부는 그런 일자리를 늘리고 자화자찬이다. ‘정상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알바 자리’를 찾는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홍 부총리는 그런데 ‘정상적인’ 소비였다.

따지고 보면, 김대중 정부가 ‘주 5일 근무제’를 밀어붙이던 당시부터 ‘소비’였다. 일주일에 5일만 일하고 나머지 2일은 ‘소비’를 하라고 했다. 그래야 내수시장이 살아나고 경기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비는 늘어날 수 없었다. 국민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